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끝났을 때 10살이었던 어머니는 미군들이 주는 음식 덕분에 배를 곯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70년 뒤 아들이 미 육군 보급을 담당하는 자리에 와 있으니 세상은 돌고 도는 것(life is a circle) 같습니다.”
미 육군 현역 장성 중 유일한 한국계인 마이클 시글(50) 준장은 17일(현지 시각) 미 버지니아주 국방부 청사(펜타곤)에서 가진 본지 인터뷰에서 “미국인임이 자랑스럽지만 한국계로서의 유산(heritage)을 숨기려고 하거나 부끄러워한 적은 없다”며 “‘한국인’이라는 역사적 유산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작년 10월 조 바이든 대통령의 지명과, 연방 상원 인준을 거쳐 장성이 된 그의 공식 직함은 병참감(Quartermaster General). 미 육군 군수·병참 체계를 개선하고 군내 교육을 총괄하는 직책이다. 이달 말 윤석열 대통령의 국빈 방미 기간 오찬 행사에 초대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시글 준장은 1973년 경기도 구리에서 태어났다. 그가 부모라고 부르는 이들은 사실은 이모부와 이모다. 독일계 미국인으로 한국 정유 공장에서 일하던 이모부와 한국인인 이모가 결혼 뒤 그를 입양해 미국으로 데리고 갔다. 그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잊지 않기 위해 한국 이름(부연)을 미국 중간 이름으로 쓴다.
그는 “19년 전 어머니를 암으로 잃은 한참 뒤인 몇 년 전에야 어머니가 사실은 내 이모라는 걸 알았다”고 했다. 그는 “전후(戰後)엔 이런 일이 많았다고 들었다.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간 이런 이야기(입양)를 할 이유가 없었다”며 “나를 화목한 가정에서 키워주신 분들(이모부·이모)이 나에겐 ‘진짜 부모’”라고 했다.
그는 해외 근무가 잦았던 아버지를 따라 싱가포르와 태국을 오가며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고, 스탠퍼드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 비싼 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학군후보생(ROTC)에 등록했고, 그 인연으로 군인이 돼 별까지 달았다. 그는 “군인이 된 건 어머니 때문이기도 하다”며 “(6·25 전쟁을 겪은) 어머니에게 미국과 미군은 평생 감사의 대상이었다. 어머니의 기억과 추억을 기리고 싶었다”고 했다.
시글 준장은 한국에서 3번 근무하며 육군 제2보병사단, 296여단 지원대대, 제403야전지원여단 등을 거쳤고, 한국·일본 등 동아시아 주요 지역의 병참 전략 수립 등에 관여했다.
목숨을 잃을 뻔한 순간도 있었다. 그는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한국 근무 당시인 1999년 경기 양주군 헬기 추락 사고를 ‘인생의 결정적 순간’이라고 적어놨다. 당시 사고 상황을 물었더니, 눈을 감았다 뜬 뒤 이야기를 시작했다. “헬기가 착륙하려다 ‘브라운아웃’(brownout·헬기가 이착륙시 일어나는 모래 먼지로 시야가 가리게 되는 상황) 때문에 추락했다. 나는 창문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용산 121후송병원으로 후송된 뒤 깨어나 보니 크게 다치지는 않았더라. 그러나 조종사 2명은 안타깝게도 순직했다.” 그는 “내 몸, 내 운명을 내가 마음대로 못한다는 것을 이 사고로 깨달았다”며 “그 결과 더 겸손해졌고 가족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더 많이 하게 됐다”고 했다.
시글 준장은 “올해는 한·미 동맹 70주년이지만, 양국의 관계는 그보다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간다”고 강조하면서 미국에서 학·석·박사를 받은 뒤 한국의 발전을 위해 노력한 이승만 전 대통령, 역시 미국에서 유학한 독립운동가 김규식, 1885년 한국으로 건너와 연세대 설립에 큰 역할을 한 미국인 호러스 언더우드를 사례로 들었다. 그는 “한국인과 미국인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함께 희생해왔다.지금도 한·미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정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며 “역사는 한·미 동맹이 왜 그토록 강력한지,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때 얼마나 더 강력하게 성장할 수 있는지를 말해준다”고 했다.
그는 ‘한국엔 여전히 북의 남침을 부정하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질문엔 “역사를 보면 1950년 6월 북한이 남한을 침공했고 미국과 전 세계 국가들이 한국의 독립을 돕기 위해 힘을 합쳤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반박 불가능한 역사적 사실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시글 준장은 “나 이전에도 육군에서 존 조 전 육군 의무감실 준장, 리처드 김 전 아프간 주둔 합동사령부 임무 지원 사령관(준장) 등 한국계 장군들이 계셨다”며 “육군에서 한국계 미국인을 대표한다는 책임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진다. 매우 조심스럽게 받아들이고 있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겸손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미 육군에는 뛰어난 한국계 미국인들이 많이 복무하고 있다. 그들과 함께 복무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얼마 전 그의 아들은 대학 입시를 치렀다. 미 아이비리그(동부 명문대)에 속한 예일, 브라운대 등에 잇따라 합격했다. 시글 장군은 “아들은 나보다 한국말을 더 잘하고 자신의 뿌리에도 관심이 깊다”며 “아들이 군에도 관심을 보이더라. 선택은 아들이 할 것이다. 나는 응원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