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에너지 대란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가운데 미국이 소형 원전을 무기로 아프리카 등 제3 세계 ‘에너지 빈국(貧國)’에 대한 영향력 확대에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이 국가들은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를 추진하는 중국이 집중 공략 대상으로 삼은 경우가 많아 미국이 세계 주요 지역에서 중국의 입김을 차단하는 전략으로도 주목을 받고 있다.
미 국무부는 26일(현지 시각) “미·일·가나 3국은 워싱턴 DC에서 열린 국제원자력기구(IAEA) 원자력 각료 회의에서 가나에 SMR 기술을 배치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협력하기로 합의했다”며 “가나는 아프리카에서 혁신적인 핵 기술을 보유한 중심 국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고 했다. 이번 협의로 미국의 SMR 선두 기업인 뉴스케일파워와 일본 중장비 업체 IHI, 일본 플랜트 건설 업체 JGC 등은 가나에서 SMR 건설을 위한 타당성 조사를 진행하게 될 것이라고 일본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미국의 SMR 원천 기술과 일본의 시공 기술이 협력하는 형태로 미·일 양국이 가나에 진출하게 된 것이다. 크기가 기존 원전의 100분의 1 정도인 SMR은 안전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해 전 세계 에너지 시장의 ‘게임 체인저’로 평가받는다.
아프리카 국가 중에서도 가나가 처음으로 미국과 협력하게 된 것은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가나는 안정적인 에너지원을 확보하기 위해 원전 도입에 적극적이었다. 미국은 그동안 중국이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통해 천문학적인 자본을 가나에 투입해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경계해왔다.
가나의 총부채 380억달러 중 중국에 진 빚이 약 10%(35억달러)에 달하는데, 미국은 중국이 일대일로 추진 과정에서 아시아·아프리카 개발도상국을 ‘부채 함정’에 빠뜨리는 방식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가나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작년 11월엔 미 대표단을 가나에 보내 백신 생산 허브 설치, 디지털 정보 격차 해소 등의 프로젝트 추진 방침을 밝혔다. 워싱턴 소식통은 “중국도 일대일로를 통해 아프리카 등 전 세계 국가에 원전 수출을 시도하고 있다”며 “미국의 원전 기술을 전 세계에 구축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 안보 전략”이라고 했다.
이번 협력은 개발도상국에 미국의 첨단 원전 기술을 지원하기 위해 바이든 미 행정부가 작년 4월 출범시킨 ‘SMR 기술의 책임 있는 사용을 위한 기초 인프라(FIRST) 프로그램’에 따른 것이다. 제3세계 국가에 미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동시에, 장기적으론 미국 원전 기업들이 이들 국가에 진출할 수 있도록 촉진하기 위한 ‘에너지 인프라 구상’의 일환이다.
미국은 가나 이외에도 아프리카 여러 국가에 SMR을 보급하는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상국으로는 세네갈, 케냐, 우간다, 탄자니아, 잠비아 등이 거론되고 있다. 미국 국립과학아카데미(NAS)가 발간하는 잡지 ‘과학 및 기술 이슈’는 최근호에서 “미국의 규제 당국과 기업은 아프리카 대륙 전역에 (SMR 등) 원전 기술을 배치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은 SMR 기술 지원 구상이 경제적 측면뿐만 아니라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도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앞서 지난 4~5월 미국은 라트비아, 루마니아와 잇따라 SMR 건설 지원에 합의했다. 루마니아와 라트비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장기화로 에너지난을 겪자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원 확보를 위해 SMR을 선택했다. 원전이 없는 폴란드의 안제이 두다 대통령도 지난 3월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미국 정부와 기업들의 지원으로 원전 사업을 곧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