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사업가로 성공한 ‘존 빈센트 데이먼’은 두 자녀에게 늘 자상한 아버지였다. 어딘가 외로워 보였고, 언젠가는 딸에게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고 했지만, 끝내 입을 다물었던 아버지였다. 그는 2010년 자신의 비밀을 무덤까지 갖고 가 67세로 숨졌다.

지난 1일 미 연방 보안관(US Marshals Service)은 “호주에서 숨진 데이먼이 사실은 데이먼이 아니고, 65년 전인 1958년 16세 때 자신의 부모를 총으로 쏴 죽이고, 1967년 복역 중이던 네브라스카 주립교도소에서 달아난 탈옥수 윌리엄 레슬리 아널드”라고 발표했다. 아널드는 탈옥한 뒤 두 번 결혼했고,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됐고, 결국 호주로 건너가 성공한 비즈니스맨의 삶을 살았다.

부모를 살해한 혐의로 1959년 종신형을 선고 받았던 당시의 윌리엄 레슬리 아널드./미 법무부 연방보안관 배포

1958년 16세 때 아널드는 여자친구와 드라이브-인 극장에서 영화를 보려고 자동차를 쓰려고 했지만, 여자친구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던 부모는 거절했다. 아널드는 학교에선 비교적 착한 학생이었지만, 늘 부모와 마찰이 있었다. 아널드는 총으로 부모를 살해했고, 집 뒷마당에 두 사람의 시신을 묻고 영화를 보러 갔다. 영화는 당시 인기 있던 공포영화 ‘죽지않는 사람들(The Undead)’였다.

그리고 2주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 집에서 살았고 학교도 다녔다. 교회 예배도 참석했고, 아버지의 가게 문도 열었다. 주변 사람에게는 “부모님이 조부모를 만나러 여행 갔다”고 둘러댔다. 그의 거짓말은 조부모가 아들 부부로 만나러 오면서 들통 났고, 2건의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아널드는 8년 간 교도소의 모든 규칙을 따르는 모범수였고, 음악을 좋아했다. 음악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음악실 창문은 결국 그가 교도소를 빠져나가는 첫번째 탈출구가 됐다. 아널드와 다른 기결수는 가석방돼 나간 다른 기결수와 지역신문의 광고로 연락을 취하면서, 교도관의 눈을 속일 마스크와 장비를 건네받았다. 아널드와 다른 한 명은 1967년 7월14일 탈옥에 성공했다.

1967년 지역 신문에 게재된, 윌리엄 레슬리 아널드가 공범과 함께 탈옥한 뉴스를 전한 AP 통신 기사./오마하 월드 헤럴드

당시 지역 신문은 “이들이 12피트(약 3.65m) 높이의 철조망 펜스를 티셔츠로 감싸서 대담하게 탈옥했다”고 보도했다. 곧바로 경찰과 보안관 인력이 인근 4개 주를 헬리콥터와 비행기로 수색했지만, 이들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1년 뒤에 붙잡힌 공범을 통해서, 경찰은 두 사람이 탈옥한 뒤 네브라스카 주의 최대 도시 오마하로 간 뒤, 거기서 버스로 시카고로 가 헤어졌다는 사실을 추가로 확인했다.

그러나 이후 50여 년 간 아널드의 행방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1990년때까지 아널드 사건을 수사하다가 네브라스카 교도소로 다시 이첩했고, 교도소 측은 미 연방보안관실로 넘겼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계속 담당 수사관들이 자리를 옮기거나 퇴직하면서 전혀 수사에 진전이 없었다.

55년만에 탈옥수 아널드의 행방을 밝혀낸 매튜 웨스토버 미 네브라스카주 연방 부보안관/미 연방보안관

네브라스카주의 미 연방 부(副)보안관이 된 매튜 웨스토버는 2020년 말 전임자로부터 “결코 이 자를 못 잡을 것”이라는 농담과 함께 아널드 사건을 넘겨받았다.

그는 이 사건에 흥미를 가졌다. 2017년 네브라스카 주의 지역신문이 ‘사라진 아널드 미스터리’라는 제목으로 다룬 특집 기사들을 열심히 읽었고, 네티즌 수사대가 만들어낸 온갖 변두리 가설까지도 빠짐없이 읽었다.

