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현지 시각) 뉴욕 맨해튼 대배심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기소하기로 결정한 것은 1789년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이 취임한 이래 234년 만의 일이다.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는 한국 헌법과 달리, 미국 헌법에는 대통령의 면책특권이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다.
그럼에도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이 재임 중은 물론 퇴임 후에도 범죄 혐의로 기소당하지 않은 것을 월스트리트저널은 “230년간 이어진 정치적 규범”이라고 표현했다. 미국의 연방검사장은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지방검사장 대부분은 공화당 또는 민주당 당적을 갖고 선거로 선출된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을 기소하게 되면, 상대 당도 다른 대통령이나 대선 후보를 보복 기소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될 수 있어, 이를 막기 위해 대통령 기소를 피해왔다는 것이다. 스캔들로 얼룩진 대통령들도 이런 관행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추문과 이를 덮기 위한 위증으로 탄핵 위기에 몰렸지만, 이 문제로 기소되지는 않았다. 클린턴은 아칸소 주지사 시절 부인 힐러리의 친구인 부동산 개발업자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비리를 저질렀다는 혐의로 특검 수사를 받았고, 이 과정에서 르윈스키 스캔들이 불거졌다. 특검은 클린턴이 성추문을 덮기 위해 위증을 하고 법 집행을 방해했다고 결론 내렸다. 이는 미 연방하원의 탄핵 소추로 이어졌지만, 연방상원에서 탄핵안이 부결됐다.
일명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임기 도중 사임한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도 이 문제로 기소되지는 않았다. 공화당 소속이었던 닉슨은 자신의 재선을 위해 1972년 6월 워싱턴DC의 워터게이트 빌딩 내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 사무실에 중앙정보국(CIA) 요원 등을 보내 도청 장치를 설치하려다가 발각됐다. 닉슨은 이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애썼지만 연방수사국(FBI)의 수사를 방해할 계획을 세우는 음성이 담긴 테이프가 1974년 8월 공개되면서 사임했다. 당시 닉슨에 대한 미국 내 여론은 최악이었지만, 닉슨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내다가 후임 대통령이 된 제럴드 포드가 닉슨에 대한 특별사면을 결정하면서 형사 소추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뉴욕타임스는 이날 “이번 기소가 국내외에서 전직 대통령이 후임자에 의해 투옥되는 개발도상국들의 ‘승자의 정의’처럼 여겨질까”라며 우려했다. 작년 8월 악시오스가 전직 정상을 기소한 국가들을 분석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아프리카나 중남미의 개발도상국이 많은 편이기는 하다. 선진국 중에는 프랑스에서 자크 시라크,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을 부패 혐의로 기소해 집행유예를 선고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