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어제 ‘아메리칸 파이’를 불러서 만찬장을 뒤집어놓았죠(brought down the house). 오늘 혹시 ‘필’이 온다면, 여기서 공연을 이어가셔도 좋습니다.”
윤 대통령의 27일 미 의회 상·하원 합동연설이 끝난 후 열린 국빈 오찬에 앞서 연단에 선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한 곡 더’를 신청하는 듯한 발언을 하자 오찬장엔 웃음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전일 윤 대통령이 미국 곡 ‘아메리칸 파이’를 불러 만찬장 분위기를 띄웠는데, 블링컨 장관이 이를 이어간 것이다.
지난 24일 미 국빈 방문을 시작한 윤 대통령을 워싱턴DC의 정가(政街)는 끊기지 않는 유머와 여유로 환대했다. 미 정부의 부채 한도 등을 두고 민주당과 공화당의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임에도 동맹국 정상이 방문한 며칠간은 대립을 멈추고 초당적 환영을 아낌 없이 선물했다.
이날 오전 윤 대통령의 상·하원 합동연설장에선 웃음과 갈채가 이어졌다. 상·하원 의원과 보좌관들이 500여 석에 달하는 본회의장 의석을 거의 빈자리 없이 채웠다. 연단 뒤편의 의장석에는 정적인 공화당의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과 민주당 소속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상원의장 겸임)이 나란히 앉았고 때때로 웃으며 대화하는 모습이 잡혔다.
윤 대통령이 연설을 위해 본회의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장내의 모두가 기립해 박수를 보냈다. 복도 쪽에 있던 의원들은 쉴 새 없이 윤 대통령에게 악수를 청했다. 44분의 연설 동안 기립박수가 26번 터졌다. 연설이 끝난 후 윤 대통령을 둘러싼 의원들의 ‘셀카’와 악수, 서명 요청이 이어져 나가는 데만 10분이 넘게 걸렸다. 전날 국빈 만찬에서 중계 카메라에 잡힌 것은 팝송 ‘아메리칸 파이’를 열창하는 윤 대통령의 모습이었지만, 현장에서 이 장면을 완성한 것은 함께 열광하며 박수를 보낸 미국 측 참석자들이었다.
격의 없는 여유는 공식 행사장 밖으로 이어졌다. 공화당 소속인 한국계 영 김 하원 외교위 인도·태평양소위원장은 이날 특파원 간담회에서 윤 대통령과의 ‘화장실 동맹’ 에피소드를 언급했다. 윤 대통령을 연설 전에 미리 만나려다가 일부 여성 의원들이 화장실까지 따라 들어갔다고 한다. 화장실을 공유한 양당 의원들은 “한국전쟁 때 우리(한미)는 어깨를 맞대고(shoulder to shoulder) 싸웠다. 이제 우리는 화장실에서 어깨를 맞대는 사이”라며 즐거워했다고 김 위원장은 전했다.
이날 국무부에서 열린 해리스 부통령 부부 주재의 국빈 오찬에서 해리스 부통령은 자신감 넘치는 미소와 함께 오찬 모두발언을 했다. 그는 “윤 대통령과 나는 검사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라고 말하고 스스로 폭소를 터뜨려 웃음을 유도하더니, “이는 법치·정의·책임 등에 대한 헌신도 공유한다는 뜻”이라고 의미 부여를 했다. 한국 문화에 대한 덕담은 분위기를 더 끌어올렸다. 해리스 부통령은 “BTS가 백악관을 방문했을 때 내 방에 초대하는 기쁨을 누렸고 특히 조카가 아주 열광했다. 고백하건대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남편과 몰아서 보았다(binge-watched)”며 웃었다.
해리스 부통령은 이날 “삼성은 170억 달러(약 22조원) 규모의 반도체 공장을 텍사스에 짓고 있다”라고 말하면서 앞쪽 테이블에 앉아있던 공화당의 마이클 매콜 하원 외무위원장을 향해 손 인사를 보냈다. 참석자들의 박수가 터져 나오자 “매콜 위원장님!”하고 한 번 더 이름을 불렀다. 매콜은 해리스 부통령의 국경 문제 대응을 수시로 공개 비판했고 그를 ‘국경 차르(Czar)’라고 적나라하게 비난하기도 했다. 두 사람 사이에 남은 앙금이 있을 법도 한데, 국빈을 접대하는 자리에서는 이를 드러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