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시사 잡지인 타임은 2일자 최신호에서 미 공군의 차세대 스텔스 폭격기인 B-21 ‘레이더(Raider)’가 언론에 공개되기 전, 서부의 한 사막 공장에서 7년간 비밀리에 제조된 과정을 소개했다.
제조 공장은 미 서부 모하비 사막 내 2347만㎡(약 710만 평) 부지에 마련된 ‘미 공군 플랜트(Plant) 42’였다. 안팎의 삼엄한 보안 경비는 물론이고, 우주에서도 인공위성이 이 공장을 감시한다. 미국이 1980년대 말 마지막으로 구입했던 스텔스 폭격기인 B-2 ‘스피리트(Spirit)’도 이곳에서 제조됐다.
타임 잡지는 “지난 1년간 이곳을 방문하면서, 엔지니어, 제조 인력, 테스트 인력들을 인터뷰하고, 미 공군의 개발 문서와 비용 관련 서류를 검토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플랜트 42’는 미국 정부의 비밀 세계인 이른바 ‘블랙 월드(black world)’에 대한 ‘특별접근허가(SARㆍSpecial Access Required)’가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다.
미 방산업체인 노스럽 사는 2015년 10월 차기 스텔스 폭격기 계약을 따내고, 이곳에 3개의 새 조립 공장 건물을 짓고, 5000명의 신규 인력을 채용했다. 그러나 미 공군과 노스럽은 ‘정보 누출’을 막아야 했고, 신규 직원 채용은 종종 잠재적인 스파이와 범죄자를 걸러내는 미국 정부의 과정을 거쳐 ‘허가’를 얻기까지 수 주가 걸렸다.
노스럽 사의 엔지니어들과 기술자들은 지난 6월까지도 가족에게 자신이 B-21 폭격기 제조 일을 한다는 것을 말할 수 없었다. 지금도 이 곳에서의 일과를 말할 수 없다. 타임은 “많은 부품 제조사들은 자기들이 만든 제품이 B-21 폭격기에 들어가는지 몰랐다”고 전했다.
B-21은 기존의 B-2보다 약간 작다는 것 말고는, 기본적인 제원(諸元)도 비공개다. 2일 이 공장에서 모습을 드러냈을 때에도, 23m 떨어진 곳에서 정면 촬영하는 것만 허용됐다.
타임은 “일반적으로 항공기 제조는 통상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작업이 진행되지만, B-21은 스텔스 성능 강화에 초점을 맞춰 외부에서부터 제조 공정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즉 ‘플랜트 42’의 북쪽 건물에서 화강암 빛의 경량 복합 재료로 외부를 칠한 뒤에, 남쪽 건물로 옮겨가면서 레이더ㆍ항공전자공학 장비ㆍ센서ㆍ무기 격실ㆍ창문ㆍ날개를 갖춘 폭격기로 변모해갔다는 것이다. 레이더 반사를 줄이는 유리처럼 매끈한 외피를 만들기 위해, 내부에 수십만 개의 부품이 조립돼 있다.
타임은 “또 외부로 방출되는 적외선과 소음을 줄이기 위해, B-21은 아음속(亞音速ㆍ마하 0.9)으로 날며, 제트 엔진은 상어 아가미처럼 생긴 날개에 내장돼 있다”고 보도했다. 또 둥근 모양의 외관에 적용된 첨단 코팅 소재는 항공기에 부딪히는 레이더파(波)를 흡수하면서, 마치 ‘스펀지 피부’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공개된 대당 가격도 믿을 수 없어”
현재 공개된 B-21의 대당 가격은 6억9200만 달러(약 9138억 원)로, 미 공군은 최소 100대를 구입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사실은 이 가격도 믿을 수 없다. B-21을 운용하는 방식과 생산 계획 변경 등의 요인에 따라 가격은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B-2 ‘스피리트’ 스텔스 폭격기는 1989년 첫 비행 때 가격이 대당 5억 달러였고, 132대를 구매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공학적 결함과 생산 지연이 잇달았고, 미 공군은 대당 20억 달러에 21대를 구입하고 그쳤다.
