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다음 달 15~16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리는 주요 20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대면하게 될지 주목된다. 미·러 양국 모두 두 정상이 G20에서 만날 계획은 없다고 말하면서도, 상대가 진지하게 회담을 제안한다면 응할 수도 있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1일(현지 시각) 방영된 CNN 인터뷰에서 ‘푸틴이 합리적 행위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나는 그가 크게 오산한(miscalculated) 합리적 행위자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지난 6일 한 선거 자금 모금 행사에서 그는 푸틴이 전술핵무기를 사용하면 ‘아마겟돈(Armageddon·종말적 전쟁)’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런데 닷새 만에 어조가 좀 부드러워진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푸틴)가 (우크라이나 침공) 결정을 한 직후에 한 연설을 들어보면 자신이 모든 러시아어 사용자의 통합된 리더가 돼야 한다는 얘기를 했다”며 “그의 연설은 비합리적이었지만 그의 목적은 비합리적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푸틴)는 자신이 ‘어머니 러시아’의 집인 키이우에서 두 팔 벌린 환영을 받으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냥 완전히 잘못 계산한 것”이라고 했다.
‘G20에서 푸틴을 만나려고 하느냐’는 질문에 바이든은 “그와 만날 의사는 없다”면서도 “그렇지만 예를 들어 G20에서 그가 내게 다가와서 ‘그라이너 석방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고 하면 그와 만날 것이다. 경우에 따라 다르다(it would depend)”고 답했다. 곧바로 “지금은 그(푸틴)와 만나야 할 이유가 없다”는 말을 덧붙이기는 했지만, 지난 2월 모스크바에서 마약 밀수 혐의로 체포된 뒤 징역 9년형을 선고 받은 미국 여자프로농구(WNBA) 스타 브리트니 그라이너 석방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라면 푸틴과 회담할 수도 있다고 말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카린 장 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12일 “그(바이든)가 말한 대로 푸틴 대통령과 만날 의사는 없다”면서 “그는 러시아 측이 우리가 제시했던 심각한 제안을 받아들이든가 아니면 성실하게 협상하기 위한 진지한 역제안을 해야 한다고 강하게 믿는다”고 말했다. 당장 G20 회담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러시아가 진지하게 협상에 임하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여지는 남긴 것이다.
이날 러시아도 미묘한 반응을 보였다. 로이터통신은 푸틴의 외교 정책 참모인 유리 우샤코프가 기자들에게 “아직 G20까지는 많은 시간이 남았다. 두고 볼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측은 아직 푸틴의 G20 참석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다. 전날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바이든과 푸틴의 만남 가능성에 대해 “여러 번 말했듯 우리는 회담 자체를 거부한 적이 없다. 만약 제안이 온다면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측이 먼저 정상회담을 제안하면 검토해 보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