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예일대 연구팀은 인체 장기 이식 공급 확대를 장기 목표로, 돼지 사체의 장기를 되살리는 실험을 했다. /조선일보 DB

미국 연구팀이 이미 죽은 돼지 사체의 뇌와 심장, 간, 신장 등 핵심 장기를 되살리는 데 성공했다. 장차 인간 장기 이식에 기여할 수 있는 획기적 연구라는 호평과 함께, 삶과 죽음을 나누는 경계를 무너뜨리며 윤리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3일(현지 시각) 예일대 네나드 세스탄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이 죽은 돼지의 중요 장기들을 되살렸다는 연구 결과를 게재했다. 세스탄 교수는 지난 2019년 죽은 돼지에게서 분리한 뇌의 일부 기능을 되살려 주목받은 신경과학자로, 이번엔 비슷한 원리를 적용해 뇌뿐만 아니라 전신을 대상으로 실험했다.

그래픽=이철원

연구팀은 실험용 돼지 여러 마리를 마취 상태에서 심정지 유도를 통해 죽게 한 뒤, 인공호흡 장치도 뗐다. 그리고 1시간이 지난 후 인공 심폐 장치와 비슷한 장비를 활용해 혈액 대체재인 ‘오르간엑스(OrganEX)’라는 특수 용액을 혈관에 주입했다. 오르간엑스는 영양분과 항염증제, 혈액 응고 방지제, 세포사 예방제, 신경차단제, 인공 헤모글로빈과 돼지의 피 등을 섞어 만들었다. 이 연구팀은 3년 전 돼지 뇌 재생 실험 때도 ‘브레인엑스(BrainEx)’라는 혈액 모방 용액을 공급해 뇌세포 일부 기능을 회복시켰다.

즉시 각 장기에 혈액이 돌아 산소가 공급되고 세포 활동이 재개되면서 핵심 기능이 돌아왔다. 돼지 심장이 다시 뛰고, 간에선 알부민(혈장 단백질의 구성 성분)이 생성되며 신진대사를 시작했다. 뇌세포도 다시 기능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 실험에선 오르간엑스에 신경 차단제를 포함시켰기 때문에 돼지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개별 뇌세포가 살아나도 뇌에서 전체적으로 조직적인 신경 활동이 일어난다는 징후는 없었다.

죽은 돼지의 뇌를 되살리는 실험에 이어, 뇌 뿐만 아니라 심장과 간, 신장 등 주요 장기 전반을 되살리는 연구를 이끈 예일대의 신경과학자 네나드 세스탄 교수. /예일대

연구팀은 체외막산소공급장치인 에크모(ECMO)를 부착한 돼지 등을 같이 실험했다. 에크모는 산소를 공급하고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 장치다. 에크모를 단 돼지 사체들은 몇 시간 후 몸이 뻣뻣해지고 장기의 세포막과 혈관이 분해되기 시작한 것과 달리, 오르간엑스를 투여한 돼지는 사후 몇 시간이 지나도 사체가 별로 뻣뻣해지지 않았다. 심지어 오르간엑스 돼지는 촬영을 위해 요오드 조영제를 주사하자 머리와 상체를 홱 움직여 과학자들이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다. 연구진은 돼지 머리가 움직인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척수 신경 자극과 관련됐을 가능성이 있을 뿐 뇌 재생과는 무관한 것으로 추정했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오르간엑스 돼지의 장기가 얼마나 작동했는지 명확히 밝히지 않았으나, 실험은 14일간 지속했다고 기술했다.

네이처는 “통상 심장사는 불가역적인 것으로 인식돼왔다. 심장이 멈추면 몇 분 내 체내 각 조직에 산소 공급이 중단되고 효소들이 세포막을 분해하며, 장기들은 구조가 빠르게 와해돼 부패가 시작된다”면서 “이번 실험처럼 사망 상태에서 장기 기능을 되살릴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했다. 실제 인체 장기 이식이 어려운 이유도 이 때문이다. 각국에선 통상 뇌사 환자의 사망 판정 후 약 두 시간 뒤에 장기 이식을 한다. 이 타이밍을 놓치거나, 심장 박동이 미약하게 계속돼 사망 선고가 늦어지는 경우, 장기가 훼손돼 이식을 할 수 없다. 이런 문제로 장기 기증을 원했던 이 중 50~60%가 기증에 실패한다고 한다. 만약 이번 연구처럼 사체에서도 장기를 살려내 장기간 기능하게 할 수 있다면, 장기 이식에 획기적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

지난 2019년 미 예일대 연구팀의 돼지 뇌 재생 연구에서, 돼지가 죽은지 10시간 지나 그대로 방치한 뇌(왼쪽)와 인공혈액을 주입해 재생시킨 뇌(오른쪽)를 비교한 사진. 뇌 기억중추인 해마에서 신경세포(녹색)와 아를 지원하는 성상세포(붉은색), 세포핵(파란색)이 크게 달라졌다./미 예일대

예일대는 이 기술의 특허도 출원했다. 그러나 “현재로선 이를 인체에 적용하는 것은 한참 먼 얘기”라고 밝혔다. 향후 되살린 장기를 다른 생체에 이식해 기능하게 할 수 있는지, 살아있는 동물 체내에서 손상된 심장이나 뇌 등을 복구시킬 수 있는지 등을 실험할 예정이라고 한다. 오르간엑스에 신경차단제를 쓰지 않은 상태에서 뇌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연구하면, 이 기술이 뇌졸중이나 익사 사고를 당한 사람들의 뇌 기능 회복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에선 인체 장기 이식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여러 연구가 진행 중이다. 지난 1월 볼티모어 메릴랜드대 의료센터 이종(異種)간 장기이식 연구소에서 의료진이 심장병 말기 환자 데이비드 베넷에게 이식할 돼지 심장을 보관 용기에 담고 있다. 이 심장은 유전자 변형을 통해 인체 내에서 면역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도록 특수 제작됐으며, 베넷은 두달간 생존한 뒤 심장이 멈춰 사망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뉴욕타임스는 학계가 이번 연구로 인해 ‘뇌와 심장, 폐 기능의 완전한 상실’이라는 죽음에 대한 의학적 정의가 도전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심장이 아직 뛰거나, 뇌 기능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사망 선고를 하고 장기를 적출해 이식할 수 있느냐 같은 윤리적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이스라엘에서도 동물을 활용한 인체 장기 관련 실험이 성공했다. 3일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이스라엘 바이츠만 연구소가 쥐의 줄기세포를 활용해 초기 배아와 유사한 구조의 인공 배아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 연구 결과는 학술지 셀에 게재됐다. 이 같은 실험이 성공한 것은 세계 최초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연구진이 만든 인공 배아는 초기 단계의 뇌와 박동하는 심장 등을 갖췄다. 연구진은 “배양한 인공 배아는 진짜 배아와 같은 것이 아니며, 살아있는 동물로 성장할 수도 없다”며 “이 기술을 통해 동물 실험을 줄이고 궁극적으로 인간에게 이식할 수 있는 세포와 조직을 복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