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연합뉴스

미국 수사 당국이 블록체인 추적 기술의 발달을 이용해 “비트코인의 익명성을 깨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2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가상 화폐 거래 내역이 온라인 원장에 영원히 기록·공개되는 블록체인의 특성이 범죄자들을 장기간에 걸쳐 추적해 체포한 뒤 범죄 수익을 몰수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미 국세청(IRS)에 따르면 미국 정부가 지난 2년간 범죄자들을 추적해 기소한 뒤 몰수한 가상 화폐 가치만 100억달러(약 13조원)가 넘었다.

이런 사례로 WSJ는 특정 프로그램을 사용해야만 접속할 수 있는 비밀 웹사이트(다크웹)상의 비트코인 암시장 ‘실크로드’에서 소프트웨어 버그를 악용해 비트코인 5만 개를 훔쳤다가, 9년 후 수사 당국에 체포된 제임스 종(33)의 사례를 들었다. 종은 조지아대 컴퓨터공학부 학생이던 2013년 실크로드에서 자신이 예치해 뒀던 비트코인을 인출하다가 우연히 ‘인출’ 버튼을 더블 클릭하면 예치한 금액의 두 배가 인출되는 것을 발견했다. 이를 악용해 5만 개의 비트코인을 탈취한 그는 이를 여러 계좌로 보내 세탁했다. 이후 비트코인 가격이 오르면서 범행 당시 60만달러(약 7억8000만원) 상당이었던 비트코인 5만 개의 가치는 2021년 말 34억달러(약 4조4000억원)라는 천문학적 액수가 됐다. 종은 호숫가의 집, 람보르기니와 테슬라 차량을 구입하며 호화로운 생활을 했다.

하지만 그사이 블록체인 추적 기업인 ‘체이널리시스’ 등은 블록체인의 온라인 원장에 기록·공개된 거래 내역을 분석해 탈취된 비트코인의 행방을 추적하고 있었다. 체이널리시스 등의 분석 내용을 넘겨 받아 수사를 계속하던 연방수사국(FBI)과 미 국세청(IRS)은 종의 IP주소(인터넷 주소)를 확보해 신원을 확인했다. 2021년 11월 수색영장을 가진 FBI 요원들이 종의 집에 들이닥쳐 비트코인과 카사시우스 코인(실물 비트코인), 현금 등 범죄 수익을 환수했다. 금융사기 혐의로 기소된 종은 유죄를 인정하고 현재 형량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미 수사 당국은 북한 정권과 연계된 해커 집단 ‘라자루스 그룹’이 해킹을 통해 얻은 가상 화폐도 비슷한 방법으로 추적해 범죄 수익을 환수하고 있다. 매슈 프라이스 전 IRS 조사관은 WSJ에 “(비트코인 탈취범은) 눈 속에서 은행을 턴 강도와 같다”며 “범인의 이름을 모르더라도 눈 위에 찍힌 발자국처럼 당국이 추적할 디지털 흔적들은 남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