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엔터테인먼트 기업 디즈니를 이끌었던 전설적 경영인 로버트 아이거(71)가 은퇴 2년여 만에 최고경영자(CEO)직에 돌아왔다. ‘디즈니 구원투수’의 재등판 소식에 21일(현지 시각) 뉴욕증시에서 디즈니 주가가 6.3% 급등하는 등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디즈니 이사회는 지난 20일 밤 2020년 2월부터 디즈니 CEO를 맡았던 밥 체이펙(62)을 해고하고, 아이거를 새 CEO로 선임한다고 발표했다. 아이거도 이날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나는 낙관주의자이며, 불확실성 앞에서도 우리는 불가능한 것을 성취할 것”이라며 복귀를 밝혔다. 아이거의 복귀는 그의 부재중 심해진 경영난 때문으로 분석된다. 디즈니 이사회는 지난 6월만 해도 체이펙의 임기를 3년 연장하기로 했지만 5개월 만에 전격 해임했다.
아이거는 지난 2005 년 ‘만화영화’와 ‘놀이공원’의 한계를 못 벗어나던 디즈니의 CEO로 선임돼 2020년까지 15년간 회사를 초대형 종합 엔터테인먼트사로 키워냈다. 그는 픽사·마블·루카스필름·21세기폭스 등을 차례로 인수하고 시장점유율도 5배 늘리는 등 현재의 ‘디즈니 제국’을 완성했다.
뉴욕 출신인 아이거는 ABC방송의 말단 직원으로 시작, 차근차근 미디어 업계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미국 대기업 CEO 중 최고인 연봉 6600만달러(약 895억원)를 받는 디즈니 CEO가 됐다. 그의 리더십과 성공 신화가 워낙 강력해,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와 함께 ‘기업인 출신 민주당 대선 잠룡’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거가 떠난 뒤 코로나 팬데믹까지 겹치면서 디즈니는 새 성장 동력을 발굴하지 못하고, 넷플릭스 등 여러 스트리밍 업체와 심하게 출혈 경쟁을 벌이며 실적이 악화됐다. 특히 이달 발표한 디즈니 3분기 실적에서 손실이 14억7000만달러(2조원)로 전년 동기 대비 2배 늘고, 올 들어 주가가 40% 폭락했다.
아이거는 체이펙 전 CEO가 단행했던 디즈니플러스의 월 요금 인상, 조직 개편과 정치적 입장 표명 방식 등에 여러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대대적 변화 조치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