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16일 미국 법무부는 중국 국가안전부 소속의 스파이로 미국의 산업 기술을 빼낸 쉬옌쥔(42)이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연방법원에서 20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고 발표했었다. 중국의 스파이가 실제로 미국 영토에서 재판을 받아 처벌받은 사례는 쉬옌쥔이 처음이었다.

7일 뉴욕타임스 매거진은 이와 관련, 미 연방수사국(FBI)이 쉬옌쥔을 벨기에로 유인하고, 벨기에 경찰로부터 신병을 넘겨 받아 미 법정에 세우기까지 벌인 방첩(防諜) 활동을 자세히 보도했다.

GE 에이비에이션을 비롯한 미 항공 우주기업들에서 기밀 정보를 빼낸 혐의로 체포돼 미국에서 20년 징역형을 선고받은 중국 스파이 쉬옌쥔/미 법무부

◇중국 첨단 엔지니어에게 날아온 고국의 강연 초청 이메일

시작은 2017년 3월 GE 에이비에이션(Aviation)에서 일하던 ‘화(華)’라는 이름의 중국인 엔지니어가 중국 대학으로부터 받은 이메일이었다. 그는 처음에 소셜미디어 링크드인(linkedIn)을 통해 난징(南京)항공항천[우주]대학(NUAA) 관계자로부터 강연 초청을 받았고, 이후 이메일로 방문 계획을 구체화했다. 화는 GE 에이비에이션에서 탄소 기반 복합재를 사용해 제트 엔진의 회전 팬 블레이드(fan blade)와 케이스를 설계하는 그룹에 속했다. 금속 대신 탄소 기반 재료를 사용하면, 엔진의 무게가 가벼워져 경제적이다.

미국에서 구조공학 분야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화의 꿈은 늘 교수가 되고, 학문적 인정을 받는 것이었다. NUAA 대학 측은 중국 방문 시 화가 친지를 만나는 여행 경비도 모두 부담하겠다고 했다. 화는 망설이지 않고 수락했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GE 측이 민감한 하이테크에 대한 자신의 중국 강연을 승인하지 않으리라는 것이었다.

결국 화는 회사 측에 강연을 알리지 않고, 중국에 가기로 했다. NUAA 측에는 디테일한 내용은 밝히지 않고, 복합재료에 대한 일반적인 연구 결과만 얘기하겠다고 했다. 화는 GE 웹사이트에서 교육용 파일 몇 개를 다운로드했지만, 여기엔 복합재료 사용에 대한 전문적인 지침도 포함돼 있었다.

그는 NUAA에서 장쑤성의 국제과학기술개발협회 부회장이라는 직함을 가진 ‘치(屈)’의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 화의 강연에서 한 학생이 매우 구체적인 질문을 했지만, 그는 “이는 GE가 소유권을 가진 정보라서, 세부 사항을 공유할 수 없다”고 했다. 화는 3500달러의 강연 사례금을 받았고, 다음날 미국으로 돌아왔다.

미국 도착 후에, 화는 NUAA의 컴퓨터에 GE 로고가 찍힌 사진이 다수 포함된 자신의 GE 프레젠테이션 파일을 깜빡하고 삭제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삭제 요청 메일을 한 학생에게 보냈고, 이제 ‘사안 종결’이라고 생각했다.

◇6개월 뒤 그를 찾아온 FBI와 역(逆)제안

중국을 방문하고 6개월이 지난 2017년 11월1일 화는 회사 측으로부터 보안 담당자를 만나라는 통보를 받았다. GE의 보안 책임자는 중국 여행의 목적을 물었다. 화는 대학 동창회와 친지 방문이라고 답했다. 이어 2명의 FBI 요원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FBI는 같은 질문을 되풀이했고, 답변이 진실되지 않다는 신호를 보내며 계속 진술을 수정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결국 FBI는 화가 친지 외에 NUAA를 방문한 증거를 제시했다. 화는 마치 떠밀린 것처럼 털썩 의자에 가라 앉았다. FBI 요원은 “연방수사관에게 거짓말하는 것은 범죄”라며 모든 것을 얘기하라고 압박했다. 결국 화는 FBI 요원이 NYT에 ‘점진적 진실 말하기’라고 묘사한 진술을 하기 시작했다.

