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첫 일정이었던 백악관 환영 행사에선 가슴 뭉클한 공연이 펼쳐졌다. 분홍 한복을 차려입은 한국계 미국인 어린이 40명이 한국어로 ‘아리랑’을, 영어로 뮤지컬 ‘애니’의 ‘투모로’를 불렀다. 애초 공연을 추진했다가 무산됐다고 알려진 한미 거물급 가수 블랙핑크·레이디 가가 등의 빈자리를 채운 이 한인 2~3세들의 공연에 한미 대통령 부부는 물론 백악관 직원들도 눈물을 글썽이며 기뻐했다. 앙코르도 뜨거웠다.
이 어린이 합창단을 이끈 뉴저지 한국학교의 황현주(63) 교장은 지난달 30일(현지 시각) 본지와 만나 “항상 합창단원들에게 ‘언젠가 백악관에서 공연하자’고 말해왔는데, 정말 꿈이 이뤄졌다”며 “미국 사회 소수인 한인으로서 양국 대통령을 만나는 이런 뜻깊은 무대에 선 것이 아이들 평생 자랑스러운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또 “아직 어리지만 양국 문화를 모두 이해하는 이런 아이들이 한미 동맹 70주년을 넘어 평생을 이어주는 가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뉴저지 한국학교는 행사 3주 전인 4월 초에 백악관에서 ‘축하 행사 공연 팀을 선정한다’는 급한 연락을 받고 지원했다. 백악관의 한인 직원들이 이 학교를 소개했다고 알려졌다. 당시 백악관 관계자는 화상 인터뷰에서 황 교장이 ‘아리랑’을 부르겠다고 하자 “왜 아리랑인가” 물었다고 한다. 황 교장은 이렇게 답했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한국의 혼이 담긴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지난달 26일 합창단은 백악관 사우스론에서 관객 7000명 앞에 섰다. 호응이 뜨거웠다. 백악관 측은 합창단에 실내로 자리를 옮겨 양국 정상이 첫 티타임 장소로 이동하는 장소에서 ‘아리랑’을 한 번 더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양국 대통령 부부는 어린이들이 다시 눈앞에 등장하자 크게 놀라워하며 다른 곡도 더 불러달라고 했다. 특히 조 바이든 대통령은 아이들을 포옹하며 연신 “너무 예쁘다”고 했고, 질 바이든 여사는 “나도 선생님이야. 백악관에 한 번 더 와줄래?”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유엔총회 때 뉴욕에 갔을 때 공연해 줬던 아이들”이라며 기억하고 반가워했다.
애초 ‘45초짜리 배경음악’ 정도로 기획된 이 깜짝 실내 공연은 ‘12분 풀타임 공연’으로 늘어났다. 특히 전날 2024년 대선 재출마를 선언한 바이든 캠프 측은 이 장면을 가장 먼저 트위터에 올려 나라 안팎에 알렸다. 바이든 대통령과 한인 어린이들의 만남을 미국의 다양성과 포용, 역동성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으로 골랐다는 해석이 나왔다.
한미 정상의 격려에 가장 고무된 이는 학생들이었다. 이들은 뉴욕·뉴저지 일대 한인 2~3세 어린이들로,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고 한국어를 꼭 해야 한다고 믿는 이민자 부모들이 이 학교에 아이들을 보낸다. 공연 후 아이들은 “노란 머리, 파란 눈 아이들만 ‘미국의 주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그거 부럽지 않아요” “다음엔 서울에 원정 공연 가자”는 말을 하며 기뻐했다고 황 교장은 전했다.
뉴저지 한국학교는 1983년 개교해 올해 설립 40년이 됐다. 이민 1세대의 후손인 어린이·청소년 600여 명이 매 주말 모여 한글과 한국 역사·문화 및 이민사를 배우는, 미국 내 최대 한국학교 중 하나다. 황 교장 자신도 1974년 뉴욕에 이민한 1.5세다. 한인 뿌리 찾기 운동을 열심히 하면서 주중엔 공립학교 교사로 근무하고, 주말엔 한국학교 교사로 봉사해 왔다. 2010년 한국학교 교장을 맡은 이래 학생들에게 동기를 유발할 방법을 찾다 2014년 합창단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는 취미 수준이 아닌, 프로에 가까운 제대로 된 공연을 위해 “비행기 타고 서울 광장시장에 가서 한복·댕기·꽃신을 사 오고, 맨해튼 음악학교를 졸업한 한인 전문가를 지휘자·반주자로 모셨다”고 했다. 이 합창단은 한인 양로원부터 광복절 기념식, 유엔총회, 뉴욕 메츠 야구 경기장에 이르기까지 각종 공연을 한 해 17~18건 소화하며 뉴욕·뉴저지 일대의 ‘어린이 스타’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