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전 세계 언론사 가운데 온라인 방문자 수 1위를 기록했던 미국 ‘버즈피드(BuzzFeed)’가 뉴스 부문을 론칭한 지 12년 만에 이를 폐업하고 남은 사업들에 집중하기로 했다. 미국 언론들은 버즈피드 뉴스 부문의 몰락 원인으로 ①'낚시 제목’과 ‘숏폼(짧은 동영상)’ 등 시류에 편승한 콘텐츠의 한계 ②뉴스 유통 경로로서 소셜미디어(SNS)에 대한 지나친 의존 ③섣부른 상장에 따른 과도한 단기 수익 추구와 핵심 인력 유출 등을 꼽았다.
버즈피드사(社) 최고 경영자 조나 페레티는 20일(현지 시각) “SNS에 기반한 뉴스 플랫폼으로는 충분한 이익을 얻을 수 없다”며 이런 방침을 밝혔다. 뉴스 부문 60명을 포함, 전체 인력 1200명 중 15%에 해당하는 180명을 해고한다는 계획이다. 이미 사업이 난항을 보여 지난 수년간 반복해서 수백 명을 해고한 바 있다. 다만 버즈피드사가 2020년 인수한 유사한 성격의 인터넷 매체 ‘허핑턴포스트’를 통한 뉴스 공급은 계속되며, 엔터테인먼트 등 나머지 사업들도 이어진다.
버즈피드사는 페레티 CEO가 2006년 설립했다. 처음엔 인터넷 사이트에서 흥미를 끄는 이야깃거리를 긁어모아 게시하는 ‘웹 큐레이팅’으로 출발했다. 여기에 2011년부터 전통 언론사인 폴리티코 출신 벤 스미스를 편집장으로 영입하면서 뉴스 서비스를 본격 시작했다. 한때 사이트 방문자 기준으로 뉴욕타임스(NYT)도 앞섰다. 2014년 NYT가 ‘혁신 보고서’를 내면서 가장 강력한 경쟁 업체로 버즈피드를 언급할 정도였다.
버즈피드는 콘텐츠 재가공과 유통의 귀재로 통했다. ‘이 드레스는 황금색일까요 검은색일까요’ 같은 퀴즈식 뉴스를 비롯해, ‘끔찍한 음식 14가지’처럼 흥미성 정보를 나열한 ‘목록형 기사’ 방식을 처음 도입했다. 수익 모델로는 자체 웹사이트보다, 페이스북 등 SNS에 낚시성 제목을 단 기사를 뿌리고 나서 ‘좋아요’ 버튼과 공유가 많아지면 그로부터 광고 수익을 얻는 형태였다. 거의 모든 전통 매체가 이를 롤모델로 따라 했고, 버즈피드 출신 기자들은 NYT와 AP·블룸버그 등에 특채됐다.
급성장하는 과정에서 벤처캐피털(VC)을 대거 유치했고, 2021년에는 나스닥에 상장(IPO, 기업공개)도 했다. 정치, 사회 뉴스와 탐사보도 부문을 보강하면서, 2021년 중국 신장 위구르의 비밀 수용소와 인권 탄압을 심층 보도해 국제 보도 부문 퓰리처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1~2년 전부터 뉴스 부문의 수익 모델이 휘청이기 시작했다. 페이스북 등 SNS 회사들이 수시로 뉴스 유통의 알고리즘을 바꿨고, 이로 인해 버즈피드가 아닌 SNS 측이 수익을 더 많이 가져갔다. 그마저 틱톡, 인스타그램 등 새로 뜨는 SNS들이 잠식했다. 경기 침체 때마다 기업들은 온라인 광고부터 줄였다.
최근 인터넷 뉴스를 소비하는 독자들 수준이 향상된 것도 버즈피드의 발목을 잡았다. 한 미국 언론계 관계자는 “독자들은 이제 더 이상 ‘낚시 제목’에 끌리지 않으며, 언론을 통해 진짜 세상을 보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사내 갈등도 끊이지 않았다. 버즈피드 경영진은 ‘수익을 극대화하라’는 벤처 투자자와 주주들의 압박을 끊임없이 받았고, 대량 해고가 반복됐다. 2020년엔 스미스 편집장도 회사를 떠났다. 버즈피드 전직 기자들은 20일(현지 시각) LA타임스에 “기업공개는 언론사에 재앙이었다. 편집국을 도륙했고 저널리즘은 망가졌다”고 했다. 한때 16억달러(약 2조1000억원)에 달했던 버즈피드 시가총액은 현재 1억달러(1300억원)를 밑돌고, 10달러(1만3000원)가 넘던 주가는 2년 만에 75센트(1000원)로 추락했다.
반면 신문에서 출발한 NYT의 경우 베테랑 기자들이 만든 뉴스를 홈페이지와 스마트폰 앱으로 내보내는 모델로 사상 최대 수익을 내고 있다. 작년 4분기 NYT의 온라인 매출은 2억6900만달러(약 3500억원)로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31% 증가했다. 작년 12월 NYT 전체 구독자는 955만명으로, 이 중 온라인 구독자가 880만명(92%)이다.
디지털 미디어 업계의 한파는 더 이어질 전망이다. 이날 또다른 인터넷 매체 인사이더(Insider)도 인력 중 10%를 해고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앞서 지난 1월에는 인터넷 매체 ‘복스(Vox)’가 전체 인력 가운데 7%에 대한 해고에 나섰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숏폼 뉴스’를 주로 생산해 온 ‘바이스 월드 뉴스(VICE World News)’가 다음 폐업 순서가 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