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교 82주년을 맞은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간 전략적 파트너십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사우디 법원이 자국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글을 쓴 사우디 출신 미국 시민권자에게 징역 16년형을 선고하자,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 기업들의 사우디 내 사업 확장 자제 권고를 검토 중이다. 지난 7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사우디를 방문해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회담하면서 잠시 복원되는 듯했던 양국 관계가 오히려 더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18일(현지 시각) 워싱턴포스트는 사우디 법원이 지난 11월 가족 방문을 위해 사우디를 방문했다가 체포·구속된 미국 시민권자 사드 이브라힘 알마디(72)가 이달 초 징역 16년형과 석방 후 여행 금지 16년형을 선고받았다고 보도했다. 미국 생활 중 트위터에 사우디 정부를 비판하고 부패 문제를 언급하는 글을 14건 썼는데, 사우디 법원은 이를 문제 삼았다. 알마디의 아들은 뉴욕포스트에 “바이든은 내 아버지를 팔았지만 석유를 받지 못했다. 백악관이 얻은 것은 망신살 외에 아무것도 없다”고 함으로써 바이든 대통령은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다.
이런 가운데 NBC방송은 17일 전·현직 미 행정부 당국자 3명을 인용,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 기업들이 사우디와 연관된 사업을 확장하지 않도록 권고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바이든 행정부가 오는 25~27일 리야드에서 열리는 사우디의 연례 투자 유치 행사 ‘미래 투자 이니셔티브 콘퍼런스’에 미 정부 당국자를 보내지 않을 예정이라고 전했다. ‘사막의 다보스’라고도 하는 이 콘퍼런스는 빈 살만 왕세자가 중시하는 행사다. 이런 움직임은 바이든 대통령이 사우디에서 유가 하락을 이끌어내지 못하자, 다음 달 8일 중간선거를 앞두고, 오히려 사우디에 강하게 맞서는 방향으로 선회했음을 시사한다.
양국 관계는 미국 영주권자로서 워싱턴포스트 객원 칼럼니스트 활동을 했던 사우디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2018년 주튀르키예 사우디 총영사관을 방문했다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터지고, 빈 살만 왕세자가 그 배후로 지목되면서 틀어지기 시작했다. ‘인권 중심 외교’를 표방하는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사우디를 “왕따(pariah)”로 만들겠다고 했다.
양국 간에 잠시 화해 조짐이 보인 것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 유가가 치솟을 때였다. 중간선거를 앞두고 유가를 잡아야 하는 바이든 대통령은 인권 단체들의 비판에도 사우디를 방문해 빈 살만 왕세자와 ‘주먹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선거를 한 달여 앞둔 시점인 지난 5일 사우디를 중심으로 한 OPEC+(플러스)가 하루 200만배럴 감산 합의를 발표하자, 바이든 행정부와 민주당은 분노했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OPEC+가 러시아와 연대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적어도 바이든 재임 중 양국 관계 회복은 어려워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사우디가 중간선거 전에 민주당의 입지를 약화시키고, 장기적으로는 사우디에 우호적인 정권이 들어서도록 하기 위해 바이든에게 협력하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코리 샤키 미국기업연구소 외교·국방정책 국장은 블룸버그통신에 “그들(바이든 행정부)이 문제를 개인적인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사우디에서 뭔가 얻어내려면 또다시 굴욕적으로 양보해야 할 것”이라며 “회복이 어려운 관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