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궤도를 도는 오리온 우주선(캡슐)을 탑재한 미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발사체 SLS(Space Launch Systems)가 16일 오전1시47분쯤(한국시간 오후3시47분) 미국 플로리다 주 케이프 커내버럴의 케네디 우주센터의 발사대를 이륙했다. 달과 화성 등 앞으로 심(深)우주를 탐험하는 NASA의 ‘아르테미스(Artemis)’ 프로젝트의 1단계가 시작하는 역사적 순간을 연 것이다.
아르테미스 프로젝트는 1단계 달 궤도 무인(無人) 탐사에 이어, 2단계 유인(有人) 궤도 탐사, 3단계는 아직 한 번도 인간이 밟아본 적이 없는 달의 남극에 착륙하고 이어 기지 건설, 달 궤도에서 화성 등으로 갈 우주 관문(Gateway)의 설치 등 장기 플랜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1단계로 이날 발사된 오리온 캡슐에는 달 궤도 탐사가 인체에 미치는 각종 영향을 체크하기 위한 마네킹 3개가 탑재됐고, 실제로 인간이 달에 착륙하는 것은 빨라도 2025년이 돼야 한다.
하지만, 미국은 이미 반세기 전에 달에 갔었다. 아폴로(Apollo) 11호 우주선을 타고 간 닐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디며 “인류를 위한 하나의 위대한 도약(one giant leap for mankind)”이라고 말한 게 1969년 7월 21일이었다. 그리고 1972년까지 모두 6차례 12명의 우주인이 달에 발을 디뎠다. ‘아르테미스’란 이름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폴로’의 쌍둥이 누이로, 달의 여신이었다.
50년간 과학기술은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했다. 누구나 휴대하는 스마트폰은 1960~1970년대 달 착륙선에 들어간 컴퓨터의 연산 능력보다도 훨씬 월등하다. 지금쯤 인류는 달에서 로버(rover)를 타고 골프를 해야 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린 것일까. 그때와 지금의 ‘게임의 법칙’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미국과 소련이 냉전(冷戰)을 치르던 반세기 전엔 누가 먼저 달에 가서 ‘깃발’을 꽂느냐는 자존심 대결이었다. 게임의 법칙은 ‘속도(speed)’였다.
그러나 지금은 앞으로 인류가 정착에 필요한 물과 얼음이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된 달 남극을 중심으로 기지를 건설하고, 이후 화성과 그 너머로 가기 위한 우주 개발 차원이다.
◇아폴로는 “소련보다 먼저”에 모든 것을 건 미국의 게임
1960년대 초 미국은 안보 위기에 빠졌다. 소련은 1957년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쏴 올렸고, 1961년 4월엔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이 처음으로 지구 궤도를 돌았다. 반면, 미국은 같은 달 오합지졸 쿠바 망명자들로 피델 카스트로의 전복을 꾀하며 쿠바를 침공한 ‘피그만 사건’에서 처참하게 실패했다. 소련은 이어 1961년 10월엔 지금까지도 가장 강력한 것으로 기록된 수소폭탄 ‘차르봄바(황제폭탄)’ 폭발에 성공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는 정치적 대반전(大反轉)이 필요했다. 케네디는 1962년 9월 라이스 대학 연설에서 “달에 가기로 했다”며 “이 도전은 결코 미룰 수도 없으며, 반드시 이기려고 한다”고 했다. 키워드는 ‘승리’였다.
◇현재 가치로 200조 원이 넘게 들어간 아폴로 프로그램
미국은 전역에서 40만 명의 과학자, 엔지니어를 직접 고용했다. 1974년 NASA가 산출한 아폴로 프로그램의 비용은 지금 가치로 따지면 1525억 9114만 달러(약212조 원). 여기엔 아폴로의 기술적 토대가 된 이전의 머큐리(Mercury)ㆍ제미니(Gemini)와 같은 저궤도 우주비행 프로그램 비용은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한편, NASA는 지난 9월 2012년부터 시작한 ‘아르테미스’ 비용은 2015년까지 모두 930억 달러가 소요된다고 밝힌 바 있다.
속도전(速度戰)이다 보니, 달과 그 너머 우주에 대한 장기적인 탐험 계획은 없었다. 당시엔 지금처럼 활발한 민간 우주기업들과 관련 시장이 미국에 형성되지도 않았다. 지구에서 38만여 ㎞ 떨어진 달까지 우주선(캡슐)을 보낼 로켓도, 또 달 전이궤도(우주선이 달의 중력에 이끌리는 지점)에서 새턴 5호에서 벗어나 달에 착륙했다가 다시 지구로 귀환할 우주선도 없었다. NASA는 우주인과 장비를 달까지 수송할 모든 부품의 제조와 공급라인을 직접 구축해야 했다. 3450만 톤의 추력을 지닌,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새턴 5호 로켓은 이렇게 개발됐다.
