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대 도시 뉴욕에 거주하는 뉴요커들 연봉이 일제히 공개된다. 기업들이 채용 공고를 낼 때 직책별 급여 범위를 밝히는 ‘급여공개법(salary transparency law)’이 1일(현지 시각)부터 뉴욕시에서 전면 시행되면서다. ‘블랙박스’ 같았던 민간 기업 임금 체계가 공개되면서 후폭풍도 예상된다.
이 법은 직원 4명 이상인 모든 기업이 뉴욕 시민 등을 대상으로 채용 공고를 내거나 내부 승진·전근 희망자 공고를 낼 때, 해당 직책에 대해 지급할 수 있는 최저~최고 임금 구간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보험 혜택이나 보너스 같은 임금 외 보상책은 공개하지 않아도 되지만, ‘달러 이상’처럼 막연하게 적으면 안 된다. 법을 어기면 25만달러(약 3억50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한다.
뉴욕시 인권위원회 주도로 제정된 급여공개법은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원칙에 따라 성별이나 인종 등에 따른 임금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마련됐다. 2020년 민간 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여성의 연봉은 동일 직책 남성의 84%에 그치고, 유색 인종 여성의 임금 차별은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연봉을 공개하는 연방정부에선 여성 공무원 연봉이 남성의 93% 수준에 달했다. 미 콜로라도·워싱턴·캘리포니아주, 프랑스와 독일에서도 비슷한 법을 시행하고 있다.
최근 MZ세대 직장인 사이에선 소셜미디어를 통해 연봉을 공개하고 비교하는 것이 새로운 트렌드가 됐다. 뉴욕타임스는 “팬데믹 이후 확산한 재택근무와 주4일 근무, 노조 설립 증가 등 급변하는 고용시장 상황에 급여공개법이 또 다른 전기(轉機)를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법 시행을 며칠 앞두고 JP모건과 시티그룹, 아메리칸익스프레스 등 월가와 뉴욕 소재 글로벌 기업들이 연봉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미 최대 은행 JP모건 최고경영자는 3450만달러(약 488억원)를, 부사장급은 17만~18만달러(약 2억4000만~2억5500만원)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메이시 백화점 판매원은 5만~8만달러를 받았다. 한 회계법인은 세무 관리자의 연봉 범위가 15만~43만달러로 너무 넓어 도마에 올랐다.
대부분 기업에서 법 시행을 앞두고 비상이 걸렸고, 규모가 작은 기업일수록 반발이 크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전했다. 근로자와 사용자가 일대일로 협상해온 연봉에 ‘정찰제 가격’이 붙는 순간, 동종 업계와 사내 임금이 한눈에 비교돼 임금 인상 요구나 이직 도미노가 올 수 있다는 것이다. 구인난과 인건비 상승, 고물가가 심화할 가능성도 크다.
기업들은 “내 연봉이 왜 이것밖에 안 되느냐”며 항의할 직원들의 불만에 어떻게 대응할지 비상 대책을 세우고 있다. 일부 기업은 공식 채용 공고를 거둬들이고 구직자가 개별적으로 신청서를 보내게 하거나, 구인 에이전트 등을 통해 비공식 루트로 구직자와 접촉하고 있다. 이 법이 뉴요커에게만 적용된다는 점을 이용, ‘뉴욕시 이외 거주민’을 대상으로 한 원격 근무자 채용으로 바꾸는 경우도 급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