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1일(현지 시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권좌에서) 축출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3월 푸틴 대통령에 대해 “이 사람이 더 이상 집권해서는 안 된다”고 폭탄 발언을 해 파문을 일으켰는데 2개월여 만에 정반대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에 따라 바이든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과 우호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돌파구를 만들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뉴욕타임스(NYT)에 ‘미국이 우크라이나에서 할 일과 하지 않을 일’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게재했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만 3개월을 넘겨 계속되고, 러시아가 미국의 의도를 오판해 전쟁이 확전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직접 ‘대원칙’을 밝히고 나선 것이다. 그는 기고문에서 “푸틴에게 동의하지 않고, 그의 행동에 격분한다”며 “(하지만) 미국은 그를 모스크바에서 축출하려고 노력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이 그를 제거하기 위한 어떤 계획도 갖고 있지 않다고 명확히 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입장을 밝혔다. 기고문 도입부부터 “전쟁이 계속됨에 따라 이와 관련한 노력에서 미국의 목적을 분명히 하고 싶다”며 “미국의 목표는 복잡하지 않다. 우리는 추가적 침략을 억지하고 자국을 방어할 수단을 지닌 민주적이며 독립적이고 주권적이고 번영하는 우크라이나를 보기 원한다”고 썼다. 이어 “이것이 내가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전장에서 핵심 목표물을 더 정확하게 타격할 수 있는 더 첨단화된 로켓(미사일) 체계와 군수품을 제공하기로 결정한 이유”라고 했다. 미국이 앞으로 추가 지원할 첨단 미사일이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유지하며 우크라이나에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 스팅어 대공 미사일, 레이더와 드론, Mi-17 헬리콥터와 탄약 등도 계속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핵전쟁 우려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은 “핵 보검을 휘두르겠다는 러시아의 언사는 위험하고 매우 무책임하지만, 현재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핵무기를 사용할 의도를 갖고 있다는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명확히 하겠다. 이번 충돌에서 어떤 규모든 무슨 핵무기든 사용한다면 미국과 세계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고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인도적 지원은 계속하되 직접 참전은 하지 않을 것이란 점을 재확인했다. 그는 “미국과 동맹국들이 공격받지 않는 이상, 우크라이나에 미군 병력을 보내거나 러시아군을 공격해서 직접 이번 전쟁에 개입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러시아에 고통을 야기하기 위해 전쟁을 연장시키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그는 러시아에 가까운 나토 회원국들에 대한 군사 지원을 계속하고,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 가입도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이것이 “나토와 러시아의 전쟁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런 가운데 동부 돈바스 지역 전황은 우크라이나에 점차 불리해지는 형국이다. 러시아군은 이 지역 핵심 요충지 세베로도네츠크에 진입한 지 하루 만인 31일 도심의 절반 이상을 장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세르히 하이다이 루한스크 주지사는 “러시아군이 세베로도네츠크의 70%가량을 점령했으나, 도시의 통제권은 여전히 우크라이나군 수중에 있다”고 말했다. 세베로도네츠크는 우크라이나군 주요 보급로가 지나는 곳이다. 러시아군은 공세 강화를 위해 남부 마리우폴 공략에 나섰던 체첸군을 전격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의 ‘전쟁범죄’ 공방도 달아오르고 있다. 이리나 베네딕토바 우크라이나 검찰총장은 이날 네덜란드 헤이그 유럽사법협력기구(Eurojust) 본부에서 “600명이 넘는 러시아 전쟁범죄 용의자를 확인했으며, 이들 가운데 80명가량을 기소했다”고 밝혔다. 독일 dpa 통신은 “우크라이나 검찰이 총 1만5000여 건의 전쟁범죄 사례를 조사 중”이라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법원은 이날 러시아군 병사 2명에게 북동부 하르키우주(州) 민간인 지역에 무차별 포격을 한 혐의로 징역 11년 6개월을 선고했다.

러시아는 이에 맞서 마리우폴 아조우스탈에서 투항한 우크라이나군 일부를 전범 재판에 회부할 계획이다. 친러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 수장 데니스 푸실린은 “(돈바스 친러계 주민에 대한) 우크라이나군의 강간·고문·살해 행위에 대한 충분한 증거를 확보했다”며 “조만간 마리우폴에서 이들에 대한 전범 재판이 열릴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