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간선거가 치러진 8일 밤(현지 시각)의 개표 초반 풍경은 공화당의 손쉬운 승리가 점쳐지던 선거 막바지 예상과는 크게 달랐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에 머물며 9일 새벽 1시까지 승리를 확정 지은 민주당의 주요 당선인들에게 축하 전화를 걸었다. 그중에는 뉴햄프셔주의 매기 해선 상원의원 당선인과 로드아일랜드 2선거구의 세스 매거지너 하원의원 당선인, 버지니아 7선거구의 애비게일 스팬버거 하원의원 당선인 등이 포함돼 있었다. 3곳 모두 공화당에 넘어갈 경우 공화당의 대승을 예상해 볼 수 있다고 했던 지역구인데 민주당이 수성(守城)에 성공했다.

반면 케빈 매카시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 측이 8일 밤 9시부터 워싱턴DC의 한 호텔에서 개최한 개표 관전 파티는 예상 외의 썰렁한 분위기였다고 NBC 방송 등이 전했다. 공화당이 하원 다수당이 되면 하원의장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매카시 대표는 당초 이날 밤 11시쯤 파티장에 와서 ‘승리 연설’을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하원의 주요 선거구들에서 기대했던 압승을 거두지 못하자, 매카시 대표는 예정보다 3시간 늦은 9일 새벽 2시쯤에야 파티장에 나타났다. 지난해 공화당이 민주당에서 60석을 뺏어올 것이라고 장담했던 그는 이때까지 승리를 확정 짓지 못하고 “여러분이 내일 일어나 보면 우리(공화당)가 다수당이고 낸시 펠로시(민주당 소속 하원 의장)가 소수당에 있을 것”이라고 짤막한 연설만 했다.

선거 막바지 여론조사에서 공화당 승리가 예상됐던 상원 선거도 박빙이었다. 오하이오주 상원 의원 선거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를 받은 공화당 J D 밴스 후보(53.3%)가 민주당 팀 라이언 후보(46.7%)를 가볍게 물리치고 일찌감치 승리를 확정지었다. 하지만 선거 사흘 전인 지난 5일 바이든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트럼프 전 대통령이 모두 지원 유세에 나섰던 격전지 펜실베이니아주에서는 상원의원과 주지사를 다 민주당이 가져가는 결과가 나왔다.

또 다른 격전지 조지아주의 경우 98% 개표 상황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전폭적 지지를 받은 공화당 허셜 주니어 워커 후보(48.5%)가 현역인 래피얼 워녹 의원(49.4%)에게 0.9%포인트 뒤지고 있다. 애리조나주에서도 67% 개표 상황에서 현역인 민주당 마크 켈리 상원의원(52.1%)이 공화당 블레이크 매스터스 후보(45.8%)를 앞서고 있다. 민주당은 조지아주와 애리조나주 두 곳에서 모두 이길 경우,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캐스팅 보트를 더해 상원 다수당 지위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체 50명 중 36명이 선거 대상인 주지사의 경우 민주당이 공화당 현역 주지사 자리 2곳을 빼앗았다.

25세 하원의원 탄생 - 8일(현지 시각)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맥스웰 알레한드로 프로스트 민주당 하원의원 후보가 선거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프로스트 후보는 25세의 ‘Z세대’이다. /AP 연합뉴스

중간선거는 전통적으로 집권 여당에 불리하다. 여기에 계속되는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 우려, 남부 국경 지역의 이민자 대란 등이 겹치면서 공화당은 ‘레드 웨이브(red wave·공화당 압승을 상징하는 빨간색 물결)’를 기대했다. 그러나 보수화된 연방대법원이 지난 6월 여성의 낙태권을 보장한 ‘로 대 웨이드’ 판례를 뒤집은 것이 공화당의 기세를 꺾어놓았다. 뉴욕타임스는 “낙태가 민주당의 투지를 불러일으켰고 민주당 지지층이 투표장에 나왔다”고 분석했다. 오바마 집권기 열린 2010년과 2014년 중간선거 때는 민주당 유권자들이 투표장에 나오지 않아 대선 때보다 투표율이 20% 정도 떨어졌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번 민주당의 예상 밖 선전과 관련, 트럼프 전 대통령의 영향을 받은 극단적 주장이나 음모론이 중도 유권자들을 멀어지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공화당 원로들은 많은 지역구에서 (공화당) 후보들이 주류와는 거리가 너무 먼 트럼프의 입장을 받아들였다고 분통을 터트렸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도 “트럼프가 공화당에 약한 후보들을 앉혔다”면서 “본선 경쟁력 있는 중도파 후보들이 공화당 경선에서 탈락해 민주당이 손쉬운 상대를 만난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민주당이 상원 다수당 지위라도 지켜내면 바이든 대통령으로서는 일단 한고비를 넘기게 된다. 민주당의 예상 밖 선전에도 불구하고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 도전에는 청신호가 아니란 분석도 나온다. CNN은 이날 “하원의원 선거 출구조사에 응한 유권자 중 67%가 바이든 대통령이 2024년 재선에 출마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보도했다. 민주당 지지 유권자 중에서도 바이든이 출마해야 한다고 답한 사람은 60%에 못 미쳤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