화가 NUAA에서 복합재료로 비행기 부품을 설계하는 것에 대해 발표했다고 말했을 때에, FBI 요원 브래들리 헐은 ‘해외 중국 엔지니어를 기업 정보를 빼내는 ‘자산’으로 키우는 중국 정보 관리가 난징에서 화를 환대했다’고 확신했다.

잠시 휴식을 가진 뒤, FBI는 화에게 역(逆)제안을 했다. 화가 FBI의 방첩 작전에 협력하면, 기소되지 않게 돕겠다는 것이었다. 화가 FBI의 신문을 받는 동안, 그의 집은 수색을 당했고, 화의 거짓말이 추가로 드러났다. 그의 노트북엔 미국 정부가 ‘수출 통제’로 표시한 문서도 포함돼 있었다.

◇해외 중국인 학자들에게 “중국이 번성하게 도와달라” 호소

중국은 그동안 전투기, 미 국방 관련 위성을 쏴 올리는 보잉 사의 델타4 로켓, 해군 시스템, 왕복우주선, 심지어 옥수수 종자까지 군ㆍ산업계의 수많은 기밀을 마구잡이로 미국에서 빼냈다.

또 미국 기업으로부터 빼낸 정보로 중국인이 중국에서 사업체를 차릴 수 있도록 자금도 지원한다. 캘리포니아 어바인의 한 생명공학 회사는 중국인 엔지니어가 중국 여행에 앞서 종종 회사의 심장 카테터(catheter)에 대한 독점적인 정보를 다운로드한 사실을 발견하고 FBI에 신고했다. FBI는 그의 노트북에서 임대료 없이 난징의 한 산업단지 내에 사무실을 제공받는다는 계약서를 확인했다.

미국 방첩기관 관계자들은 NYT에 중국 정부는 중국계 미국인에게 “당신의 미국인 국적과 정보를 중국과 공유하는 것 간에는 어떠한 갈등이 없다”고 말하고, “당신도 중국인이니 중국이 번창하는 것을 보고 싶어할 것”이라는 애국심에 호소한다고 말했다. 중국이 이렇게 해외 중국인을 이용한다고 해서, 미국으로서는 산업계ㆍ학계의 중국계 미국인을 과도하게 감시하고 미국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부당한 의심을 받게 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중국에 가서 환대를 받고 나면, 해당 학자나 엔지니어는 처음엔 의도하지 않았던 정보까지 제공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게 된다. 학생들이 계속 민감한 질문을 던지면 계속 “그건 말할 수 없다”고 답하기 곤란해져 결국 무너진다는 것이다.

◇애플 클라우드 서버에서 쏟아진 중국 스파이의 정체

결국 화는 FBI에 협력하기로 했다. 그러나 FBI는 절대로 화를 대신해서 중국 측과 접촉하지 않았다. 북경어를 모르는 FBI 수사관 헐의 지시 사항을 FBI의 언어 전문가들이 도와, 화가 작성하도록 했다. 그러나 절대 의심을 사지 않도록, 모든 이메일의 문장 작성은 화가 했다.

화는 2018년 2월 춘절(春節)을 맞아, 다시 중국을 방문하고 싶다고 이메일을 보냈다. 중국 접선창구인 장쑤성 국제과학기술개발협회 부회장이란 ‘치(屈)’는 “어떤 기술이 필요한지 알려주겠다”고 답신했다.

치는 2개의 구글 이메일 계좌를 사용했고, FBI는 치의 모든 자료와 통화 내역이 주기적으로 애플의 클라우드 서버(iCloud)에 저장되는 것을 확인했다.

‘보물창고’가 열렸다. 치의 본명은 쉬옌쥔(徐健君)이었다. 중국 국가안전부 소속으로, 쉬는 미국 기업들로부터 정보를 빼내려고 여러 꼭두각시를 키워 조종하는 스파이였다. 그의 신용카드, 급여 명세서, 건강보험 카드 외에도, 그가 미국의 여러 우주항공기업 엔지니어들과 통화한 내역, 정보 전달 시 주의사항 등 그의 기소에 필요한 온갖 정보가 아이클라우드에 저장돼 있었다.