그리고 웨스토버에겐 아널드의 범행 당시에는 없었던 DNA 수사 기법이 있었다. 그는 미국에 살아 있는 아널드의 남동생 제임스를 찾아 미주리 주로 가서 DNA를 추출했고, 그의 허락을 받아 DNA 정보로 혈연 관계를 찾아주는 한 데이터베이스 웹사이트에 올렸다. 이 DNA 정보의 소유자이자 연락처는 부보안관 웨스토버로 지정했다. 즉시 여러 문의가 왔지만, 그들은 이미 웨스토버가 수사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던 중 작년 8월9일 새로운 문의가 들어왔다. 문의자는 “시카고 고아원 출신인 아버지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는 DNA 정보를 올린 웨스토버가 아버지의 친척쯤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웨스토버는 이 문의자의 DNA 정보가 범인 아널드의 동생 DNA와 일치하는 정도를 확인하는 순간, 직감적으로 그가 ‘탈옥수 아널드의 아들’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웨스토버는 9일 워싱턴포스트에 “고아(orphan)이란 단어를 보는 순간, ‘드디어 이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아들]이야말로 100% 우리가 만나야 할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웨스토버는 자신이 미 연방 보안관이라는 사실을 공개하기 전에, 문의자의 아버지인 ‘존 데이먼’이 분명히 탈옥수 아널드이고, 또 그가 분명히 사망했는지를 추가로 확인해야 했다. 웨스토버는 CNN 방송에 “아널드가 50년 넘게 경찰을 따돌릴 수 있을 정도로 영리하다면, 그의 죽음과 관련된 모든 사진이 가짜가 아니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웨스토버는 “아널드가 사망했다”는 호주 정부 기관의 공식 통보를 받고, 작년 8월24일 아널드의 아들 부부와 영상 통화를 했다. 그는 자신의 신분을 공개하고, DNA 문의자의 아버지가 “1967년 탈옥한 이래 숨지기 전까지 40여 년간 도주 중이었다”는 사실을 전했다.

부모를 죽인 살인자이고 탈옥수였다는 아버지의 정체를 알게 된 아들의 충격은 컸다.

웨스토버는 아들로부터 아널드가 탈옥 즉시 데이먼으로 이름을 바꿔 행세하며, 시카고에서 네 딸을 둔 싱글맘과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캘리포니아 주에서 재혼해서 지금의 두 아이를 낳았고 1990년대 뉴질랜드를 거쳐서 가족과 함께 호주로 건너온 사실을 추가로 알게 됐다. 아널드는 이후 15년간 세일즈맨으로 성공했고, 두번째 아내와 죽을 때까지 같이 살았다.

호주에서 자상한 아버지 '존 빈센트 데이먼'으로 죽은 묘비석 옆에, 미국 연방 보안관 배지와 부모를 살해한 탈옥수 윌리엄 레슬리 아널드에 대한 수배전단이 나란히 놓였다./미 연방보안관 배포

지난 3월 웨스토버는 호주로 가서 아널드의 아들을 만났다. 퀸즐랜드에 있는 아널드(데이먼)의 묘지로 갔고, ‘존 빈센트 데이먼’이라고 적힌 그의 묘비석에 자신의 보안관 배지와 수배 전단을 나란히 놓았다. 그는 또 아들로부터 공식적인 DNA 샘플도 채취했다. 아널드의 동생 제임스의 DNA와 다시 정밀 대조한 결과, 데이먼은 아널드였다.

아널드의 아들은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서 언론 인터뷰를 거부했다. 그러나 CNN에게 다음과 같은 입장문을 보냈다.

“DNA 테스트 기구엔 ‘알게 되는 사실을 당신이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경고문은 없었지만, 후회하지 않습니다. 이제라도 아버지에 대해 진실을 알게 돼 안도합니다. 그의 인생은 비록 끔찍한 범죄로 시작했지만, 그가 남긴 것은 이보다 훨씬 큽니다. 나는 아버지를 좋은 아버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셨던 분, 내게 음악에 대한 열정을 심어 주신 분, 내가 최선의 사람이 되도록 도우셨던 분으로 기억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