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미국 내 반도체 생산을 장려하기 위해 기업에 지급하는 총 390억달러(약 50조5000억원) 상당의 반도체과학법(Chips Act) 보조금에 대한 신청 절차 및 기준을 28일(현지 시각) 발표했다. 미국의 반도체 생산 지원금을 받는 기업들이 일정 금액 이상의 이익을 거둘 경우, 지원된 보조금의 최대 75%까지 수익을 미국 정부와 공유해야 하도록 했고, 공장이나 건설 현장 인근에 보육시설을 설치하거나 기존 보육사업자를 지원하도록 하는 방안 등도 포함됐다. 지나 러몬도 장관은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우리는 (지원금을 받는) 기업들이 회계장부를 공개하도록 할 것이다. 백지수표(blank check)는 없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해 8월 서명한 반도체법은 반도체 기업들의 미국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해 반도체 생산 보조금으로 390억달러, 연구개발(R&D) 지원금으로 110억달러 등 5년간 약 520억달러의 예산을 편성했다. 28일부터 신청을 받는 보조금은 이 중 390억달러 규모의 생산 보조금이다.
산업부는 이날 발표한 기금지원공고(NOFO)에서 보조금을 신청한 반도체 기업을 대상으로 일정 비율의 이익을 정부와 공유하도록 강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보조금 신청 시 예상 수익을 제출하도록 하고 이를 초과하는 경우 초과수익을 미 정부에 넘기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상무부는 “1억5000만 달러(약 2000억 원) 이상의 반도체 지원금을 받는 기업은 예상을 초과하는 수익의 일부를 미국 정부와 공유해야 한다”며 “(수익 공유는) 자금 지원된 자금의 75%를 넘어서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상무부는 “미국 납세자의 세금을 보호한다”며 “(초과 이익은) 자국 내 반도체 생태계 강화를 위해 쓸 것”이라고 했다. 초과이익 공유와 관련된 구체적인 내용은 3월에 공개될 예정이다.
이 조항으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보조금 신청을 고려하고 있는 우리 기업들도 고민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보조금을 받는 기업은 중국 첨단 반도체 투자를 금지한 조항은 물론, 미 상무부와 예상 수익까지 논의해 개별 협약을 맺어야 하는 상황”이라며 “미국 위주로 반도체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계획이 우리 기업들에겐 각종 제한 조항으로 돌아오고 있다”고 했다. 다만 상무부는 “초과 수익 공유와 관련한 기준들은 (기업들이 수행하는) 프로젝트마다 다를 것”이라며 “예외적인 경우엔 면제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반도체법은 향후 10년간 중국에서 반도체 생산 능력을 확대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기업에만 보조금을 지원한다는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도 포함하고 있다. 해당 법안은 구형 범용(legacy) 반도체를 생산하는 기존 시설 운영은 제한하지 않고 있다. 범용 반도체의 정의가 이날 나올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지만, 이날 상무부는 가드레일 조항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발표하지 않았다. 다만 공고에서 “국가안보 우려의 원천이 되는 특정 국가에서 제조 능력을 확장할 수 없다”는 원론적인 내용만 담겼다. 또 적성 국가들과 첨단 기술 개발을 목적으로 제휴 관계를 맺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이와 함께 상무부는 반도체 생산 지원금을 받는 기업에 군사용 반도체나 거대 인프라에 사용되는 반도체의 안정적인 공급을 요구하는 등 지급 대상 기업을 선정할 때 미국의 국가안보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 보조금을 지원 받는 반도체 기업이 주가를 올리기 위해 자사주를 매입하는 것을 차단하고 첨단 반도체를 생산하는 기업에 추가 보조금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상무부는 개별 기업들이 미국에서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의 상업성도 꼼꼼하게 들여다본다는 계획이다. 상업성에는 기업이 계속된 투자와 업그레이드를 통해 공장을 장기간 운영할 수 있는지 등이 조건으로 제시됐다. 상무부는 사업의 예상 현금 흐름과 수익률 등 수익성 지표를 통해 재무 건전성을 검증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상무부는 보조금을 받는 기업들에 대해선 반도체 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사내 어린이집 설치 등 보육 지원 계획을 제출하도록 할 방침이다. 반도체과학법으로 미국에 투자하는 반도체 기업들이 늘면서 관련 인력들에 대한 지원 방침도 함께 마련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