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매사추세츠주에 매물로 나온 단독주택. 미국에서 가장 일반적인 주택담보대출인 30년 만기 모기지 금리가 올 초 3%대 중반에서 급격히 올라 10월 7%를 돌파하면서, 부동산 거래가 중단되다시피 하고 관련 경기가 급격히 침체하고 있다. 미 기준금리가 4%가 되면 모기지 금리 등 시중 금리는 3%p 정도 더 붙는다. /AP 연합뉴스

“지난 5월만 해도 집 보러 다닐 땐 사겠다는 사람이 몰려 30분 넘게 줄을 서 기다려야 했다. 집을 보기 전에 계약금부터 넣는 사람도 있었다. 요즘은 부동산 중개인이 ‘30분만 더 이야기하자, 어떤 조건이면 사겠느냐’며 놔주질 않는다.”

미국 뉴욕시 근교의 주택 구입을 고려 중인 30대 부부 에이든·니키씨는 2일(현지 시각) 기자에게 확 달라진 최근 부동산 시장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이들은 “연방준비제도의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었다”며 “올 초만 해도 (정부와 은행이) 돈 뿌린다고 난리 쳤는데, 어떻게 몇 달 만에 이렇게 변할 수 있느냐”고 했다.

연준이 이날 ‘4연속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하는 등 9개월 만에 금리를 제로에서 4%까지 끌어올리면서, 미국에선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시중 자금이 말라붙기 시작했다. 하지만 연준의 목표와 달리 물가가 오히려 오르면서 고물가와 고금리의 이중고가 사람들을 덮치고 있다. 젊은 세대가 생전 처음 경험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물가 상승을 동반하는 경기 침체 현상)이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2일(현지 시각) 워싱턴DC의 연준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준은 이날 사상 초유의 4연속 자이언트 스텝(한 번에 0.75%포인트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 로이터 연합뉴스

부동산 시장은 직격탄을 맞은 분위기다. 기준금리가 치솟자 시장 금리의 지표(벤치마크) 역할을 하는 30년 만기 모기지(주택담보대출) 금리가 반 년 새 2배 이상으로 뛰어 7%를 돌파했다. 이 경우 미 중위(中位) 주택 가격인 38만5000달러(약 5억4900만원)짜리 집을 살 때 부담하는 모기지는 월 750달러(약 106만원)씩 늘어난다. 비싼 대출을 끼고 집을 사봤자 긴축에 따른 침체로 향후 집값이 떨어져 ‘깡통’을 차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사람이 급증하면서 주택 매수자가 급감하고, 건설 경기도 주저앉고 있다.

주택 수요자들이 매매를 미루고 일제히 임차로 전환하면서, 월세(렌트)는 치솟고 있다. 뉴욕 맨해튼의 방 하나짜리 아파트 월세가 1년 새 1000달러 넘게 올라 5000달러(약 713만원)에 달한다. 렌트는 미 가계 지출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고강도 금리 인상에도 물가 상승률이 8%대 고공 행진을 이어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동차 리스 금리가 뛰고, 신용카드 연체 이자율이 20%대를 돌파하는 등 곳곳에서 부채 부담이 급격히 늘고 있다.

지난 10월 미국 버지니아의 한 주유소에서 한 남성이 주유를 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다 산유국들의 감산 결정으로 미국 휘발유값이 치솟는 등 물가가 고공 행진하고 있다. 연준이 각종 부작용에도 금리를 계속 올리는 이유다. /EPA 연합뉴스

목돈이 들어갈 곳이 늘면서 다른 분야 소비는 크게 위축되고 있다. 올해 뉴욕 일대에서 앞마당에 핼러윈 장식을 한 집은 작년의 절반도 안 됐다. 의류 도매업을 하는 헨드릭스씨는 “옷은 경기를 많이 타서, 여름 이후 장사가 끊기다시피 했는데 대출 비용은 늘었다”며 “직원과 가족을 굶길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차입 경영 비율이 높은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은 금리가 오를 때마다 주가가 급락하고 있다. 자금 숨통이 막힌 실리콘밸리 테크 기업들에선 감원 피바람이 분다. 최근 트위터를 인수한 일론 머스크는 직원 절반을 자르겠다고 했다. 월가 대형 은행에서 여신 업무를 담당하는 스테파니(43)씨는 기자에게 “금리 부담에 대출이 줄자 회사에서 ‘사업 전망이 안 좋다’는 말이 계속 나온다”며 “감원 바람이 불까 봐 대면 출근을 늘리며 회사 눈치를 보고 있다”고 했다.

서비스와 제조업 분야에선 구인난이 극심하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노동 인구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구직 건수보다 구인 건수가 2배 많다. 인건비 상승은 물가를 더 밀어 올리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2일 “연준의 통화 긴축 정책은 ‘수요’만 억누를 뿐, 아파트나 차, 밀가루, 노동력 등 ‘공급’을 늘리진 못한다. 이것이 고금리와 고물가가 동반하는 이유”라고 분석했다.

미국 뉴욕시 맨해튼에서 사람들이 타코벨과 피자헛 등 레스토랑 체인 앞을 지나고 있다. 미 구인난과 물류난, 그리고 대출 부담 급증에 따른 기업 비용 상승 등으로 연준의 고강도 긴축에도 물가 고공 행진이 계속되고 있다. 오는 8일 중간선거를 앞두고 여당 심판론이 비등한 상황이다. /로이터

현지 주재원과 유학생들도 비명을 지르고 있다. 월세부터 식료품, 주차비까지 현지 물가가 자고 나면 오르고 있는데, 연준 금리 인상에 따른 ‘강(强)달러’로 원·달러 환율이 치솟아 한국에서 송금할 때 환차손까지 커졌기 때문이다. 한 기업 주재원은 “식당 음식 값이 20% 이상 올랐고, 종업원에게 줘야 하는 팁은 15%에서 20~25%로 뛰었다”며 “1100원 하던 환율이 1400원대가 되니 내 월급으로 느끼는 체감 물가는 딱 두 배 오른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 여론조사에서 미국 유권자들은 오는 8일 중간선거의 최대 이슈로 ‘경제’를 꼽았다. 응답자의 71%는 ‘미 경제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바이든 정부 심판론과 함께 야당 승리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