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미국의 크리스마스가 기록적 한파와 맹렬한 눈폭풍으로 얼어붙었다. 25일 오전(현지 시각) 현재까지 미 중부와 북동부를 중심으로 7개 주에서 최소 22명이 숨졌고, 최대 180만 가구와 기업이 악천후로 인한 정전을 겪으면서 후속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일리노이주 시카고와 테네시주 멤피스, 몬태나주 엘크 파크 산악지대는 23일부터 체감 기온이 섭씨 영하 50도 아래로 떨어졌다. 서부 시애틀부터 동부 뉴욕, 남부 멕시코 국경에 이르기까지 미 인구의 70%인 2억4000만명이 사는 지역에 비상사태 등 각종 기상경보가 발령됐다. 미 국립기상청은 “생명을 위협하는 추위가 주초까지 맹위를 떨칠 것”이라며 “실외에선 단 몇 분 만에 동상에 걸릴 수 있으니 외출을 삼가 달라”고 했다.
뉴욕의 경우 24일 체감기온이 영하 30도에 육박하면서 1906년 이래 가장 추운 크리스마스 이브를 기록, 뉴욕을 찾은 관광객들이 공항과 호텔에 발이 묶였다. 남부 플로리다에는 희귀한 ‘동결 경보’가 내려지고, 조지아주 애틀랜타도 기상관측 이래 가장 추운 크리스마스를 맞았다. 이번 한파의 특징은 사람들이 일기예보를 듣고도 대비하지 못할 정도로 기온이 순식간에 급강하했다는 점이다. 뉴욕 맨해튼에선 23일 오전 기온이 12도였다가 낮부터 단 두어 시간 만에 영하 12도로 급전직하하자, 가벼운 차림으로 외출했던 시민들이 파랗게 질려 귀가하는 모습이었다. 와이오밍주 샤이엔에선 단 30분 만에 영상 6도에서 영하 16도로 떨어졌다.
한파는 지난 21일 미 중서부 오대호 연안에서 형성된 ‘폭탄 사이클론(bomb cyclone)’이 동쪽으로 옮겨오는 과정에서 위력이 커졌다. 폭탄 사이클론은 북극에 갇혀있어야할 차가운 기류가 내려와 대서양의 습한 공기와 만나면서 단기간에 급속히 형성되는 저기압 폭풍이다. 강풍과 폭설을 동반해 ‘겨울의 허리케인’으로 불린다. 이 폭탄 사이클론은 최근 거의 매년 일어날 정도로 점점 잦아지고 위력이 강해지는 추세다.
폭탄 사이클론은 북극 지방에서 소용돌이처럼 휘도는 영화 50~60도의 한랭 기류 ‘극 소용돌이(polar vortex)’가 남하하면서 극대화된다. 최대 지름이 6000㎞에 달하는 이 한랭 기류는 북극 주변을 빠르고 좁게 도는 제트기류에 갇혀 있지만, 지구 온난화 때문에 제트기류가 느슨해지면 남쪽으로 내려온다고 기후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AP통신은 24일까지 최소 22명이 한파와 폭설, 교통사고 등으로 숨졌다고 했다. 뉴욕주 북서부 버팔로 지역에선 적설량 90㎝ 폭설에 시속 100㎞ 강풍이 닥치면서 가시거리가 제로(0)에 가까운 ‘화이트 아웃’ 현상이 발생, 도로상에서 차에 갇힌 운전자가 수백명에 달했다. 소방차와 응급구조대마저 접근이 어려운 탓에 2명이 숨졌다. 오하이오에선 46중 차량 추돌 사고가 일어나 4명이 사망했고, 캔자스에서도 3명이 미끄러운 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숨졌다. 각 지역에 고립된 이들이 많고, 정전에 따른 2차 피해 등으로 사망자가 추가 발생할 우려가 크다.
정전은 24일 오전 180만 가구에 영향을 끼쳤다가 이날 밤 70만 가구로 줄어들었다. 북동부 매사추세츠·코네티컷주 등 뉴잉글랜드 지역부터 노스캐롤라이나와 켄터키, 테네시 등 남부까지 정전 사태가 지속되고 있다. 뉴욕시를 비롯한 북동부와 중부 일대 전력회사들은 “한파로 발전소 가동이 어려운 상태에서 겨울철 전기 사용량이 급증할 경우 정전이 확산될 수 있다”면서 식기세척기나 청소기 등 급하지 않은 전기 사용을 자제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연말·연시를 맞아 미국인 1억명 이상이 국내외 여행에 나설 것으로 예상됐지만, 여러 항공·철도·버스편이 취소되고 고속도로가 마비돼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항공정보 추적 사이트 플라이트어웨어에 따르면 24일 현재 폭설과 강풍, 결빙 현상 때문에 미 전역에서 2500편의 국제·국내선 항공이 취소되고 5700편은 연기됐다. 전날에도 5700편이 결항됐다. 뉴욕 버펄로 나이아가라 공항은 26일까지 폐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