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1월 중간선거를 100여 일 앞두고 경기 침체론을 반박하고 나섰다. 지난 28일(현지 시각) 미 상무부는 올해 2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연율 -0.9%로 집계한 속보치를 발표했다. 속보치는 향후 조정될 수 있지만, 일단 미국 경제는 지난 1분기 -1.6% 성장에 이어 2분기 연속 역(逆)성장을 기록하면서 ‘기술적 경기 침체’에 이르렀다는 분석이다. 미국 정계와 시장, 학계와 언론은 미 경제가 진짜 침체 상황인지, 침체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를 두고 들끓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성명을 발표, “지난해 역사적 수준의 경제 성장에서 벗어났다. 팬데믹 때 잃은 민간 부문 일자리를 모두 회복하면서 경제가 둔화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며 “우리는 올바른 경로 위에 있고 더욱 강력하고 안전하게 ‘일시적(transitory) 위기’를 헤쳐나갈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팬데믹 봉쇄 해제와 경기 부양책으로 경제가 5.7% 성장할 정도로 과열됐기 때문에, 이후 마이너스 성장은 자연스러운 경기 흐름에 속한다는 주장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실업률이 완전 고용에 가까운 3.6%에 불과하고, 2분기에만 100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창출됐다”고 강조했다. 침체 여부를 판단하는 중요한 지표인 고용이 강력하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대규모 대미 투자를 결정한 SK와 삼성전자 등 한국 기업까지 거론하며 “기업이 투자를 줄이기는커녕 늘리는 상황은 내게 침체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도 같은 날 “경제가 둔화하는 건 사실이지만, ‘전반적이고 광범위한 경제의 약화’를 뜻하는 침체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브라이언 디스 국가경제위원장도 “미 경제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소비가 플러스 성장(1%)을 했고, 고용도 매우 강력해 침체를 피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날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가파른 금리 인상에 따른 침체 우려에 대해 “미 경제에 잘 기능하는 영역이 너무 많아 침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바이든 정부는 ‘침체’의 정의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을 노리고 있다. 미국 경제의 침체 여부는 민간기관인 전미경제연구소(NBER) 경기순환결정위원회가 성장률과 소득·지출·고용 등 여러 지표를 종합해 판단한다. ‘침체 심판’에는 몇 개월, 심지어 1년 넘게 걸릴 수도 있다.
문제는 인플레에 지친 미국 국민이 이미 바이든의 경제 성적표에 최하위 점수를 매기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폴리티코·모닝컨설트 여론조사에서 투표권을 가진 미 성인 2000명 중 65%가 “미국은 현재 침체에 들어섰다”고 답했다. 올해 폭스뉴스(보수)와 CNN(진보), CNBC(경제전문) 등 3대 매체가 ‘침체’를 언급한 횟수가 2009년 금융 위기발 침체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는 방송 데이터 집계 결과도 나왔다. 뉴욕타임스는 “침체인지 아닌지 장황하게 설명하는 순간 그 정권은 패배자라는 정치 격언이 있다”고 했다.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내달부터 중간선거 운동을 본격화한다. 31일로 100일을 남겨 놓은 미국의 중간선거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속한 민주당이 의회 다수당 지위를 뺏길 경우 국정 동력을 크게 잃게 되고, 2년 뒤 대선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뉴스위크는 “미 역사상 경제가 악화된 경우 여당의 중간선거 승률은 매우 낮았다”고 전했다.
중간선거에서 다수당 지위 탈환을 노리는 공화당은 경제 실패론을 내세워 바이든 대통령을 맹공하고 있다. 존 버라소 상원 공화당 의원총회 의장은 28일 “마침내 ‘바이든표 침체’가 왔다”고 했다. 하원 세입위원회 공화당원들은 성명을 내고 “바이든 정부는 지난해 인플레이션도 ‘일시적’이라고 호도하더니, 지금은 침체를 재정의하려 한다”며 “자신들이 만든 잔인한 경제를 부인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인사 중 지난해 인플레 위기를 정확히 예견한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도 “미 경제의 연착륙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며 침체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경고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간선거 직전인 10월 말 한 번 더 분기별 성장률 성적표를 받아들게 된다. 3분기 성장률마저 마이너스를 벗어나지 못하면 선거에서 완패할 가능성이 크다. 그는 올여름 인플레와 침체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 위한 ‘민생 대전’에 올인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