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79)의 장점 중 하나는 미국 중류층과 쉽게 어울리는 정치적 능력이라고들 말한다. 올해 미 연방 의회 국정연설에선 “나무 땔감 가격이 오르면, 바로 집안 온도가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연설에서 늘 자동차 세일즈맨을 한 아버지, 품위와 노동의 정직성을 강조한 소박한 집안 분위기를 강조한다.

바이든 대통령이 연방 상원의원 시절 아버지 조지프 로비넷 바이든 시니어(2002년 사망)와 함께 찍은 사진. 아버지 바이든 시니어는 자녀들에겐 자상했지만, 알코올 중독자였다. 바이든의 증조부, 조부도 마찬가지였고, 바이든은 집안에 흐르는 알코올 중독의 저주를 끊기로 결심했다./조 바이든 2020 대선 캠페인 웹사이트

그러나 그에겐 결코 공개하지는 않는 가족사의 비밀이 있다. 예를 들어, 중류층 삶을 강조하지만, 사실 그의 아버지 조지프 로비넷 바이든 시니어(2002년 사망)는 수많은 미국 젊은이가 목숨을 잃은 2차 대전 때 군납(軍納) 사업으로 떼돈을 벌고 호사스럽게 살다가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미 주간지 뉴요커는 바이든 대통령이 그 중에서도 가장 숨기고 싶은 것은 집안 전체에 흐르는 알코올 중독이라고 최근 보도했다.

이 잡지는 바이든 집안과 주변 친인척 생존자들을 일일이 찾아내 인터뷰해, 바이든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등 직계(直系) 뿐 아니라, 아버지와 사업을 일구고 평생의 단짝이었던 이모부, 이종사촌 등이 모두 알코올 중독으로 비극적인 삶을 살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은 2007년에 낸 자서전 ‘지켜야 할 약속(Promises to Keep)’에서도 이러한 집안 내력인 알코올 중독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2007년에 나온 조 바이든 당시 연방 상원의원의 자서전 '지켜야 할 약속'. 바이든은 이 책에서 집안의 알코올 중독 문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자서전에서 어린 시절, 벽장에서 아버지의 폴로 채(mallet), 승마용 장화, 승마바지, 재킷을 발견한 얘기는 했다. 폴로는 그때도 미국에선 최고 상류층이 즐기는 경기였다. 바이든은 이 책에서 “아버지는 한때 큰 돈을 벌었다가 다 잃었지만, 나는 한 번도 그에게 그의 삶을 묻지 않았고, 아버지도 말하지 않았다”고만 했다.

뉴요커는 “알코올ㆍ마약 중독에 시달렸던 바이든 대통령의 둘째 아들 헌터의 기질은 바이든의 아버지 바이든 시니어에게서 온 것이며, 바이든은 알코올 중독을 집안에 흐르는 저주(curse)로 생각했다”고 보도했다. 아버지와 가까운 여러 친지가 심한 알코올 중독을 겪는 것을 보면서, 바이든은 금주를 결심했고, 맏형으로서 형제들은 물론, 아이들에게도 금주를 강조했다. 그러나 몇몇은 결국 중독 수준에 이르렀다.

바이든 대통령 집안의 ‘알코올 중독’ 내력에는 ‘쉰(Sheene)’이란 이름의 또 다른 집안이 등장한다. 아버지 조 바이든 시니어의 이모부 빌 쉰 시니어와 아들인 빌 쉰 주니어(1969년 사망)다. 아버지 바이든 시니어와 쉰 부자(父子)는 2차 대전에 군수물자 사업을 같이 했고, 이종사촌 간인 바이든 시니어와 쉰 주니어는 서로의 결혼식에서 신랑 들러리를 할 정도로 평생의 절친이었다. 매일같이 밤 늦도록 술을 마셔대는 술 파트너이기도 했다.

아버지 조 바이든 시니어에겐 이모부인 쉰 시니어는 알코올 중독에 바람둥이였고, 결국 이혼한 이모 앨리스는 17년간 조카인 바이든 시니어 집 근처에서 함께 살았다. 앨리스는 바이든 대통령과 그 형제들이 자라는 것도 봤다.

