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중국을 “가장 심각한 위협” “성큼 다가오는 위협(pacing threat)”으로 보면서도, 이미 전함 수에서는 세계 최대인 중국의 해군력을 양적(量的)으로 대응하기 보다는, 첨단 군사기술력에 기초해 이보다 적은 수의 함대로 싸워 이기겠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미 해군전쟁대학(Naval War College)의 미래전쟁학 교수인 샘 탠그레디 석좌 교수는 미 해군 인슈티튜트 저널 1월호에 게재된 “전함이 많은 쪽이 이긴다(Bigger Fleets Win)’란 제목의 논문에서 “세계 해전사가 주는 교훈이라면, 중국의 수적 우세가 미 해군의 패배를 초래할 것이라는 점”이라고 주장했다.
작년 11월 말에 나온 미 국방부의 ‘2022년 중국 군사력 보고서(China Military Power Report)에 따르면, 중국 해군은 전함 수에서 2020년쯤 미 해군을 앞질러서 현재 340척을 보유하고 있다. 2025년에는 400척, 2030년에는 440척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에, 작년 7월의 ‘미 해군 계획(Navigation Plan)’을 보면 현재 280여 척인 미국의 전함 수는 2045년이 돼도 350여 척이다. 해당 연도를 비교하면, 미래에도 중국에 수적으로 밀린다는 얘기다.
미국은 대신에 150척 규모의 무인(無人) 전함ㆍ수중 플랫폼(무인 잠수함 등)으로 첨단 하이브리드 함대를 운용하겠다는 계획이다.
미국의 전략은 ‘테크놀로지’에 의존하겠다는 것이다. 이 해군 계획은 “세계는 단지 전함 수만이 아니라, 테크놀로지ㆍ작전 개념ㆍ동맹국ㆍ시스템의 통합이 무력 분쟁에서 승리를 결정짓는 새로운 전쟁 형태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샘 탠그레디는 BC 550년의 그리스ㆍ페르시아 전쟁부터 냉전 시절 미ㆍ소 수퍼 파워의 대리전 성격이 짙었던 국지적 해전까지 28개 해전을 검토한 결과 “단 세 건의 경우에만 월등한 테크놀로리지가 수적 우세를 이겼다”고 반박했다. 이 밖의 모든 해전에선 수적 우위, 또 동등한 규모의 해군력이 부딪쳤을 때에는 뛰어난 전략을 구사하는 쪽이 이겼다. 승리는 종종 수적 우세와 전략, 지휘관의 통솔력 등의 합작품이었다.
군사기술력의 압도적 우세한 국가가 수적 열세를 딛고 승리한 경우는 ▲비잔틴 제국이 AD 1000년경까지 인화성 물질인 ‘그리스 화약(Greek fire)’을 독점하면서 바이킹ㆍ슬라브족ㆍ투르크ㆍ아랍을 물리친 경우 ▲포르투갈 해군이 인도양에서 오스만 제국과 인도의 동맹국들을 이긴 전쟁(1500~1580) ▲영국과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과 중국의 전쟁(1840~1900) 등 3건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탠그레디 교수는 “1800년초 나폴레옹 전쟁에서, 프랑스 전함은 디자인과 구조 면에서 영국 전함보다 우위에 있었다”며 “그러나 영국 해협을 건너려는 나폴레옹을 막은 것은 영국 해군의 수적 우세였다”고 밝혔다.
심지어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일본의 일부 군사기술력은 일부 미국에 앞섰다. 제로 전투기 외에도, 정밀한 자이로스코프(gyroscope)를 장착한 일본의 93형(型) 어뢰는 미국에선 ‘긴 창(long lance)’이라 불렀고, 지금도 2차 대전 최고의 어뢰라는 평가를 받는다. 또 일본이 공중에서 투하하는 어뢰는 얕은 바다에서도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었다. 심지어 일본과 미국은 전쟁 초 항공모함 수도 각 8척으로 같았다.
그러나 일단 전쟁이 시작되자, 일본은 미국의 거대한 산업 기반, 막강한 보급선ㆍ수륙양용함 등 전함 수의 우위를 이길 수 없었다. 전쟁 중에 일본은 18척의 항모급(級) 전함을 만들었고, 미국은 144척을 만들었다. 미국이 전쟁을 결심한 이상 일본이 승리할 가능성은 없었다.
