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1월 9일(현지 시각) 중간선거이후 백악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활짝 웃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9일 미 중간선거 결과를 분석하면서, 미국 언론이 한결같이 묻는 질문은 선거 전 각종 여론조사에서 예고됐던 ‘공화당 대세(大勢)’를 상징하는 “붉은 파도(Red Wave)는 도대체 어디 갔느냐”는 것이다. 빨강은 공화당을 상징하는 색이다.

이렇게 물을 만도 한 것이, 인플레이션 8%에, 불과 3주 전 여론조사에서도 70%의 미국인은 “미국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답했다. 전체 미국인의 57%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업무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2일 워싱턴포스트ㆍABC 방송 조사에도 유권자들은 공화당이 민주당보다 경제는 14% 포인트, 인플레이션 통제는 12% 포인트, 치안은 20% 포인트 더 잘한다고 답했다. 반대로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을 민주당이 더 잘 다룬다는 겨우 4% 포인트 더 많았다.

하지만 8일 중간선거 결과는 현재 연방 하원은 공화당이 되찾아가지만, 상원의 주인은 양당 후보가 모두 50%를 넘지 못해 1월6일 결선 투표를 치를 조지아 주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많은 여론 분석가들과 지식인들이 미국 TV 방송에 나와서 “붉은 파도” “공화당 쓰나미”를 예고했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미 언론들은 파도는커녕 ‘잔물결(ripple)’ ‘물방울(trickle)’이라고 꼬집는다. 보수적인 언론 매체인 월스트리트저널은 “공화당의 중간선거 실패(failure)”라는 제목의 사설을 게재했다.

◇2002년 이후 집권당이 ‘완패’하지 않은 첫 중간선거

미국 중간선거에선 2006년, 2010년, 2014년, 2018년 모두 대통령이 속한 정당은 연방 상ㆍ하원에서 졌다. 2002년 중간 선거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속한 공화당이 지지 않은 것은, 2000년의 9ㆍ11테러 영향이 컸다.

왜 집권당이 지는 것일까. 일반적인 설명은 2년 전 대선에서 특정 후보를 열렬히 지지했던 유권자들도 중간 선거는 대통령이 바뀌는 선거가 아니라서 투표소에 덜 간다는 것이다. 또 부동층(浮動層) 유권자들은 중간 선거에선 지나치게 특정 정당의 정책으로 쏠리는 것을 막으려는 심리가 발동해, 다른 방향으로 표를 던지게 된다고 한다. 이걸 정치학자들은 ‘자동 온도조절(thermostatic) 효과’라고 부른다.

그런데 올해는 이게 작동하지 않았다.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도널드 트럼프 전(前) 대통령이었고, 또 하나는 지난 6월 “여성의 낙태 권리는 헌법으로 보장되지 않는다”는 미 연방 대법원의 판결이었다.

◇미 공화당을 감싼 트럼프 망상(妄想)

미 중간선거에서 소수당은 불만스러운 현(現)상태에 대한 모든 원인을 대통령과 그가 속한 정당 탓으로 몬다. 그래서 대통령과 집권당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이 짙었다.

그런데 이번엔 트럼프와 그가 지지한 공화당 후보들이 계속 언론에 등장했다. 문제는 이들 후보의 자질이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백악관 고문이자 선거 전략가였던 칼 로브는 “공화당 문제는 간단하다. 너무 많은 후보들이 멍청이(knuckleheads)였다”며 “공화당 선거 결과는 파도는커녕 물방울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공화당의 많은 후보는 그저 트럼프 지지(endorsement)를 받기에 급급했다. 메시지 전달력ㆍ모금 능력ㆍ캠페인 수행 능력은 부족했고, ‘트럼프에 대한 충성도’ 외에는 별로 언급될만한 것이 없었다. 트럼프는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들을 검증하지 않았고, 이들은 “2020년 미 대선을 도둑 맞았다”는 트럼프 말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이런 말은, 뼛속까지 공화당인 일부 선거구에서나 통하는 얘기였다.

민주당은 이런 트럼프 후보들을 오히려 반겼다. 민주당원들은 일반에 공개된 공화당 경선에서 트럼프주의자들을 지지했다. 트럼프 지지 후보는 경선에서 전통적 보수 가치를 내세운 실력 있는 후보를 이기고, 8일 본선에서 민주당 후보에게 졌다.

공화당이 주지사로 있다가 물러난 주에서도 밀렸다. ‘대선 부정’ 주장을 했던 트럼프 지지 후보는 공화당 주지사가 물러난 뉴햄프셔 주에서 졌다. ‘한국 사위’라 불리던 공화당 주지사 래리 호건이 중임(重任)하고 물러난 메릴랜드 주에서도 트럼프와 같은 말을 하던 댄 콕스 하원의원이 민주당 후보에 졌다.

트럼프가 지지한 후보는 16명의 주지사 후보 중 7명, 199명의 하원의원 후보 중 124명만 당선됐다. 18명의 상원의원 후보 중에선 16명이 당선됐다.

공화당이 워낙 트럼프에 빠져있다 보니, 경제나 인플레이션을 부각시키지 못했다. 칼 로브는 “공화당은 이제라도 이런 멍청이들을 거부해야 한다”며 “바이든의 형편없는 국정수행 실적에 대한 중간 평가가 돼야 할 선거를, 트럼프가 자신과 바이든의 대결로 만들었다”며 “결국 미 유권자들은 지난 대선과 마찬가지로 바이든을 선택했다”고 평가했다.

◇낙태 권리를 둘러싼 젊은층 목소리 갈수록 커지면서 민주당에 유리

민주당 입장에선 미 연방 대법원이 지난 6월 낙태 권리를 미국 헌법이 보호해야 할 권리로 보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린 것도, 1990년대 말 이후 출생 세대인 이른바 Z세대를 비롯한 젊은층을 끌어들이는데 큰 도움이 됐다.

미 젊은층의 여론을 분석하는 존 델라 볼프는 미 공영라디오 NPR에 “2018년 중간선거에서 처음 위력을 발휘한 Z 세대가 이후 선거에서 계속 공화당의 ‘붉은 물결’을 막는 벽이 됐다”며 “30세 이하 유권자들은 이전보다 더욱 자신들의 목소리가 분명히 반영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40세 이상은 공화당을, 그 이하는 민주당을 선호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텍사스대(샌 안토니오 소재)의 정치학 교수인 존 테일러는 BBC 방송에 “만약 대법원이 지난 반세기 동안 유지됐던 낙태권의 헌법 보장을 뒤엎지 않았더라면, 민주당은 범죄ㆍ불법 이민ㆍ인플레이션이란 악재 속에서 젊은 유권자들을 동원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민주당에겐 대법원 판결이 ‘붉은 파도’를 막는데 도움이 됐다”고 BBC 방송에 말했다.

칼 로브는 “낙태 반대ㆍ생명 존중을 주장하는 공화당 후보들도 많이 당선됐지만, 공화당은 낙태 문제에 대한 반대 논리와 신념을 유권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WSJ 사설은 “공화당이 지나치게 당파적이다 보니까, 부동층이 크게 흔들리기가 힘들었다. 결국 수백만 명의 부동층은 민주당이 장악한 정치 구조에 불만이더라도, 공화당을 대안으로 선택하기가 힘들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