◇ 술에 찌들어 양조장에서 살았던 할아버지

바이든의 할아버지 조지프 해리 바이든은 증손자 헌터(대통령의 둘째 아들)와 똑같이 생겼다. 닮은 것은 또 있었다. 알코올 중독이었다. 조지프 해리는 당시 미 석유회사였던 아모코에서 좌천된 뒤, 술에 절어 살았다. 바이든의 아버지 바이든 시니어는 10대 시절, 동네 양조장에 쓰러져 있는 아버지를 찾아내 집으로 부축하는 것이 일이었다. 심지어 조지프 해리 바이든의 아버지 T 바이든(대통령의 증조부)은 술만 취하면 아내와 딸을 구타했고, 1912년 이혼했다. 조지프 해리는 1941년 48세에 뇌출혈로 사망했다.

◇ 아버지의 동업자ㆍ술친구가 된 이종사촌

아버지를 잃은 바이든 시니어는 직장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때 도운 사람이 그의 대부(代父)이자 이모부인 빌 쉰 시니어였다. 이모부는 사업과 탈세 수완이 뛰어났고, 바이든 시니어는 이모부, 자기보다 한 살 많은 이종사촌 쉰 주니어와는 단짝이 됐다. 세 사람은 이후 2차 대전 때 미 국방부를 상대로 방수(防水) 막사, 상선의 외벽을 폭탄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아스팔트 장갑(裝甲) 등의 군수 계약을 따내 떼돈을 벌었다. 빈털터리였던 바이든 시니어에겐 상류층의 삶이 열렸다.

벼락부자가 된 바이든 시니어는 메릴랜드 주의 숲에서 여우 사냥을 즐겼고, 폴로 경기를 했다. 아버지 바이든 시니어와 이모부인 쉰 집안에선 늘 술 파티가 열렸다. 이모부는 바람둥이, 도박꾼에 2~3주 줄곧 술에 취해 사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이모부는 아내를 거칠게 대했고 구타했다.

하지만 2차 대전 중에 이들의 사업은 불공정한 경쟁을 한 것이 드러났고, 미국 정부는 이익의 3분의 2를 토해내라고 명령했다. 지금 돈으로 800만 달러에 달하는 돈이었다.

결국 전쟁이 끝나고 바이든 대통령의 아버지는 그동안 이뤘던 모든 것을 잃었다. 그러나 수완 좋은 이모부 쉰 주니어는 여전히 롱 아일랜드에 방 20개 짜리에 스쿼시ㆍ테니스 코트가 있는 저택을 갖고 있었고, 바이든 시니어 가족은 그 집 신세를 져야 했다.

집에선 늘 술 파티가 열렸다. 조 바이든의 6촌 격인 빌 쉰 3세(2022년 사망)는 생전에 뉴요커에 “너댓 살이었던 우리는 어른들이 밤새 마신 술로 곯아 떨어진 아침에 술잔에 남은 술을 비우곤 했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 집안과 달랐던 외가(外家)

바이든 시니어는 잘 나가던 시절에, 뉴저지 주 스크랜턴에서 진 피네건(Finnegan)을 아내로 맞았다. 그러나 두 집안은 너무 달랐다. 피네건 집안은 검소하지만 교양 있는 가문이었다. 장인(바이든 대통령의 외조부)은 늘 골프와 스키트 사격, 승마, 자동차 경주 등에 대해 얘기를 하며 벼락부자 상류층 행세를 하는 사위가 못마땅했다. 피네건 집안은 “바이든네는 돈이 있지만, 피네건 집안엔 학식이 있다”고 말하곤 했다.

설상가상으로, 2차 대전 후에 도로 빈털터리가 된 바이든 시니어는 처가(妻家) 신세를 져야 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이었다. 게다가 바이든 대통령의 외삼촌은 2차 대전 때 남태평양에서 공군 조종사로 참전했다가 전사했다. 반면에 아버지 바이든 시니어는 부당 이득을 취하며 “미국의 치명적인 군수 산업계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비판을 받던 시절이었다.

