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등 선진국은 대형 행사 등에 사람이 많이 모일 것으로 예상될 경우, 연방 정부 및 소방·경찰 당국이 상세한 ‘대규모 인파(人波) 관리’ 매뉴얼을 바탕으로 ‘컨틴전시 플랜(비상 계획)’을 가동한다. 군중 규모가 커 통제가 어려워지면 대형 사고가 날 수 있기에 관련 당국이 미리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지난 2021년 12월 31일 뉴욕 타임 스퀘어에서 새해 전야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게티이미지 코리아

미국은 대형 행사가 있을 경우 ‘압사 방지’를 위해 위기 관리 컨트롤타워인 연방재난관리청(FEMA)이 2005년 만든 ‘특수 상황 비상 계획(Special Events Contingency Planning)’을 지침으로 삼고 있다. FEMA 산하 재난관리교육원(EMI)은 미 전역의 공무원(안전 관련)과 소방관, 경찰 등을 대상으로 이 매뉴얼을 숙지하도록 하고 있다.

222쪽 분량의 이 지침은 좌석을 따로 지정하지 않은 외부 행사 때는 1인당 공간이 최소 0.3~0.5㎡ 필요하다며 ‘적정 관중 밀도’ 수준을 제시하고 있다. 1㎡당 2~3명 이상 몰릴 경우엔 당국이 미리 관련 조치를 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특히 대형 군중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에는 당국이 사람이 모이는 곳을 구획화(sectoring)하거나 바리케이드를 치는 등의 조치로 적절히 공간을 분리하는 관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또 “군중 충돌(crowd crush)을 막기 위해 (구조 작업 등에 필요한) 여분의 비상 공간이 확보돼 있는지도 미리 확인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군중 밀집을 신경 쓰는 것 외에도 사고가 날 것을 대비해 항상 비어 있는 공간을 확보해놔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매뉴얼에 따라 미 당국은 일정 구역에 군중이 과도하게 몰릴 경우 사방에 바리케이드를 쳐 더 번잡해지는 것을 막고 있다. 이동을 어느 정도 제한해 군중이 한쪽으로 급속히 몰리는 현상도 방지할 수 있다. 바리케이드로 구획된 곳들 사이에 공간을 남겨놔 군중이 이동할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하고 있다. 대도시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 매년 열리는 새해맞이 행사 ‘볼 드롭(ball drop)’엔 매년 100만~200만명이 몰린다. 그럼에도 좀처럼 대형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이런 안전 조치를 철저하게 시행하기 때문이다. 미 전역에서 10만명 넘게 몰린 2021년 9·11 테러 20주년 행사 때는 폭발 현장인 ‘그라운드 제로’에서 반경 100m 정도는 뉴욕 경찰(NYPD)이 구획별로 통제, 사람이 너무 몰리지 않게 했다.

미 법무부 산하 법무지원국(BJA)은 지난 2013년 미 싱크탱크 CNA와 협력해 연방 정부와 주 정부 당국이 참고할 수 있는 ‘대규모 인파·행사 관리 매뉴얼(LSSE)’을 발표했다. 이 매뉴얼은 “(당국이) 특정 행사에 대한 안전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특정 장소에) 허용되는 최다 인원을 설정해야 한다”며 “특히 (행사 참석) 인원의 연령·성별 등도 고려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어 “어린이와 노인으로 구성된 관객은 의료 시설이 더 필요한 경향이 있다”며 “이들은 청소년이나 성인보다 ‘압착 부상(crush injury)’을 당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와 별도로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홈페이지 등에서 자국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대형 행사에 참석할 경우에 지켜야 할 권고 사항을 소개하고 있다. ‘군중 충돌’에 휘말렸을 경우, 권투 선수처럼 가슴 앞에 손을 댈 것(숨 쉴 공간 확보), 군중의 힘에 저항하지 말 것, 움직임이 소강 상태를 보이면 대각선으로 이동해 군중의 가장자리로 이동할 것, 넘어질 경우 몸을 공 모양으로 말아서 스스로를 보호할 것 등의 사항을 명시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도 대형 행사가 열릴 때 주최자는 지방 당국과 논의해 대책을 마련하라고 권하고 있다. 새해 전야에 불꽃놀이가 벌어지는 파리 개선문과 에펠탑 주변엔 매년 경찰과 치안대(gendarmerie)가 약 1만명 투입된다. 에펠탑과 개선문 주변 시설에 군중이 난입하거나 시설을 파괴하는 것을 막고자 일부 구역에 바리케이드를 쳐놓고 소요 우려가 있을 경우 곧바로 경찰을 투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