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업에서 50대 중반 이상 시니어(senior·중장년층) 직원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과 USA투데이, 포브스 등이 보도했다. 기업들이 만성적 구인난과 젊은 세대의 변화된 직업 정신 등에 대응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의 시니어들은 기술·트렌드 변화에는 조금 느려도, 조직 문화에 익숙하고 성실하며 대면 소통에 능하다는 점이 각광받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 10~20대 젊은이의 일자리로 여겨졌던 패스트푸드점 등 식당과 유통·물류업계부터 어린이·노인 돌봄 서비스, 법률 회사, 회계 등 전문직 분야까지 시니어 직원 채용에 적극 나서고 있다. 미 은퇴자협회에 따르면 ‘50세 이상 직원에게 공정한 채용 기회를 주겠다’는 서약에 참여한 회사는 지난해 뱅크오브아메리카와 마이크로소프트 등 대기업을 포함해 2500여 곳으로, 전년도인 2021년에 비해 122%나 증가했다.
현재 미국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65~74세 연령군은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 비해 각 주별로 5~10%씩 증가했다. 다른 모든 연령군의 경제활동률이 감소하거나 정체 상태인 것과 대조된다. 미 인구통계국과 노동부는 65세 이상 노동 인구가 2020년 1060만명에서 2024년 1300만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추산한다. 당분간 고령자들이 일자리 구하기에 나서면서 기업 수요를 충족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에선 팬데믹 이후 일에 대한 가치관이 급변, 서비스·제조업 등 전 분야에서 일할 사람이 급감해 극심한 구인난을 초래했다. 노동자 우위 시장이 되면서 10~30대 MZ세대 사이에선 ‘돈 받은 만큼만 일하고, 조직에 몸담되 개인적 시간을 최대한 확보한다’는 ‘조용한 사직(Great Resignation)’ 바람이 일었다. 기업들은 “젊은 직원들의 잦은 퇴사와 이직, 근무 태만으로 생산성이 떨어지고 비용이 증가했다”고 호소했다.
반면 중장년층 직원들은 다른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5일 뉴욕의 한 미용실 원장은 “지난 30년간 미용 보조 인력으로 20~30대만 써왔는데, 몇 달을 못 가 힘들다고 그만두곤 해 너무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나와 비슷한 50대 직원을 채용해봤더니, 배우는 것은 조금 느리다 싶지만 손님들한테 친절하고 끈기 있어 계속 같이 일할 생각”이라고 했다. 펜실베이니아의 한 물류 업체 대표는 WSJ에 “10~20대는 툭하면 늦거나 결근하고, 고객과 대화하는 대신 스마트폰만 들여다본다”고 했다. “같은 시급을 받는 60~70대는 9시 출근이면 8시 50분까지 오고, 맡은 일을 끝내야 퇴근하더라. 이것이 그들 세대의 직업 윤리”라고도 했다.
요양원과 가정 방문 요양 서비스 업체에선 팬데믹 이후 젊은 직원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러자 60~70대 노인이 70~90대 노인을 돌보는 풍경이 대세가 됐다. 이들 업체에서는 “젊은 직원들은 다른 곳에서 시급을 단돈 5달러만 더 줘도 옮겨간다. 그러나 시니어들은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연령이 높아지면 남을 돌보는 유대 의식과 책임감도 커진다는 뜻이다. 유아 보육 업계에서도 젊은 여성 보육 교사들이 대거 떠나자, 대안으로 은퇴했던 할머니 선생님들을 채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대면 서비스직 등에선 시니어 직원 채용을 늘렸을 때 ‘인종·성차별만큼이나 나쁜 나이 차별(ageism·노인을 꺼리는 시선)을 배격한다’ ‘다양성과 평등을 추구한다’는 공정한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다는 판단도 한다. 또 침체 위기 속에서 빅테크와 월가, 제조 업계에서 인력 구조조정 바람이 불면서, 열심히 일하는 소수의 직원을 택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과거 ‘다이내믹하고 활력 있는’ 같은 형용사가 지배했던 채용 공고는 ‘성숙하고 책임감 있는’으로 옮겨가고 있다.
노년층 입장에서도 최근 구직에 나설 동기가 충분하다는 분석이다. 미 베이비붐 세대는 올해 59~77세로, 상당수가 ‘사회가 여전히 나를 필요로 하고 있으며 처지가 비슷한 이들이 많다’는 느낌을 갖는다고 한다. 65~74세 노동 참가율은 1985년 10%에 그쳤으나 현재 26.6%로, 4명 중 1명은 직업을 갖고 있다. 포브스는 “인플레이션이 계속되고, 통화 긴축으로 채권·주식 등 자본소득 수익률이 떨어지면서 파트타임 등으로라도 용돈을 직접 벌겠다는 이들이 많아졌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