결국 아버지 바이든 시니어는 현재 바이든 대통령의 고향 집이 있던 델라웨어 주 윌밍턴으로 나와 집을 마련했다. 농산품 시장에서 작은 기념품들을 팔았다. 한때 잘 나가던 군수 공장을 운영하던 그로선 매우 체면이 깎이는 일이었지만, 아내(바이든 대통령의 어머니)는 “당신이 이렇게 자랑스러운 적이 없었다”고 남편을 추켜세웠다. 아버지는 나중에 자동차 세일즈맨이 됐다.

아버지의 이종사촌 쉰 주니어는 이모부의 알코올 중독ㆍ바람기를 빼 닮았다. 이모는 남편을 떠나 조카네 집 근처로 왔고, 나중엔 이종사촌 쉰 주니어도 바이든 시니어의 집에서 함께 살았다. 두 사람은 술에 취해 가짜 화재 경보를 울려 소방차가 출동하기도 했다. 아버지의 이종사촌 쉰 주니어는 54세에 간 경화증으로 숨졌다.

자동차 세일즈맨 아버지 바이든 시니어는 종종 어린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부자 동네를 지나가곤 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남동생 제임스는 뉴요커에 “우리는 한 번도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아버지에겐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하지 못한 것을 미안해 했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아버지는 2002년 9월 86세로 숨졌다. 맏아들 바이든은 당시 추모사에서 “평생 아버지를 알았지만, 그의 인생을 축약하는 것은 내 능력 밖”이라며 “아버지는 현실의 짐을 지고 살았던 몽상가였다”고 회고했다.

◇ 바이든 대통령의 금주 결심

바이든은 동생들과 자녀들에게 21세 성년(成年)이 되기 전까지는 반드시 금주하라고 강조하며, 금주하면 400 달러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작은 아버지 프랭크는 “조(대통령)는 알코올 중독이 유전적이긴 하나, 본인이 촉발해야만 유전자가 활성화되는 질병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 같다”고 뉴요커에 말했다.

그러나 22세에 첫 술을 입에 댄 동생 제임스 바이든은 결국 알코올 중독에 빠졌고 황달 증세를 보여 치료를 받아야 했다. 작은 아버지 프랭크도 금주 치료와 중독을 되풀이하는 “끔찍한 투쟁”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맏아들 보(Beau)는 모범생이라 ‘보안관’이란 별명까지 얻었지만, 결국 코소보 내전 때에는 장교로 참전해서 술을 입에 대기 시작했다. 반항기가 강했던 둘째 아들 헌터는 알코올 중독에 빠졌고, 2015년 형이 죽은 뒤에는 코카인 중독에도 빠졌다. 그는 2019년 이후 “모든 것을 끊었다”고 말한다.

◇아버지의 단짝 술친구였던 쉰(Sheene) 가족은 ‘손절(損切)’

바이든 대통령은 아버지의 이종 사촌이자 술친구였던 쉰 가족과는 절연(絶緣)했다. 어린 시절 함께 어울렸던 6촌 쉰 3세의 아내 트루니는 “1972년 조 바이든이 델라웨어주 연방 상원의원이 됐을 때, 길거리에서 만나 인사를 했더니 ‘당신, 누구인지 알죠’라는 온기(溫氣) 없는 대답이 다였다”고 뉴요커에 말했다. 쉰 주니어의 딸이자, 아버지 바이든 시니어의 대녀(代女)였던 메리 제인도 술에 취해 목숨을 끊었다.

쉰 3세가 법률 소송의 도움을 받으려고 6촌인 상원의원 바이든에게 전화했지만, 끝내 답신은 없었다. 심지어 바이든 대통령은 자기 집안과 도저히 뗄 수 없는 쉰(Sheene) 가족을 자서전에서 언급하면서 ‘Sheen’이라고 썼다. 쉰 집안에선 “고의적”이라고 의심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6촌 쉰 3세는 지난 1월22일 췌장암으로 숨졌다. 아내 트루디는 “그나마 알코올 중독으로 죽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중독의 고리가 끊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트루디는 ‘바이든네가 남편의 죽음을 알까’ 궁금해 했다. 그의 딸은 “그들은 백악관에 살고, 우리는 이동형 차량주택에 사는데”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