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다음 달 미국 국빈 방문이 확정되고, 일제 징용 피해자 배상 방안 발표를 계기로 다음 주 방일이 추진되면서 한·미·일 3국 간 군사·경제 안보 협력 강화 움직임이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한미 정상회담을 조율하기 위해 미국을 찾은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은 7일(현지 시각) “한미 양국은 윤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계기로 대북 핵 실행력 억제를 질적으로 한층 강화할 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날 워싱턴DC에서 특파원들과 만난 김 실장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법 같은 미 산업정책 이행 과정에서 주요 동맹인 한국의 기업이 불공평한 대우를 받거나 예기치 못한 불확실성에 직면할 가능성을 최소화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한국이 앞으로 미국·일본·호주·인도 4국 협력체인 쿼드(Quad) 실무 그룹에 참여할 가능성과 관련해 “적극 공감한다”고 밝혔다. 그는 “윤 대통령이 후보 시절 쿼드 실무 그룹에 적극 참여, 간접적 기여를 통해 나중에 자연스럽게 기회의 창이 열릴 때 (공식적으로) 들어갈 기회를 모색하겠다는 취지로 말한 적이 있다”며 “그 연장선에서 실무 그룹 참여는 적극적으로 가속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외교 안보 당국자는 “공급망과 기술 블록화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한일 관계가 개선되면 한미 정상회담에서 쿼드 실무 그룹 참여 문제에서도 진전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날 미국 정부가 한국과 일본에 핵 억지력 강화를 위한 한·미·일 3국 간 신규 협의체 창설을 제안했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도 나왔다. 이와 관련, 우리 외교부는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 않으면서 “한미 양국은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비한 확장 억제력을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협의체를 운영하고 있고 이런 협의체들이 더 효과적으로 작동될 방안에 대해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고 했다. 한미 간의 핵우산 강화 논의가 먼저라는 것이다. 다만 외교 소식통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한 한·미·일 군사 협력 강화란 방향엔 3국 간에 이견이 크지 않다”고 했다. 정부 일각에선 윤 대통령의 강제 징용 문제 해법 결단을 계기로 한일 관계 개선이 이뤄지면 한·미·일 3국 핵 억지력 협의체 신설 문제도 진전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미 양측은 윤 대통령 방미를 계기로 지난 70년간의 동맹 역사와 성과를 짚어보고 미래 동맹의 비전과 ‘더 강력하게 행동하는 동맹’을 구현하기 위한 구체적 내용이 담긴 공동성명을 발표할 방침이다. 김 실장은 “미 측은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우리 정부의 결단을 높게 평가하고, 지속할 수 있는 양국 관계 발전으로 이어지도록 계속해서 윤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지지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한미 간 쟁점으로 떠오른 반도체법 문제 해결에는 시간이 더 걸릴 전망이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내년 재선 도전 여부를 결정해야 할 시점에 핵심 정책인 반도체 지원법을 수정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미국의 정책이) 중국에 투자한 우리 반도체 기업들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우려를 표하고 그 영향을 줄일 방법을 모색해 보자고 얘기했다”며 “미국도 동맹이나 우방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상당히 신경 쓰는 눈치였다”고 전했다.정부 핵심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4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 동맹이 경제까지 포함한 포괄 동맹으로 제 역할을 하기 위해 반도체 문제 등에서 미국 측의 성의 있는 조치를 강력하게 요청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