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만 해도 두 사람 사이가 좋았는데… - 2018년 11월 미국 플로리다주 주지사 선거에 출마한 론 디샌티스(오른쪽) 후보가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유세장에서 연설하고 있다. 15일(현지 시각)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4년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가운데 ‘리틀 트럼프’로 불린 디샌티스 주지사의 대권 도전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15일(현지 시각) 2024년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2016년 대선 승리, 2020년 재선 실패에 이은 세 번째 도전으로 조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현직 대통령 간 ‘리턴 매치(재대결)’가 성사될지 여부를 두고 미 정가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와 함께 ‘리틀 트럼프’라고 불린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가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압승하지 못한 탓을 트럼프에게 돌리며 2024년 대통령 선거에 뛰어들 움직임을 보여 공화당 내 경쟁 구도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밤 9시 자신의 별장인 플로리다주(州) 마러라고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출마를 선언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부인 멜라니아 트럼프와 기자회견장에 등장하자 지지자들이 ‘USA’를 연호했다. 이날 회견에는 장녀 이방카, 사위 재러드 쿠슈너, 차남 에릭, 막내 배런 등 가족들이 총출동했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3년 전 내가 퇴임했을 때만 해도 미국은 황금기를 맞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미국은 권력과 번영의 정점에 있었다”며 “하지만 지금 우리는 쇠퇴하고 있는 국가다. 인플레이션은 50년 만에 가장 높은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고 영광스럽게 만들기 위해 나는 오늘 밤 대통령 출마를 선언한다”며 “바이든 대통령이 4년 더 집권하지 않도록 확실하게 할 것”이라고 했다. “준비돼 있느냐”는 트럼프 전 대통령 발언에 지지자들은 함성을 질렀고, 그는 “나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날 발표에 앞서 그는 연방선거위원회(FEC)에 2024년 대선 출마를 위한 서류를 제출했다. 차기 대선에 공식 입후보한 첫 인사로, 미 폭스뉴스는 “현대 정치사에서 (특정 인물이) 이렇게 일찍이 대선 출마 선언을 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했다. 다음 미국 대선은 2024년 11월 5일로 아직 2년이 남아있다.

하지만 그가 내세웠던 후보가 이번 중간선거에서 줄줄이 패하는 등 이번 선거 부진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공화당 내 트럼프의 입지가 크게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다. 여론조사 기관 모닝컨설트가 중간선거 직후인 지난 10~14일 유권자 1983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이날 공개한 여론조사에서 유권자의 65%는 트럼프가 차기 대선에 출마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공화당 중진 밋 롬니 상원 의원은 AP통신 인터뷰에서 “(투수로 비교하자면) 트럼프는 마운드에 올라 3연패당한 것”이라며 “새 선수를 필드에 투입해야 할 때”라고 했다. 롬니 상원 의원 외에도 공화당의 일부 인사가 이번 기회에 트럼프를 퇴출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보수 성향의 월스트리트저널(WSJ)도 ‘도널드 트럼프의 대선 재출마’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아이러니한 것은 공화당보다 민주당이 더 의기양양해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이는 그(트럼프)를 한 번 더 이길 수 있는 가장 쉬운 후보로 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에 앞서 WSJ는 그가 재출마하면 민주당 후보의 지지율이 올라갈 것이라며 출마해서는 안 된다는 칼럼도 게재했다. 무엇보다 트럼프가 개인 사업체 탈세 및 금융 사기 혐의, 1·6 연방의회 의사당 난입 사태 등으로 수사받고 있다는 것이 공화당으로선 큰 부담이다. 미국의 중도 성향 유권자들이 과연 재판정에 서게 될 수 있는 그에게 투표하려고 할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이번 선거에서 압승한 디샌티스 주지사를 트럼프의 ‘대체 후보’로 고려하는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텍사스주 공화당이 여론조사 기관 CWS 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12∼13일 텍사스주 등록 유권자 1099명을 상대로 조사해 이날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오늘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이 치러지면 누구에게 투표하겠느냐’는 질문에 43%가 디샌티스 주지사라고 응답해 트럼프 전 대통령(32%)을 11%p 차이로 앞섰다.

1978년생 이탈리아계 디샌티스는 1946년생인 트럼프 전 대통령보다 서른두 살 어리다. 플로리다 잭슨빌 태생으로 예일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뒤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했다. 해군에서 복무한 그는 2007년 이라크 전쟁에 참전했고, 이에 앞서 부시 행정부 시절 쿠바 관타나모 미군 기지의 ‘테러 용의자 수용소’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검사 생활을 거쳐 2013년 하원 의원에 당선됐다. 의원으로서의 워싱턴 정치 경력은 5년에 불과하지만, 주지사 취임 이후 ‘트럼프표 강경 정책’을 잇따라 내세우면서 전국구 정치인으로 떠올랐다. 작년 코로나 팬데믹 당시 봉쇄·대피령 등 규제를 거부했고, 총기 규제 및 낙태에 대한 반대에 앞장서면서 지지층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트럼프가 출마를 발표한 날 기자들을 만나 “여러분이 알고 있는 것(자신에 대한 트럼프의 비판)들이 그냥 소음(noise)이라고 생각한다”며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이슈들을 주도하고 있고 결과를 이끌어내는지 여부다”라고 했다. 최근 디샌티스의 부상에 트럼프가 그를 겨냥해 잇따라 비판 발언을 내놨었는데, 이에 대해 반격한 것이다. 그는 다른 기자회견에서도 “바이든의 정책이 압도적으로 인기가 없었다는 것을 감안할 때 (트럼프가 개입한 중간선거 결과는) 크게 실망스러웠다”고 했다. CNN은 “디샌티스는 그간 트럼프와 충돌하는 것을 피해왔다”며 “그러나 이날 트럼프를 겨냥한 일련의 발언은 디샌티스가 대선 출마를 결심할 경우 트럼프와 정면 승부를 펼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