탠그레디는 “많은 분석가는 이제 냉전이 종식된 이래 계속 인수합병을 통해 줄어든 미국의 국방산업 기반이 전시(戰時) 요구에 즉각적으로 확장될 수 있을지 의문을 갖는다”고 썼다.
해군 대위 출신인 그는 “육지 전투와 해전은 다르다. 바다에선 방어하거나 돌파하거나 우회해야 할 고정된 전선이라는 것이 없다”며 “해군 전쟁에선 효과적으로 선제 공격해 상대 전력을 소모시키는 것이 유일한 목표”라고 주장했다. 이 경우에는 상대보다 2배 많은 수의 전함을 가진 해군력이, 상대보다 2배 빨리 함포를 쏠 수 있지만 전함 수는 절반인 해군력을 이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 방위산업체들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수요도 맞추지 못해, 미군 자체 무기고가 줄어드는 상황이다. 미 함대사령부의 대릴 코들 사령관은 지난 주 워싱턴 DC의 한 심포지엄에서 “미 방위산업체들이 우리가 필요로 하는 무기를 제때에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며 “무기 없이는 이길 수 없다”고 비판했다.
미 해군참모총장인 마이클 길데이도 지난 13일 “미국은 중국 해군의 미사일을 미사일로 다 맞서지 못할 것”이라며 “한국, 일본과의 군사협력은 필수”라고 말했다. 탠그레디 교수는 “만약 미 해군이 중국 미사일을 미사일로 맞서고, 전함에는 전함으로 맞서지 못한다면, 도대체 (미국의) 기술적 우위는 어디 있느냐”고 CNN에 말했다.
탠그레디 교수는 논문에서 “지난 30년간 미 해군에선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 “미 해군은 무기 정밀도, 정보통신 기술, 사이버 능력, 무기기술 플랫폼 디자인 등에서 뛰어나, 각각 뛰어난 능력을 갖춘 적은 수의 전함으로도 기술적으로 덜 발달한 상대를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팽배했다”고 지적했다.
또 미 해군 지도부는 “위성, 탄도미사일, 광대역 통신, 사이버 무기, 극초음속 무기, 고출력의 지향성 에너지 무기(directed-energy weapon)가 완전히 전쟁을 바꿨는데, 왜 과거 해전을 보느냐”며 “최첨단 무기를 갖춘 5척이 500척 적(敵) 전함의 정보시스템을 무력화할 수 있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적을 무력화할 수 있는 5척의 최첨단 무기는 없다”며 “보다 두려운 것은 미국에 거의 버금가는 군사기술력을 가진 적의 500척 함대를 마주하게 되는 것이며, 중국은 인공지능의 군사적 응용에서는 리더”라고 밝혔다.
또 기술이 양적 우위를 앞선다는 논리의 또 다른 문제점은 이 첨단 기술 무기가 얼마나 잘 작동할지는 대부분 아직 모른다는 것이다. 탠그레디 교수는 “기술적 우위를 갖췄어도 전함 수가 열세라면, 더 많은 수의 전함을 지닌 적을 절대로 이길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3건의 예외적인 아웃라이어(outliers)를 제외하곤 그런 경우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느니, 미국 전함이 우수해서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은 헤밍웨이가 소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서 썼듯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좋아서일 뿐, 역사적 증거를 무시하는 가정”이라는 것이다.
탠그레디는 앞으로 미 해군 전함 수를 250척으로 갈지, 500척으로 갈지를 선출직 관리나 해군이 결정해야 한다면, 이 위험을 인식하고 얼마나 책임질 것인지를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20년대 중국과의 서태평양 해전은 중국의 텃밭에서 적은 수의 미 해군력이 중국 공군과 미사일 전력의 사거리 안에서 막대한 수의 중국 해군과 싸우게 된다. 그는 “미국 지도자들은 수적 우세 없이, 어느 정도까지 기술적 우위에 기댈 것인지 자문(自問)해야 한다”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