속도전에서 약간의 모험은 불가피했다. 새턴 5호 로켓은 엄청난 진동을 발생해 부품이 헐거워지고, 일부 엔진이 예상보다 빨리 꺼지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3번 발사해 보고, ‘이 정도면 달에 갈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심지어 달 착륙선 ‘이글(Eagle)’호가 1969년 7월20일 인류 최초로 달에 내려 앉을 때에도, 착륙용 연료 탱크의 게이지는 바닥을 가리키고 있었다. 우주인 올드윈은 당시를 회상하며 “착륙에 쓸 연료가 15초밖에 안 남아, 마지막 순간까지 조마조마했다”고 말한 바 있다.
◇이후 지구 저(低)궤도로 옮겨간 우주 탐험
미국은 이 ‘달 착륙’ 경쟁에서 이겼다. 성조기도 꽂았고, 6차례의 아폴로 미션을 통해 달의 운석도 382㎏가량 지구로 가져왔다. 모두 12명의 미국 우주인이 달 표면을 밟았다. 1971~1972년엔 ‘문 버기(Moon buggy)’라 불리는 월면주행차(月面走行車)로 달 위를 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이후 미국과 소련(러시아)의 우주 경쟁과 협력은 지구 고도 2000㎞까지인 저궤도(LEO) 공간에 머물렀다. 아폴로 17호(1972년) 이후 아폴로 프로그램은 저물었고, 두 나라는 이후 보다 장기적인 우주 개발ㆍ탐험을 추구했다.
이는 소련이 1971년 우주에 최초로 띄운 우주정거장인 살류트와 미르, 미국의 최초 우주정거장인 스카이랩(1973), 국제우주정거장(ISSㆍ1998년~), 지구와 ISS를 오가는 우주왕복선(space shuttle), 민간 우주기업인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사의 재사용 가능 발사체 개발 등으로 이어졌다.
◇달로 가는 프로젝트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미국이 다시 달로 가겠다는 지금의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은 애초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2005년 발표한 ‘컨스텔레이션(Constellation)’ 프로그램에 뿌리를 두고 있다. 2020년까지 달에 가고, 이후 화성으로 가겠다는 계획이었다.
아르테미스’는 지금껏 한 번도 인간의 발이 닿지 않은 달의 남극에 가는 것이 목표다. 이곳은 달 분화구 탓에 1년 내내 해가 들지 않는 그림자 지역이 많아 앞으로 기지 건설에 필수적인 물과 얼음이 있는 것이 확인됐지만, 그만큼 정확한 지형 파악이 어렵다. 또 수㎝ 쌓인 달 표면의 푸석푸석한 흙과 먼지, 자잘한 돌 조각들인 ‘레골리스(regolith)’가 NASA가 이곳에서 장기적으로 사용할 정교한 탐험 장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아폴로의 ‘1회성 방문’과는 다른 것이다.
‘그래도 한 번 가봤는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미국은 더 이상 ‘새턴 5호’ 로켓도 없었다. 아폴로 프로그램에선 로켓이든, 우주선(캡슐)이든 모두 1회용이었다. 그래서 NASA가 이날 발사한 우주발사로켓인 SLS를 다시 디자인하고 개발ㆍ제조하기까지는 10년이 넘게 걸렸다.
◇역대 행정부, 막대한 우주 개발 비용 망설여
‘아르테미스’와 같은 우주 프로그램은 너무 오래 걸리고, 너무 많은 돈이 든다. 화성으로 보내는 우주선은 디자인ㆍ제조ㆍ테스트하는 데만 8년(미 대통령 연임 기간)을 훌쩍 넘긴다. 자신의 재임 중에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이렇게 큰 돈을 쓸 대통령은 없다.
그래서 중국과 러시아의 도전에 대응하는 미국 국방예산은 올해 7423억 달러였지만, NASA 예산은 240억 달러(약 34조 2800억원)에 불과했다.
새 대통령은 전임자의 우주 프로그램을 삭감한다. 조지 W 부시가 시작한 ‘컨스텔레이션’은 NASA가 5년간 90억 달러를 썼는데, 후임 버락 오바마는 이를 철회하고 우주발사체인 SLS 계획에 주력했다. 트럼프는 SLS는 없애지 않았지만, 목적지를 오바마의 소행성에서, 달ㆍ화성으로 트는 ‘아르테미스’로 바꿨다. 조 바이든은 다행히 ‘아르테미스’와 트럼프가 창설한 ‘우주군(Space Force)’은 건들지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 때인 2019년 NASA 국장이었던 짐 브리던스틴은 “정치적 리스크만 없었다면, 아마 우리는 벌써 화성에 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