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미 중간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 론 디샌티스(44) 플로리다 주지사가 최근 여론조사에서 도널드 트럼프(76) 전 대통령을 큰 격차로 앞서며 공화당의 차기 대선 주자로서 강력한 입지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지난달 15일 일찌감치 대선 출마 선언을 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달리 디샌티스 주지사는 아직 출마 여부를 확실히 밝히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트럼프가 중간선거 책임론과 각종 수사로 고전하는 사이 공화당 유권자들의 관심이 급격히 디샌티스로 옮겨가는 모양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4일(현지 시각) 오는 2024년 공화당 대선 경선에 참여할 공화당 지지자들을 상대로 디샌티스와 트럼프의 가상 대결을 벌인 결과, 디샌티스를 선호한다는 응답이 52%로 과반을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이 지난 3~7일 등록 유권자 15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이번 조사에서 트럼프를 선호한다는 응답은 38%로 디샌티스보다 14%포인트나 낮았다. WSJ는 “트럼프를 선호한다는 응답은 2021년 11월 이후 가장 낮았다”며 “트럼프가 중간선거 경선 과정에서 후보 선출과 유세에 개입해 선거 결과가 좋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공화당 유권자들 사이에서 트럼프 평판이 떨어졌다”고 분석했다. 최근 40년 내에 가장 심한 인플레이션 속에서 집권 여당에 불리한 중간선거가 치러졌는데도 민주당이 상원 1석, 주지사 2석을 더 차지하고 하원 선거에서도 예상보다 선전한 데 대한 공화당 유권자들의 실망감이 그만큼 컸다는 것이다.
이런 흐름은 USA투데이와 서퍽 대학이 전날 공개한 또 다른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났다. 이들이 지난 7~11일 등록 유권자 10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공화당 지지 유권자의 31%만 트럼프가 출마하기를 바란다고 답했고, 61%는 ‘트럼프가 추진했던 정책을 계속할 만한 다른 공화당 후보’를 선호했다. 디샌티스란 이름이 직접 거론되자, 공화당 지지 유권자 중 56%는 그가 대선 후보로 나서기를 바란다고 답했다. 트럼프가 대선 후보가 되길 바란다는 응답은 33%로 디샌티스보다 23%포인트나 낮았다.
디샌티스 인기에 대해 서퍽 대학 정치연구센터의 데이비드 팔레오로고스 국장은 “공화당원과 보수적 무당파 층은 점점 더 트럼프가 없는 트럼피즘을 원하고 있다”고 USA투데이에 말했다. ‘트럼프 없는 트럼피즘’에 대한 욕구가 최초의 주지사 선거 당시 트럼프의 지원을 받았던 디샌티스에게 투영되고 있다는 뜻이다.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처럼 트럼프와 각을 세웠던 공화당 정치인들이 공화당 유권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런 차원으로 풀이된다. WSJ가 공화당 경선에 참여할 유권자들을 상대로 트럼프와 펜스의 가상 대결을 해본 결과, 트럼프(63%)가 펜스(28%)를 압도적 차이로 이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화당 경선이 아닌 본선 경쟁력에서도 디샌티스는 트럼프를 앞서고 있다. WSJ 조사에서 공화당 지지자뿐만 아니라 모든 등록 유권자를 상대로 조사했을 때 디샌티스를 선호한다는 응답자(43%)가 트럼프를 선호한다는 응답자(36%)보다 많았다. USA투데이 조사에서 디샌티스와 바이든, 트럼프와 바이든의 가상 대결을 해본 결과 디샌티스는 바이든을 이길 수 있지만 트럼프는 그럴 수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디샌티스와 바이든이 2024년 대선에서 맞붙을 경우 디샌티스를 지지한다는 응답이 46.6%로 바이든을 지지한다는 응답(42.7%)보다 많았다. 반면 트럼프와 바이든이 재대결을 벌이면 바이든(47.3%)이 트럼프(39.5%)를 7.8%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WSJ는 디샌티스의 참모들을 인용해 “디샌티스가 (대선에) 출마하더라도 (2023년) 5월 플로리다 주의회 회기가 끝날 때까지는 출마 선언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플로리다 주지사 직분에 충실한 모습을 보이기 위한 것일 뿐, 이미 물밑에서 대선 준비는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 공영 라디오 NPR은 “(디샌티스가) 내년 초 ‘자유로울 용기’란 제목의 자서전을 낼 예정이고 현재 최소 9000만달러(약 1173억원)를 (선거 자금으로) 갖고 있으며 계속 모금 행사를 하고 있다”며 “출마를 준비 중이란 명백한 징후들”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