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에 있는 장로교회가 운영하는 한 초등학교에서 한때 이 학교 학생이었던 트랜스젠더 여성이 총기를 발사해, 아홉살짜리 학생 3명과 교장과 직원 등 어른 3명이 사망했다. 범인은 AR-15 계열(style)의 총기 2정과 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AR-15는 미국의 대규모 살상 총격 사건에서 심심찮게 등장하는 반자동(半自動) 소총이다. 2012년 이후 미국에서 발생한 최악의 총기 대량 살상 사건 17건 중에서 10건이 AR-15 소총 단독이거나, 이 총이 포함된 여러 정의 총기에 의한 범행이었다.
지금도 최악의 미국 초등학교 총격 사건으로 남아 있는 2012년 코네티켓 주에서 27명의 목숨을 앗아간 샌디후크 초교 난사도 AR-15 계열 소총에 의한 것이었고, 미 역사상 최대 총기 참사로 60명이 숨진 2017년의 라스베이거스 음악축제 총격 사건에서도 범인은 AR-15를 비롯한 여러 종의 총기를 군중에 난사했다.
그런데 미국에서 AR-15 계열로 불리는 이 반자동 소총은 사실 미군의 표준 소총인 M-16 자동 소총을 민간용으로 개조한 것이다. 지금은 미국의 거의 모든 총기 제조사가 이 AR-15를 다양한 브랜드로 생산하며, 미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소총이다. 워싱턴포스트의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 20명에 1명 꼴로 AR-15 소총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20년 전만 해도, AR-15는 미국 내 총기 소지자에게 별로 인기가 없었다고 한다. 1990년 미국에서 민간용으로 제조되는 총기 중에서 AR-15는 1.2%에 불과했다. 그런데 2019년에는 25.1%까지 치솟았고, 2020년에도 23.4%를 차지했다. AR-15 소총이 미 민간 총기 제조의 4분의1에 달하게 된 것이다. 지난 달 22일 앨라배마주 출신 연방 하원의원 배리 무어는 AR-15를 “미국의 총(National Gun of America)”로 선언하자는 법안을 내놓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2001년 9ㆍ11테러와 이후 미군의 대(對)테러전쟁, 이를 홍보에 적극 활용한 미국 총기 제조사들의 판매 전략이 주효했다고 분석했다.
◇미 국방부, AK-47에 맞설 가벼운 소총 요구
미국 펜타곤은 냉전 시절 소련의 AK-47 소총에 대응할, 살상력은 높고 무게는 기존 소총보다 가벼운 자동화기(火器)를 원했다. 1950년대 아말라이트(Armalite)라는 총기 제조사가 AR-15를 처음 생산했다. AR은 ’아말라이트 라이플(Rifle)’의 약자였다. 그러나 판매는 신통치 않았고, 1959년 아말라이트는 AR-15의 디자인을 또 다른 총기 제조사인 콜트 사에 팔았다.
콜트가 AR-15 디자인에 기초해 만든 것이 M-16이었다. 이 소총은 1963년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의 표준 장비가 됐다.
◇전통적인 총기 제조사와 소지자들, 처음엔 외면
콜트는 1997년까지 AR-15의 특허를 갖고 있었고, 민간용으로 반자동소총을 생산했다. 그러나 특허가 소멸된 뒤에도, 총기 소지 미국인들이나 다른 총기 제조사들의 반응은 시들했다. 고르지 않은 총열 덮개, 권총식 손잡이, 툭 튀어나온 탄창 등 전통적인 소총과 다른 디자인을 좋아하지 않았다. 당시 총기 소지자들에게 인기 있는 스타일은 개머리판부터 총열 부위까지 기본 몸통을 나무로 제조한 전통적인 소총 스타일이었다.
또 AR-15의 과잉 살상 능력은 사냥용이나, 가택 보호ㆍ호신용으로도 적합하지 않았다. 미 총기 제조사들은 ‘누가 이런 총을 돈 주고 살까’ 생각했다고 한다.
◇미 총기제조사들, 9ㆍ11 테러 이후 민간인들에게 ‘전술적 측면’ 홍보
하지만, 지금은 모든 총기 제조사들이 저마다 다른 이름으로 AR-15 소총을 만든다. AR-15이란 이름은 여전히 콜트가 갖고 있다.
AR-15의 운명을 바꾼 1차 요인은 2004년 반자동 소총의 판매를 금지했던 연방공격용무기법의 소멸이었다. 2005년 미국 총기 판매 실적은 5년 전보다도 저조했다.
미 총기 제조사들은 돌파구로 ‘미개척’ 총기류인 AR-15 반자동 소총을 주목했다. 이들 업체는 9ㆍ11테러 이후 군(軍)을 영예롭게 여기는 분위기, M-16과 M-16을 가볍게 축소한 M-4 카빈 소총으로 무장한 미군의 전투 이미지를 활용한 판매 전략을 수립했고 이는 적중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분석했다. 총기 회사들은 군인이라는 ‘전문가’ 집단이 쓰는 총이 민간인들에게 주는 ‘후광(後光) 효과’에 주목했다.
6연발 리볼버로 유명한 스미스 앤 웨슨이 2006년 AR-15 소총을 M&P-15이란 이름으로 제작하기 시작했고, 다른 회사들이 그 뒤를 좇았다. ‘민간용’이지만, ‘M&P’는 Military & Police의 약자였다.
AR-15를 제조하는 한 총기 제조사 대표는 AR-15의 인기를, 1953년에 처음 나온 2인승 럭셔리 스포츠카인 쉐보레 콜벳(Corvette)을 멋지게 만들어 지금도 파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워싱턴포스트에 말했다.
이후 미국 내 총기 로비에서 AR-15는 보호 목록 ‘넘버 원’이 됐다. 미 의회는 반자동 소총 판매를 다시 금지하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심지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재임 중에 “사람들이 왜 AR-15를 원하느냐”며 한때 금지를 고려했지만, 측근들이 전미총기협회(NRA)와 그의 정치적 기반을 열 받게 할 것이라고 조언해 단념했다고 한다.
◇실제 미국 내 총기 살인사건의 90%는 권총
미 연방수사국(FBI)에 따르면, 2015~2019년 기간 중 한해 1만 건이 넘는 총기 관련 살인 사건의 60%이상은 권총에 의한 것이었다. 소총(rifle)이 범행에 동원된 것은 3% 안팎이었고, 나머지는 산탄총이나 기타 명시되지 않은 총기였다.
그러나 공식적인 구매 기록만 따져도, 미 전역에 2000만 정 이상의 AR-15 소총이 퍼져 있다. 미 총기 제조사들은 2012년 이후에만 1370만 정 이상을 만들었다. 즉 AR-15 소총의 3분의2 이상은 최근 10년 사이에 제조된 것이라는 얘기다.
◇”오바마는 최고의 총기 세일즈맨” 조롱 얻는 까닭
AR-15 소총은 학교에서 대량 살상을 초래한 총격 사건이 일어나거나 미 대선이 뜨겁게 달아오르면 매출이 뛴다. 2008년 대선에서 오바마가 당선됐을 때, 2012년 샌디후크 초교 대량 총격 사건(27명 사망), 2018년 플로리다 파크랜드 고교 총격 사건(17명 사망), 2020년 대선 때 모두 판매량이 급증했다.
강력한 총기 규제를 원하고 자타가 공인하는 리버럴(liberal)인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자, AR-15는 65%나 생산량이 증가했다. 그래서 미 총기업계에서 오바마를 “올해의 최고 총기 판매원”이라고 조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