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23일(현지 시각) 러시아군이 점령 중인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전에 대한 안전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긴급회의를 개최했다. 회의 소집을 요구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미국이 제공한 무기를 이용해 자포리자 원전에 대한 포격과 무인기 공격을 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허위 주장을 하고 있다고 반발했고, 미국은 위기를 초래한 것은 러시아라며 러시아군 철수를 요구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책임 공방에도 불구하고 자포리자 원전 부근에서의 교전이 중지돼야 한다는 데는 안보리 참가국의 의견이 모두 일치했지만, 실제 어떤 안전 대책이 마련될지는 불투명하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이날 회의에서 로즈마리 디칼로 유엔 정무평화구축국 사무차장은 “자포리자 원전의 파괴는 자살행위나 다름없다”면서 안전 확보를 위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즉각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팀에 안전한 접근로를 제공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현재 자포리자 원전은 러시아군이 점령하고 있지만 원전 시설의 운영은 여전히 우크라이나 기술진이 맡고 있다. 원전 부근에서도 교전이 이어지면서 최근 원자로 부근까지 포탄이 떨어지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바실리 네벤자 주유엔 러시아 대사는 러시아군이 점령 중인 자포리자 원전을 스스로 공격할 리가 있냐며 미국 등 서방 국가를 향해 “키이우의 너희 부하들(우크라이나)이 하고 있는 일을 감싸려 하지 말고 그들이 공격을 멈추도록 하라”고 말했다. 그는 또 러시아는 IAEA의 사찰을 지지하며 “전문가들이 진짜 상황을 확인할 수 있도록” 조만간 사찰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반면 세르게지 키슬리차 주유엔 우크라이나 대사는 “체르노빌 원전 참사를 겪어본 우크라이나가 자국 내 원전을 공격하겠냐”며 러시아가 ‘대량의 허위 주장’을 늘어놓고 있다고 반박했다. 키슬리차 대사는 또 우크라이나도 IAEA 사찰단의 자포리자 원전 방문을 지지한다며 다만 원전을 장악하고 있는 러시아가 사찰관들을 인질로 삼을 것이 우려된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날 안보리 긴급회의가 소집되기 수 시간 전에도 우크라이나 군 정보 당국은 러시아가 자포리자 원전 부근의 소각재 저장고를 포격해 유독한 먼지를 발산시키고 일대의 방사능 수치 상승을 유발했다고 주장했다. 리처드 밀스 주유엔 미국 부대사도 “핵 시설을 전쟁의 주요 무대로 이용해야 할 이유가 뭐냐”라고 자포리자 원전을 점령하고 있는 러시아를 비난했다. 러시아군이 자포리자 원전에서 철수한 뒤 이곳을 비무장 지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날 IAEA는 최근 우크라이나 측이 보고한 원전 시설 훼손 사례들을 망라하며 사찰단 방문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협상이 타결되면 며칠 내에 사찰단 파견이 가능하다고 했다. 안보리는 24일 다시 회의를 열고 IAEA 사찰단 파견 문제의 진전 상황 등을 논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