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커스 정상 첫 대면회의… 호주, 美 핵추진잠수함 5척 도입 - 조 바이든(가운데) 미국 대통령과 리시 수낙(오른쪽) 영국 총리,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가 13일(현지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해군 기지에서 버지니아급 핵추진 잠수함 ‘미주리호’를 배경으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미국·영국·호주 3자 안보협의체인 ‘오커스(AUKUS)’ 정상들이 대면 회의를 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은 이날 중국 위협에 맞서 2030년대 초부터 최대 5척의 버지니아급 핵잠수함을 호주에 인도하기로 합의했다. /AP 연합뉴스

미국·영국·호주 3자 안보협의체 ‘오커스(AUKUS)’ 정상들이 13일(현지 시각) 미국에서 첫 대면(對面) 정상회의를 갖고 오는 2030년 초부터 미국이 호주로 최대 5척의 버지니아급 핵 추진 잠수함(SSN)을 인도하기로 합의했다. 2021년 3국이 오커스를 창설했을 때 “오는 2040년 이후 핵잠수함 선단을 창설할 계획”이라고 했던 것보다 일정을 10년 더 앞당긴 것이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위협 수위를 고조시키는 중국에 대응해 미국이 핵심 동맹국들과의 군사 협력 수준을 한층 높이겠다는 의도로 분석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리시 수낙 영국 총리,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와 미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2030년대 초부터 호주에 버지니아급 핵잠수함 3척을 판매할 계획”이라며 “필요한 경우 1~2척을 추가로 판매할 수 있다”고 밝혔다.

2021년 9월 인·태 지역 안보 대응을 위해 오커스가 출범한 이후 3국 정상이 대면 정상회의를 가진 것은 처음이다. 호주는 미국으로부터 핵잠을 인도받으면 세계 7번째 핵잠수함 보유국이 된다. 미국이 핵 추진 잠수함 관련 기술을 타국에 전수하는 것도 1958년 영국에 제공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농축우라늄 원료를 한 번 장전하면 거의 무제한으로 잠항(潛航)이 가능한 핵잠은 유사시 적국에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발사할 수 있다. 호주에 실전 배치되는 핵잠은 미국 입장에선 대만을 위협하는 중국을 억제할 수 있는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

미국 미주리호 핵잠수함(버지니아급)

세 정상은 이날 미국이 호주에 제공하기로 한 버지니아급 SSN 미주리호를 배경으로 기자회견을 가진 뒤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우리(3국)는 자유를 보호하고 인권, 법치, 주권국가의 독립, 규칙에 기반한 국제 질서를 존중하는 세상을 믿는다”고 했다.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국제 정세가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에서 오커스의 최우선 목표는 인도·태평양의 안정을 강화하는 것”이라며 “이 첫 프로젝트(핵잠 호주 인도)는 시작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3국 정상은 영국이 자국의 어스튜트(Astute)급 핵 추진 잠수함에 미국의 최첨단 기술을 접목시켜 건조할 차세대 핵잠 ‘SSN-오커스’(SSN-AUKUS)를 호주에서 건조할 예정이라고도 밝혔다.

‘핵잠 협력’은 3단계에 걸쳐 실시되면서 미국·영국·호주 관계를 더욱 굳건하게 만들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핵잠을 건조하기 위한 조선소 인프라 건설 및 기술자들 충원, 핵잠에 승선할 선원 교육(1단계)을 거쳐 미국 핵잠의 실제 판매(2단계), 차세대 SSN-오커스 건조에 착수(3단계)한다는 계획이다. 로이터는 “호주에서 핵잠을 건조하기 위해 향후 5년 동안 호주 기술자들은 미국의 잠수함 조선소를 방문해 관련 기술을 배울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별도로 미국과 영국은 이르면 2027년부터 호주 등 인도태평양 지역에 자국이 보유하고 있는 핵 추진 잠수함을 전진 배치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미국이 한국이나 일본에 ‘대중(對中) 전선’에 참여하라는 압박 수위를 높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도 나온다.

중국은 미국이 호주에 핵잠을 인도하기로 한 데에 대해 핵확산금지조약(NPT) 위반이라며 “결연한 반대”를 표명했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4일 “미·영·호주가 발표한 공동성명은 NPT의 목적과 취지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NPT는 비핵보유국이 새로 핵무기를 보유하거나 보유국이 비보유국에 핵무기를 제공하는 것을 금지하는 다국적 조약이다. 호주는 비핵보유국이다.

한편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오커스 회의 참석차 전날 호주 공군기 KC-30A를 탑승한 뒤 미국으로 가면서 중국 영공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항로를 이용했다고 영국 일간 더타임스가 이날 전했다. 그는 전날 인도에서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 안보 회담을 한 뒤 미국으로 가기 위해 이륙할 때 통상 중국 영공을 경유하는 상업 비행로를 크게 벗어나 일본 남쪽으로 우회한 뒤 미국 서부 샌디에이고를 향해 날아갔다고 한다. 이에 대해 호주 언론 매체들은 “호주의 핵잠 획득에 대해 비판적인 중국을 의식한 행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