미 국무부가 자체 홈페이지의 대만 관련 ‘설명 자료(Fact sheet)’를 갱신하면서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는 표현을 삭제했다고 대만 자유시보가 11일 보도했다. 중국 외교부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빈 껍데기로 만들려는 시도”라며 크게 반발했지만, 미 국무부는 “우리(미국) 정책에 변화는 없다”고 밝혔다. 애초부터 미·중 양국 정부가 서로 다른 의미로 ‘하나의 중국’이란 말을 사용했기 때문에 미국이 기존 입장을 바꾼 것이 아니란 뜻이다. 하지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방일을 앞둔 미묘한 시점에 중국이 가장 반발하는 부분을 건드렸다는 점에서 미·중 간 갈등 양상이 더욱 격화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미 국무부는 지난 5일 대만 관련 설명 자료를 전면 갱신하면서 “(1979년 미·중 수교 당시의) 코뮈니케(공동선언)에서 미국은 ‘하나의 중국만이 있고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는 중국 측 입장을 인정(acknowledge)하며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를 중국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recognize)했다”란 기존의 문장을 삭제했다. “미국은 대만의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표현도 뺐다.
그 대신 국무부는 “미국은 대만관계법, 미·중 간 3개 코뮈니케, 6개의 보장을 따르는 오래된 ‘하나의 중국’ 정책을 갖고 있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미국은 지난 1982년 미국이 대만에 약속해 준 ‘6개의 보장’에서 대만의 주권은 “평화적으로 결정돼야 할 문제”이며 “미국은 대만에 대한 중국의 주권을 공식적으로 승인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 점을 강조한 것이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0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하나의 중국 원칙을 빈 껍데기로 만들려는 시도”라며 “대만 문제를 놓고 정치적으로 장난치고, 대만해협의 현상 변경을 시도하는 것은 자기 몸에 불을 지르는 일”이라고 반발했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10일(현지 시각) 정례 브리핑에서 “(홈페이지의 대만 관련) 표현이 달라진 의미를 설명해 달라”는 질문을 받고 “우리 정책의 변화는 없다. 우리는 그저 설명 자료를 업데이트한 것이고 다른 나라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정기적으로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또 “이것은 (새로운) 정책의 발표가 아니다. 나를 믿든 안 믿든 그저 설명 자료에 대한 기술적 업데이트”라고 했다.
미 시사 잡지 뉴스위크는 “대만에 대한 미국의 공식 입장은 중국의 자체적 해석과는 다른데 이를 대중이 흔히 오해하기 때문”에 국무부가 기존 표현을 삭제한 것 같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중국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면서도 대만과의 비공식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부러 모호한 언어를 사용해 왔다. 그런데 이런 모호성을 잘 모르는 대중이 보면 마치 미국이 중국의 대만 흡수를 인정하는 것처럼 인식할 수 있기 때문에 국무부 홈페이지에서 관련 표현을 뺐다는 의미다.
지난 1979년 미·중 수교 코뮈니케에서 미국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를 중국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한다(recognize)”며 “미합중국 정부는 하나의 중국밖에 없으며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는 중국 측 입장을 인정한다(acknowledge)”고 했다. 그런데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는 중국 측 입장을 인정한다”란 문장에서 사용된 ‘인정’이란 표현은 ‘중국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을 사실로서 받아들인다’는 뉘앙스로 볼 수 있다. 법적인 ‘승인’과는 다르며, 중국이 ‘인정’이란 표현을 ‘승인’으로 바꾸자고 했을 때 미국은 이를 거절했다.
실제 지난 1982년 미국은 대만에 약속한 ‘6개 보장’에서 “미국은 대만에 대한 중국의 주권을 공식적으로 승인하지 않는다”고 했다. 중국이 대만을 자국의 일부로 생각한다는 사실은 바꿀 수 없지만, 대만에 대해 강압적으로 주권을 행사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은 “우리 정책에는 변화가 없다”며 “중국이 책임 있게 행동하며 대만에 압박을 가하는 구실을 지어내지 않을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중국도 미국 정책의 모호성을 알고 있으면서 일부러 문제를 키우지 말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