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미국 대선 때 투ㆍ개표기 시스템을 통한 선거 조작을 보도했던 폭스 뉴스가 해당 투ㆍ개표기 회사인 도미니언(Dominion) 보팅 시스템과 우리 돈으로 1조 원이 넘는 배상에 합의하면서, 떼돈을 벌게 된 회사가 있다.

로이터 통신과 CBS 방송, 월스트리트저널 등 미 언론은 2018년에 도미니언 지분의 78%를 3800만 달러(현재 원화 가치 약 505억 원)에 사들인 미국 뉴욕시의 소규모 사모 펀드사인 ‘스테이플(Staple) 스트리트 캐피탈’이 7억8750만 달러(약 1조471억원)에 달하는 이번 합의로, 애초 도미니언 투자금의 약 18배가 되는 ‘수익’을 거두게 됐다고 보도했다.

18일 도미니언 CEO인 존 풀로스(왼쪽에서 두번째)와 변호사들이 폭스 뉴스와의 명예훼손 소송에서 7억8750만 달러의 배상금에 합의한 뒤 델라웨어주 윌밍턴에 있는 주 대법원 청사를 웃으며 걸어나오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스테이플 스트리트는 칼라일 사모펀드에서 처음 만나 친구가 된 후탄 야후브자데와 스티븐 D 코인 두 사람이 2010년에 공동 창업했다. 회사 이름은 두 사람이 자주 커피를 마시던 뉴욕시 맨해튼 남쪽의 트라이베카에 있는 한 짧은 거리 이름에서 땄다고 한다.

스테이플 측은 2017년 한 투자은행 경매에서 도미니언에 대해서 알게 됐다. 이후 도미니언의 CEO인 존 풀러스와 식사하면서, 회사의 비전을 듣고 투자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 2개 사모 펀드를 동원해 지분의 76%를 매입했다. 도미니언 제품은 하드웨어ㆍ소프트웨어를 모두 포함하며, 투표용지를 수집ㆍ스캔ㆍ집계ㆍ검표하는 일련의 과정을 수행한다. ‘스테이플’ 측은 신규 기업의 진입이 어렵고, 경기 영향을 받지 않는 이 투개표 기기 시장에서 35%를 점유하는 도미니언에 투자 가치를 느꼈다고 한다.

그러나 2020년 11월8일 미국 대선 이틀 뒤, 트럼프 측 변호사인 시드니 파월이 폭스 뉴스에 나와 “도미니언의 투ㆍ개표 소프트웨어가 부정 선거를 가능하게 했다”고 말하면서, 세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공동창업자 야후브자데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이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고, 이후 회사는 완전히 위기 모드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WSJ가 속한 신문ㆍ출판 그룹 뉴스코프와 폭스 뉴스는 모두 영ㆍ미ㆍ호주의 언론 황제인 루퍼드 머독 회장이 이끈다.

◇애초 16억 달러 배상 요구

도미니언이 이번 소송에서 폭스 측에 요구한 배상금은 16억 달러였다. 폭스 측은 합의 이전까지는 도미니언의 올해 예상 매출액이 7080만 달러(약 940억 원)인 것을 들어 “금전적인 횡재를 얻으려는 정치적 십자군 전쟁”이라며 “과도한 액수이고, 도미니언 사업은 폭스의 보도 내용으로 영향 받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이번 소송의 진정한 비용은 미 수정헌법 1조(표현의 자유) 침해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폭스 측은 합의 이후엔 “결과에 만족한다”고 밝혔다. ◇100만 달러 웃돌 변호사 비용 제외하고 지분대로 나눌 듯

7억8750만 달러의 배상금은 법률 비용ㆍ세금 등을 제외하고 스테이플 스트리트를 비롯한 도미니언 주주들끼리 나눈다. 스테이플 측은 자사가 얼마나 받을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CBS 방송은 월가 변호사들의 말을 빌어, “도미니언 측이 최대 10명의 변호사를 고용했을 것이고 도미니언이 다른 매체들에게도 소송을 제기했으므로, 이번 소송의 법적 비용은 100만 달러(약 13억2800만 원)를 웃도는 정도일 것”으로 보도했다.

스테이플의 공동 설립자 야후브자데는 “소송을 제기한 목적은 진실의 추구였다”며 “도미니언이 이런 중요한 목적을 성취하는데 우리가 역할을 담당하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말했다.

스테이플은 이번 합의가 아니더라도, 도미니언 투자로 상당한 수익을 거뒀다. 스테이플이 2018년 도미니언에 투자할 때의 기업 가치는 8000만 달러 정도였지만, 지금 도미니언의 가치는 2억2600만 달러로 거의 3배가 됐다.

◇도미니언, 아직도 44억 달러 배상 요구 소송 남아

한편 도미니언은 폭스 외에도, 트럼프 지지자들이 ‘대체 진실’이라며 추종했던 뉴스맥스, 원아메리카뉴스(OAN) 네트워크 등의 매체들을 상대로도 각각 16억 달러의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또 미네소타주의 베개 제조사인 마이필로우(My Pillow)의 CEO 마이크 린델을 비롯한 트럼프 지지세력을 상대로도 13억 달러짜리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린델 등은 도미니언 기기가 선거 조작에 동원됐다고 주장했었다.

도미니언 측 변호사인 스티븐 섀클포드는 폭스와의 합의가 끝난 뒤에 “금전적 배상은 책임을 진다는 것이고, 우리는 오늘 폭스로부터 이를 받아냈다”며 “아직 끝나지 않았다. 책임을 져야 할 다른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