미국이 최근에 구입한 F-35 전투기도 지난 21년 동안 생산 지연과 비용 초과를 겪었고, 결국 2470대를 구입하는 비용이 애초보다 거의 배(倍)로 뛴 4280억 달러였다. 또 그 이전의 F-22 전투기도 대당 1억4900만 달러에 648대를 구입하려고 했지만, 결국 대당 4억 달러 이상에 188대를 구입하고 그쳤다.
타임은 B-21의 생산 일정과 정확한 가격이 비밀인 것은 적을 속이는 동시에, 생산과 운용 자체가 가변적이기도 해서 ‘의도적’인 것이라고 전했다. 또 공개된 가격표에는 B-21의 연구ㆍ개발ㆍ테스트ㆍ평가 비공개 예산은 포함되지 않았고, 무인공격기(드론) 집단과의 합동 작전을 하기 위한 추가 비용도 들어있지 않았다.
타임은 “프로그램의 막대한 부분이 기밀이며, 자금이 추가 확보돼도 이른바 ‘블랙(black) 예산’이어서 일반인은 알 수 없다”며 “미 국방부의 2023년 요청서는 앞으로 5년 간 B-21에 200억 달러를 지출하겠다고 했지만, 얼마나 많은 폭격기를 구매할지는 불확실하다”고 보도했다.
◇B-2 폭격기는 “격납고의 여왕” 별명에, 1시간 비행에 20억 들어
미 공군이 30여년 전 마지막으로 구입한 박쥐 날개 모양의 폭격기 B-2 ‘스피리트’도 노스럽이 제조했다. 미 의회는 연구ㆍ개발에 200억 달러를 지원했다. 하지만 레이더 회피 능력에서 가히 혁명적인 이 폭격기는 그만큼이나 ‘섬세한 피조물’이었다고 한다. 이 스텔스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관리를 해야 했고, 완벽한 날씨가 아닌 모든 상황 조건에 매우 민감했다.
타임은 “미 공군 통계에 따르면, B-2는 1시간 비행할 때마다 지상에서의 유지ㆍ보수 시간이 51시간에 달해 ‘격납고 여왕(hangar queen)’이라고 조롱 받는다”고 전했다. 지난 11월 미 정부 감사에 따르면, B-2이 한 시간 비행하는 데 드는 돈은 15만741달러(약 20억원)였다.
◇미 공군 폭격기의 절반이 케네디 때 만든 B-52
타임은 “미 공군은 역사상 가장 적은 수의 폭격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141대 중에서 약 절반은 케네디 행정부(1961~1963)때 출고된 B-52”라고 밝혔다.
그러나 당시는 소련만 상대하면 되는 냉전 시절이었고, 지금은 중국과 러시아를 동시에 상대해야 한다. 특히 중국은 정교한 레이더와 장거리 S-400 지대공 미사일(러시아제)을 주축으로 한 대공(對空)망과 J-20 스텔스 전투기 배치에 수년간 투자했다.
타임은 “중국의 이 같은 무기 체계는 미국이 타이완 방어에 나설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며 “크루즈미사일을 발사해 1600㎞ 떨어진 수많은 타깃을 강타할 수 있지만, 스텔스 폭격기만이 제공권(制空權)을 유지하면서 미 항모와 태평양의 미군 기지를 위협하는 중국의 이동식 미사일을 식별하고 공격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B-21은 바로 이 목적을 위해, 수천 마일을 비행해 적의 영공에 슬쩍 들어가 수 톤의 폭탄을 투하하고 미국과 동맹국들의 공격루트를 확보하도록 설계됐다는 것이다. 현재는 B-2만이 그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외부 공개 이후, B-21의 다음 수순은 ‘플랜트 42’에서 약 40㎞ 떨어진 에드워즈 공군기지에서 있을 테스트다. 테스트 조종사가 사막 위 상공에서 이 폭격기를 공기역학적 한계까지 밀어붙일 것이다.
B-21이 최적의 조건으로 이륙할 준비가 됐는지를 밝히는 긴 여정의 시작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