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법무부는 지난달 31일, 미 연방수사국(FBI)이 8월 8일 도널드 트럼프 전(前) 대통령의 플로리다 주 마라라고 리조트에 대한 압수 수색에서 모두 15개 상자 분량의 비밀 서류 100여 건을 수거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지난 6월 초 트럼프의 변호사들이 자진 반납했던 비밀 서류들과는 별도의 것이다.
미 법무부는 이날 공개 시 미국 안보에 미치는 악영향의 정도에 따라 분류되는 ‘탑시크릿(top secret)’ 25건, ‘시크릿’ 92건, ‘대외비(confidential)’ 67건의 자료가 마라라고의 지하 보관소에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트럼프는 FBI의 압수수색 나흘 뒤인 8월12일 성명을 내고 “마라라고에 있는 서류는 내가 백악관을 떠나면서 모두 비밀 해제(declassify)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실제로 미국 행정부의 비밀 분류 및 해제에 대한 최종 권한은 미국 대통령에 있다. 또 그동안 미 민주당 내 좌파는 너무 많은 자료들이 ‘비밀’로 분류돼 있다고 비판해 왔다.
◇ 미 대통령도 절대 ‘해제’할 수 없는 특급 비밀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미국 대통령이 비밀 해제할 수 없는 사안도 있다. 바로 미 중앙정보국(CIA)ㆍ국방정보국(DIA) 등에 소속된 미 첩보요원(스파이)들의 정체에 대한 비밀과 핵무기 및 원자력과 관련된 비밀 서류다.
1946년에 제정된 이래 개정된 미 원자력법은 원자력ㆍ핵무기의 생산과 사용에 관한 어떠한 것도 기본적으로 비밀로 분류했다. 핵무기의 위치, 핵 공격을 촉발하는 시스템 등에 대한 정보는 ‘태생적’으로 비밀이다.
극단적인 예로, 트럼프가 자신의 마라라고 리조트에 앉아 우라늄 농축에 대해 ‘신박한’ 신기술을 고안하고 이를 리조트의 냅킨에 메모했다면, 그 냅킨은 자동적으로 기밀 문서가 된다. 트럼프가 이를 자기 집에 보관하는 것은 ‘기술적으로는’ 불법이다. 이밖에, 외국 정부가 미국에 공유한 비밀 자료에 대한 해제 권한은 이 정보를 애초 공유한 외국 정부에 있다.
◇ 미 행정부의 1차 비밀 분류관만 약 1500명
군부를 포함한 미 행정부의 비밀 분류 작업은 대통령의 행정명령(Executive Order)에 따른다. 이 명령은 빌 클린턴ㆍ조지 W 부시ㆍ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거치면서 계속 수정됐지만, 트럼프나 바이든 현 미국 대통령은 이를 업데이트하지 않았다.
이 행정명령에 따라, 400여 만 명이 일하는 미 행정부 안에는 1491명(작년 현재)의 1차 비밀 분류관(original classifier)이 존재한다. 이들은 행정부 세부 지침에 따라, 서류의 비밀 등급을 정하고, 정부 내 공개 범위를 정한다.
이밖에, ‘특별 접근 프로그램(Special Access ProgramsㆍSAP)에 속한 기밀이 있다. 예를 들어, 오사마 빈라덴의 추적과 사살에 관한 정보는 SAP에 속해 매우 제한한 수의 최고위 관리만 접할 수 있다. 또 미 정보기관들이 수집ㆍ분석한 정보는 ‘민감 차단 정보(Sensitive Compartmented InformationㆍSCI)’로, 이 역시 열람 대상이 극소수다.
SCI나 SAC 기밀은 미 행정부의 특별히 밀폐된 시설에만 보관할 수 있다. 그러나 미 법무부가 지난달 31일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수거했다고 공개한 기밀에는 SCI 분류된 것들이 꽤 있었다. 애초 마라라고에 보관될 수 있는 성격의 문서가 아니었다.
◇ 공개 자료보다 ‘비밀’ 자료가 더 많아
미국의 좌파는 너무 불필요하게 많은 자료가 ‘비밀’로 분류돼 있다고 비난해 왔다. 실제로, 2004년 당시 하버드대의 물리학자인 피터 갤리슨은 ‘지식의 제거(Removing Knowledge)’라는 논문에서 “미 행정부의 비밀 자료는 세계 최대 도서관인 미 의회 도서관에 수장된 자료보다도 많다”며 “전세계적으로는, 공개 자료보다 각국 정부의 비밀 자료가 5배나 더 많다”고 주장했다.
◇ 트럼프는 “내가 재직 중에 다 비밀 해제했다”는데
미국 정부가 생산한 자료의 비밀 분류와 해제의 최종 권한은 미 대통령에게 있다. 이 권한의 행사는 반드시 공식 문서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트럼프 측 변호사들은 주장한다. 따라서 트럼프가 백악관에서 잔뜩 비밀 서류를 차량에 실어 플로리다주의 마라라고 리조트로 보내면서 “비밀 해제”라고 선언했다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의 두 전직 백악관 비서실장이나 조 바이든 행정부의 법무부는 트럼프가 대통령 재직 중에 말로든, 문서로든 마라라고에 가져간 기밀 서류에 대해 ‘비밀 해제’ 조치를 취한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실제로 트럼프는 2020년 10월 6일, 러시아가 미 대선에 개입했다는 “최대 사기”와 힐러리 클린턴의 이메일 유출 사건에 대한 모든 자료를 비밀 해제했다고 소셜미디어에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공개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1차 분류관들이 트럼프의 선언에 따라 비밀 해제를 할 수 있는 행정적 조치가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미국 대통령의 ‘비밀 해제’ 권한은 재직 중으로 제한된다. 따라서 ‘구두(口頭)에 의한 비밀 해제’ 논리를 따르더라도, 바이든 후임 대통령이 이들 서류를 비밀로 ‘재분류’하면 그만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