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실조로 매일 늘어나는 시체를 구덩이를 파서 묻었다. 그 자리에 흙을 덮어 옥수수 농사를 지었다.”

14일(현지 시각) 오후 미국 워싱턴 DC 연방하원 의원회관인 레이번 빌딩. 탈북민 지한나씨가 북한 당국의 잔혹성을 증언하자 참석자들이 눈물을 흘렸다. 북한 인권운동가 수잰 숄티 미국 디펜스포럼 대표가 주최한 이날 행사에서 지씨 등 탈북 여성 3명은 중국에서 강제 북송(北送) 이후 겪은 김정은 정권의 인권 유린 실태를 조목조목 전했다. 80여 명의 의회 보좌관과 싱크탱크, 인권 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해 2시간 가까이 이어진 이들의 생생한 증언을 경청했다.

14일(현지 시각) 미 연방하원 레이번 빌딩에서 탈북민 지한나(왼쪽)씨가 북한의 인권 유린 현실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이민석 워싱턴 특파원

지씨는 2009년 북한의 기습 화폐 개혁 이후 쌀 약 1.5t을 살 수 있는 돈을 당국에 빼앗긴 뒤 탈북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는 이날 “(교화소 등에서 간수들이) 매일같이 몽둥이와 혁대로 때렸고, 머리끄덩이를 잡아 벽에 처박았다”며 “아직도 다리 곳곳에 움푹 팬 상처가 있고, 목을 움직이기 힘들다”고 했다. 지씨는 “재소자들은 물이 없다는 이유로 대소변도 보지 못하도록 강요당했다”며 “인간의 최소한 권리라도 누릴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했다. 그는 “양강도 보위부 집결소를 나올 때 ‘김정은 동지를 위해서는 슬픔도 고난도 행복이다’라는 구호판을 보면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고 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북한이 국경을 봉쇄하기 직전인 2019년 탈북한 이하은씨는 “집결소에 구금됐을 때 하루 10시간 이상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며 “조금만 움직여도 쇠막대기로 구타당해 여러차례 기절했다”고 전했다. 이씨는 “아직도 ‘인권’이란 말조차 모르고 철창 없는 감옥 같은 땅에서 사는 모든 북한 주민과 여성을 주목해 달라”고 했다. 2011년 18살 나이로 탈북한 한송미씨는 “국경경비대에 붙잡히면 가족들이 처벌당할 것을 알고 있어서 잡히면 자살하려고 했다”며 “북한에서의 삶은 아사(餓死)를 피하기 위해 일하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이날 행사는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 인권 문제를 본격적으로 공론화해 대북 압박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는 가운데 열렸다. 바이든 대통령은 외교 정책에서 인권 가치를 우선순위에 두겠다고 했지만, 취임 2년이 지난 올 1월에야 북한 인권을 담당하는 전담 특사에 줄리 터너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과장을 지명했다.

숄티 대표는 “요즘은 온통 김정은의 딸(김주애) 이야기뿐”이라며 “북한 인권의 반인도적 범죄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인권은 북한 정권의 아킬레스건”이라고 강조했다. 숄티 대표는 북한 인권 문제를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2006년부터 매년 워싱턴DC에서 ‘북한자유주간’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이에 대해 북한은 “인권 유린에 대한 문제 제기는 날조된 허위 주장이며 주권국에 대한 도발”이라고 강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