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톱 셰프’에서 매우 권위 있는 몇몇 셰프에게 제가 만든 요리를 비평받아본 적은 있죠. 그런 TV쇼보다는 아마 이번이 훨씬 더 압박이 심했을 것입니다.”
인기 요리 경연 프로그램에서 명성을 얻고, 셰프들의 오스카라 불리는 ‘제임스 비어드’ 상을 네번이나 받은 스타 셰프에게도 심사위원이 영부인쯤 되니 긴장감은 커졌던 모양이다. 26일(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진행된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국빈 만찬에서 ‘게스트 셰프’로 깜짝 활약을 펼친 에드워드 리(51) 셰프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질 바이든 여사에게 자신의 요리를 선보였을 때를 떠올리며 긴장감 넘치는 경험이었다고 회상했다.
이번 만찬을 진두지휘한 바이든 여사는 만찬을 이틀 앞둔 24일 리 셰프를 소개하며 “리 셰프만큼 (미국과 한국) 두 문화의 조화를 잘 표현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라며 “리 셰프의 요리 스타일은 한국인 가족, 뉴욕에서 자란 환경과 켄터키의 영향을 보여준다. 리 셰프는 친숙하면서도 놀라운, 서로 다른 세계가 완벽한 균형을 이루는 퓨전 요리를 만들어낸다”고 설명했다.
실제 리 셰프는 한국과 뉴욕, 미국 남부의 요리를 아우르는 퓨전 요리로 잘 알려진 셰프다. 태어난 곳은 한국이지만 뉴욕에서 자랐고, 현재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곳은 미 남부 켄터키주의 루이빌이다.
한 살 때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간 그가 요리의 세계에 뛰어든 것은 불과 열네 살의 어린 시절이었다. 이때부터 식당에서 일을 시작했다. 이후 뉴욕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출판사에 취직했지만 이내 적성에 맞는 요리를 찾아 요리학교에 다시 들어갔다.
그의 요리학교 생활은 일주일밖에 가지 않았다. 그는 “가만히 듣고 필기하며 배우는 교실 요리가 마음에 안 들었다”며 “무조건 현장으로 들어가 빈 그릇을 치우는 일부터 시작하면서 음식 업계에 다시 발을 들여놓게 됐다”고 했다.
밑바닥부터 요리 수업을 시작한 그는 이탈리아 요리사에게 요리를 배운 후 몇 군데 뉴욕 식당 부엌에서 일했다. 1998년 스물여섯 나이로 맨해튼 다운타운의 망해가는 중국식당 자리에 퓨전 레스토랑 ‘클레이’를 열었다. 한창 잘나가던 이 식당은 9·11 사태 이후 휘청거렸고 급기야 문을 닫고 말았다.
망한 식당을 뒤로하고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다 켄터키 루이빌까지 이른 그는 남부 문화에 빠져들었다. 그제야 리 셰프는 “내 요리의 목소리를 찾았다”고 말할 수 있게 됐다. 루이빌에 정착한 그는 610 매그놀리아라는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스타 셰프 반열에 올랐다. 몇몇 경연 프로그램에 참가자로, 심사위원으로 참가하고 남동부 최고의 셰프로 인정받았다.
리 셰프는 남부의 음식이 한국의 음식과 비슷하다고 얘기했다. 리 셰프는 “큰 식탁, 푸짐한 음식, 반찬, 구이, 바비큐 등 남부인과 한국인의 식사 방식은 비슷하다”며 “향신료, 맛, 기법은 다르지만 철학이 같고 감각이 같다”고 말했다.
이런 배경을 가진 덕에 리 셰프는 한국의 맛을 미국 요리에 녹여내는 것에 탁월한 재주를 보여준다. 불고기나 김치 같은 한국 전통 요리를 미국에 선보이기보다는 고추장, 된장 등 양념을 햄버거 같은 미국의 요리에 녹여내며 독특한 맛을 끌어내는 것이 그의 특기다. 이번 만찬에도 고추장과 식초를 섞은 드레싱을 활용한 애피타이저라든지 ‘된장 캐러멜’을 활용한 디저트가 등장했다. 리 셰프는 “약간의 한국적 풍미나 한국적 향신료를 더하면 여전히 친숙하지만 색다르고 독특해질 것”이라며 “한식과 미국 음식이 합쳐져 독특하고 맛있는 아름다운 하이브리드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뿌리인 한국의 향신료를 주무기로 활동하는 그에게 있어 한국 대통령의 국빈 만찬을 대접할 수 있게 된 것은 매우 기쁜 일이었다. 그는 “(초청 사실을 듣고) 가장 먼저 전화한 사람은 어머니였다”며 “이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나 자신과 어머니에게 매우 자랑스러운 순간”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머니가 어떤 조언을 했느냐는 질문에는 “망치지만 말라”고 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