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감이 감도는 외교 협상장에 외교관들이 마주앉아 상대의 ‘패’를 간파하려 할 때 때로는 언어보다 표정이 많은 답을 알려준다. 만약 외교관이 아니라 인공지능(AI)이 사람의 표정을 분석하면 어떨까. 21일(현지 시각)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에 ‘신기술은 외교를 변화시킨다’라는 글을 기고한 외교관 출신 앤드루 무어는 “이런 상황에 AI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AI 등의 기술을 통해 협상 비디오를 분석하고 미세한 표현과 미묘한 감정을 식별할 수 있을 것이다.”
에릭 슈밋 전 구글 최고경영자(CEO)의 비서실장 및 구글의 비밀 연구소 ‘구글 X’ 직원으로도 일했던 그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 중 하나인 외교조차 혁신의 물결에 저항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무어는 “우크라이나가 전장에서 성공을 거둔 것은 드론부터 오픈 소스 AI까지 신기술의 혁신적 사용이 도움을 줬기 때문”이라고 전제한 뒤 “우크라이나 전쟁도 결국 다른 전쟁처럼 협상으로 마무리될 텐데, 외교적 방법은 아직 19세기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신 기술이 협상 초기부터 합의 이행과 모니터링까지 평화 중재의 모든 단계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전망했다. 가장 간단하게는 자동 언어 처리 기술이 실시간 통역을 돕고, 챗GPT처럼 AI를 이용한 챗봇이 협상 전에 파악해야 할 사전 정보의 검색과 요약을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2014~2015년 자신이 존 케리 전 국무장관을 보좌해 이란과 핵 협상을 벌였을 때 외교관들이 상대국의 진정한 의도나 협상 상대의 개인적 특성을 알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봤다면서, 컴퓨터로 협상 상대의 영상을 분석해서 표정과 감정 변화를 과학적으로 파악하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아울러 당시 이란 핵 시설의 모형을 만들어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추적했는데, AI가 발전하면 이런 작업을 더 싸고 빠르게 수행할 수 있다고 그는 보았다. 무어는 “많은 국가가 각자의 AI를 개발하면서 주어진 거래 조건과 이해관계를 고려해 최적의 합의안을 찾아내는 해글봇(hagglebot·협상법을 학습한 AI)이 협상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것을 보게 될 수 있다”며 “외교적 합의가 준수되고 있는지 상대국 동향을 모니터링하는 데도 퀀텀 센서 등이 역할을 하는 등 신기술이 외교를 크게 바꿔놓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