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 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이 작년 7월 20일 상원 보건·교육·노동·연금 위원회에 출석해 증언하는 모습. /AP 연합뉴스

‘코로나 사령관’으로 불리며 팬데믹 최전선에서 미국 방역 정책을 이끌어온 앤서니 파우치(82) 미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이 올해 말 은퇴한다고 22일(현지 시각) 공식 발표했다. 파우치 소장은 “NIAID 소장과 백악관 수석 의료 고문 자리를 넘기고 물러날 계획”이라며 “50년 넘게 정부에서 일해왔는데, 이제 경력의 다음 단계를 추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과학과 공중보건 발전을 지속하고, 차세대 과학 지도자들이 미래의 전염병 위협에 대응하는 데 영감을 주고 조언이 되도록 그동안 배운 것을 사용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미국 보건 정책을 이끌어 온 데 대해 “일생의 영광(honor of a lifetime)”이라고 했다.

미국 최고 감염병 전문가인 파우치 소장은 코넬대 의대를 수석 졸업하고, 미국 국립보건원에 들어갔다. 그는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시절인 1984년부터 38년간 NIAID 소장을 역임하며 7명의 대통령을 보좌했다. 그는 코로나뿐만 아니라 에이즈, 탄저균, 조류 인플루엔자, 에볼라, 지카 바이러스 등 각종 감염병에 맞서 싸웠다. 2008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 자유 훈장’을 받기도 했다.

파우치 소장은 코로나 팬데믹 초기 마스크 착용과 백신 접종 등에 부정적이었던 트럼프 전 대통령과 지속적으로 대립했다. 2020년 4월에는 “좀 더 일찍 코로나에 대한 조처를 했더라면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트럼프 행정부의 늑장 대처를 비판했다. 다음 달 트럼프가 “코로나는 끝났다”며 방역 완화를 언급하자, 그는 “성급한 재개는 고통과 죽음을 초래할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트럼프가 ‘파우치를 해고하라’는 해시태그가 달린 트위터 글을 공유하며 몰아붙이고, 강성 트럼프 지지층은 살해 위협까지 했지만, 파우치 소장은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굵직한 정책 결정의 순간 그의 의견을 따라야 했다. 파우치 소장은 코로나 검사 강화, 이동 제한 조치 발령 등 대응 강화 방안을 관철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파우치 소장의 사임 발표 직후 성명을 내고 “그는 모든 미국인의 삶에 감동을 줬다”며 “그의 봉사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했다. 반면 공화당은 파우치 소장에 대한 의회 차원의 조사를 중간선거 이후 진행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공화당 일각에서는 미 보건 당국이 중국 우한연구소에 자금 지원을 계획했다며, 코로나 팬데믹 배후에 파우치 소장과 중국 정부 간 커넥션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해왔다. 사실상 미 정부가 지원한 돈으로 중국이 실험을 벌이다 코로나가 전 세계적으로 퍼졌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파우치는 의회 청문회 등에서 “(중국 정부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부인해왔다. 하지만 미 하원 감독개혁위 제임스 코머 공화당 간사는 이날 “(파우치가) 은퇴하더라도 의회의 감시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이번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과반을 차지하면 코머 의원은 감독개혁위 위원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