쉬가 NUAA의 한 교수에게 “미국의 F-22에 대한 정보를 빼내야 한다”고 말한 통화 기록, 불륜 여성과의 이별을 안타까워하는 기록도 있었다. 그가 왜 경솔하게 이걸 다 아이클라우드에 자동 저장되게 했는지는 의문이지만, 미국 검찰이 대부분의 증거를 이렇게 ‘원스톱(one-stop)’으로 찾을 수 있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고 한다.

이제 FBI는 그를 잡아, 미 법정에 세우기로 했다. 미국 대학ㆍ기업들은 기밀 누출 사건이 발생해도, 그 배후에 중국 정부가 있다는 것에 대해선 FBI에 종종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쉬옌쥔의 스파이 가면을 벗겨서, 분명히 드러낼 필요가 있었다.

◇기밀 뺀 자료 보내며, 중국 스파이 입맛 자극

중국 스파이 쉬옌쥔은 GE의 화에게 팬 블레이드 케이싱(casing)과 관련된 자료를 요구했고, 화는 해당 자료를 보냈다. 하지만 이는 GE 측이 FBI의 지시에 따라 만든, 별 내용이 없는 그럴듯한 자료에 불과했다.

춘절 방문을 앞두고, 쉬옌쥔은 화에게 구체적인 요구 목록을 보냈다. 화는 중국 방문 예정 직전에 “갑자기 3월 프랑스 출장이 잡혀 이를 준비해야 해서, 회사가 중국 휴가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이메일을 보냈다. 그러면서, 쉬가 요구했던 GE의 랩톱 디렉터리 목록을 보냈다. 이 역시 GE가 민감한 정보를 제외한 것이었지만, 쉬의 입맛을 자극하기엔 충분했다.

화는 프랑스 출장 중에 벨기에나 독일, 네덜란드에서 만나기로 했다. FBI는 해외에서 체포한 스파이를 미국으로 송환하는 것을 허용할 나라를 물색했고, 벨기에 정부의 승인을 받았다. FBI는 프랑스는 비협조적으로 예상돼, 제외했다.

그러나 중국 스파이 쉬는 네덜란드에서 만나기를 고집하며, “상사의 허락 없이 새로운 국가로 여행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브뤼셀에서 당일치기 여행이 가능한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에서 만나자고 했다. 이제 화가 브뤼셀을 결코 떠날 수 없는 이유를 대야 했다. 화는 FBI 지시대로 “만나기로 한 날엔 회사 직원 모두가 참석해야 하는 부활절 점심이 있어서, 브뤼셀을 떠날 수 없다”고 했다.

갤러리 루야알 상튀베르/flickr

두 사람은 브뤼셀의 유서 깊은 갤러리 루야알 상튀베르(Royal Saint Hubert)의 한 커피샵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러나 약속보다 수 시간 전에 주변을 확인하러 간 쉬옌쥔과 중국 국가안전부 요원 2명은 벨기에 경찰에 체포됐고, 쉬는 6개월 뒤 경제 스파이 혐의로 미국으로 추방됐다.

◇스파이와 끄나풀의 공통점

NYT는 중국 스파이 쉬와 GE 엔지니어 화는 묘한 공통점이 갖고 있었다고 전했다. 두 사람은 모두 가난한 집안 출신이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집안에서 처음으로 대학에 갔다. 모두 공학 학사를 취득했다. 그러나 2003년 화는 미국 유학을 떠났고, 쉬는 같은 해 국가안전부에 들어갔다.

화는 GE 에이비에이션에서 해고됐고, 지금은 자신의 전공과는 무관한 기술 기업에서 일한다. 그는 NYT에 “회사에 얘기하지 않고, 중국 대학의 초대를 수락한 결과를 책임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난징 방문을 애초 기획한 쉬옌쥔에 대해 분노하느냐는 질문에는 “아니다”며 “그 역시 지시 받은 대로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작년 11월16일 쉬옌쥔이 20년 형을 선고받자, 화는 변호사를 통해 NYT에 메시지를 보냈다. 쉬가 그렇게 무거운 형량을 선고 받아 슬프다며 “그는 나의 적이 아니다. 우리는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NYT 기자는 “두 사람 다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미ㆍ중의 거대한 지정학적 체스 게임의 ‘조각’에 불과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