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방수사국(FBI)이 8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별장인 플로리다주(州) 마러라고 리조트를 압수수색했다. 미국에서 전직 대통령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뤄진 것은 처음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CNN을 비롯한 미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FBI는 이날 오전 10시부터 수 시간에 걸쳐 마러라고 리조트 압수수색을 벌여 ‘백악관 기밀문서 불법 반출’ 혐의와 관련된 문건들을 확보했다. 압수수색 당시 트럼프는 마러라고가 아닌 뉴욕에 있었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지난 1978년 제정된 미 대통령기록법은 대통령 및 부통령이 재직 기간 작성한 모든 공문서를 보존한 뒤 임기 후 연방정부 기록보존소(NARA)에 넘기도록 돼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엄중한 처벌을 받는다.
이에 앞서 올해 초 NARA는 유출된 기록물을 담은 서류 박스를 마러라고에서 회수한 뒤, 법무부에 조사를 요청했다. 이 중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개인 편지 등이 포함돼 있었다. 이어 지난 2월엔 미 하원 1·6 조사위원회가 ‘1·6 사태’ 전말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의 기록물 일부가 훼손됐거나 기록물 상당수가 외부로 반출된 사실을 확인했다. 1·6 사태는 작년 초 트럼프 지지자들이 대선 결과에 불복해 연방의사당에 난입한 사건이다.
트럼프가 재임 시절 기록물을 상습적으로 훼손했다는 보도도 계속됐다. 압수수색 당일인 이날도 뉴욕타임스(NYT) 백악관 출입기자 매기 하버맨은 백악관 내에서 찢겨진 채 변기에 버려진 문서 조각들을 찍은 사진 2장을 공개했다. 트럼프의 글씨체로 보이는 문서들이었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민감한 기록물들을 찢곤 했다”며 “이에 비서진이 문서 잔해를 회수해 테이프로 붙여서 보관하는 일이 빈번했다”고 전했다.
오는 11월 초 중간선거를 불과 3개월가량 앞둔 시점에서 압수수색이 이뤄진 것에 대해 “수사 당국이 강제 수사 돌입 시기를 고려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연방검사 출신의 CNN 법률자문역 엘리 호니그는 “(주요) 선거 90일 이내에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조치를 취하지 말라는 법무부의 내부 관례가 있는데, 이는 여러 행정부를 거치면서 항상 지켜져 왔다”며 “(이날 압수수색도) 이런 내부 관례를 고려해 (막판에)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번 수사가 트럼프의 내란 선동 혐의 및 선거 조작 수사로 이어질지도 주목된다. 그간 1·6 조사위와 검찰 등은 작년 트럼프 강성 지지자들이 의사당에 난입할 당시 트럼프가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 누구와 대화를 나눴는지 등을 밝힐 수 있는 문건을 찾아왔다. 이와 함께 검찰은 최근 트럼프가 대선에서 패한 뒤에도 대통령직을 유지하기 위해 선거를 조작하려는 음모를 짰다는 혐의에 대해서도 트럼프 참모들을 잇따라 소환해 심문해왔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이번 압수수색에서 이와 관련된 정황이 담긴 문건이 발견될 경우 트럼프 전 대통령의 수사 범위는 대폭 확대될 전망이다.
한편, 이날 FBI 압수수색은 트럼프 자신의 발표를 통해 외부로 공개됐다. 그는 성명에서 “그동안 우리는 정부의 관련 기관들과 협조하면서 조사에 응해왔다”며 “그런데도 통보도 없이 나의 집, 나의 금고까지 수색한 것은 불필요하며 부당한 행위다. 내가 2024년 대선에 출마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급진 좌파 민주당원들의 공격”이라고 했다. FBI의 압수수색이 자신에 대한 ‘습격(raid)’ ‘정치적 박해’라고도 했다. FBI와 법무부는 이번 압수수색에 대해 아무런 발표를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