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내 삶은 매우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최상위 행복 부자’들은 주로 은퇴한 노년층으로 운동을 즐기며, 결혼·종교·공동체 같은 전통적 가치를 중시하는 공통점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시카고대 전국여론조사센터(NORC)가 지난달 1~13일 미국인 1019명을 조사해 24일 발표한 결과 60세 이상 연령층에서 ‘매우 행복하다’는 답변이 18~29세에 비해 1.8배로 많아 전 연령대 가운데 가장 높았다. 전체 응답자 중 ‘매우 행복하다’는 답은 12%에 불과했는데, 이 가운데 무려 44%가 60세 이상이었다.
이어 30~44세가 18~29세에 비해 매우 행복한 사람이 1.4배로 많았다. 반면 45~59세의 경우, 매우 행복하다는 답이 18~29세의 절반가량에 그쳐 가장 낮았다. 행복학 연구의 석학인 로버트 월딩어 하버드 의대 교수는 “나이가 들어 죽음이 다가올수록 사람들은 우울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여생의 질, 웰빙에 집중하며 행복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아진다”고 말했다.
성별로는 매우 행복하다는 여성이 남성보다 1.8배로 많았다. 여성의 꾸준한 사회 생활과 가정 내 교류 등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행복한 이들은 전통적 가치를 중시했다. 매우 행복한 이들 중 67%가 결혼을, 68%가 신(神)에 대한 믿음을 각각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고 답했다. 반면 행복하지 않은 이들 중 결혼 중시는 37%, 신앙 중시는 42%에 그쳤다. 공동체 활동을 중시한다는 답도 매우 행복한 집단(40%)이 행복하지 않은 집단(21%)의 거의 2배였다. 매우 행복한 이들 중에서 결혼이나 종교 여부와 무관하게 “이혼 후 혼자 살지만 친한 친구가 가까이 산다”거나, “종교는 없지만 영적인 경험에서 감동 느끼는 것을 좋아한다”는 답도 있었다.
또 행복한 이들은 ‘운동’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활발한 신체 활동과 교류가 외로움을 극복하게 해준다는 분석이다. 이들은 대체로 자신의 재무 상태에 만족했지만, 행복한 사람일수록 ‘삶의 가치를 돈에 둔다’는 답변은 오히려 매우 낮았다. 한 76세 응답자는 인터뷰에서 “적은 연금과 정부 지원으로 근근이 먹고살지만 충분하다”고 했다. 정치 성향도 행복과는 무관했다. 그보다 행복한 이들은 내면의 행복감을 스스로 느끼는 습관을 천성으로 가졌거나, 의식적으로 훈련했다고 한다. 이들은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꾸준히 할 일을 찾는다” “내가 통제 가능한 사안에 대해서만 걱정한다” “나 자신을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불행한 감정을 억누르면 오히려 행복이 낮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미국·캐나다·이스라엘 연구팀이 심리학 저널 ‘이모션(Emotion)’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슬픔·두려움·분노·절망 같은 부정적 감정이 일어날 때 ‘이런 감정을 가지면 안 된다’며 회피하거나 자책하는 사람들은 삶의 만족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정적 감정이 들더라도 가급적 그대로 받아들여 느끼고 흘려보내는 것이 장기적으로 행복을 높이는 방법이란 것이다. 연구를 이끈 에밀리 윌로스 워싱턴대 교수는 뉴욕타임스에 “모든 감정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며 “억누른 감정은 누적돼 향후 비슷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고통의 강도와 빈도를 더 늘리며, 장기적 우울·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