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라도 대통령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니….”
지난 14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맨해튼 5가 트럼프 타워 1층은 사진 찍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로비 한편에 있는 술집 ‘45 와인 앤드 위스키 바(45바)’ 앞에 모인 이들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자다. 오하이오주(州)에서 가족 여행을 왔다는 50대 앨릭스씨는 “트럼프가 부당한 마녀사냥을 당하고 있지만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임에는 틀림없다”며 “그는 내년 백악관에 복귀할 것”이라고 말했다.
‘45바’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탈락한 지 1년 만인 2021년 11월 열렸다. 기존 ‘트럼프 바’를 대통령 테마로 개조해 재개장했다. 술집 소개엔 “45대 대통령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돼 있다. 트럼프 재단 직영 업체로 추정된다. 간판은 미 대통령 문장(紋章)을 본떠 만들었고 ‘45대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라고 새겼다. 그 앞엔 미 군 통수권자였던 트럼프를 상징하는, 미 육해공군과 해병대 깃발이 성조기와 함께 줄줄이 세워져 있다.
음료 가격이 상당히 비싼 이 바를 찾는 사람은 대부분 트럼프 지지자다. 인테리어는 백악관 집무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대통령 기념관처럼 꾸몄다. 붉은 벨벳 소파와 대리석 탁자 등 중후한 가구에 트럼프가 백악관에서 사용했다는 각종 물품과 자료가 유리 벽장에 전시돼 있다. 심지어 ‘극비(Classified)-저녁 브리핑’이라고 표기된 대통령 보고 문서 파일까지 있는데, 백악관에서 무단으로 빼내온 진품일 가능성이 커 논란이 됐다.
바에 들어가자 재임기의 각종 장면을 영웅처럼 포착한 흑백사진 40여 점이 황금 액자에 담겨 벽면을 채우고 있었다. 트럼프가 ‘결단의 책상(미 대통령 책상을 부르는 말)’에 앉아 정면을 응시하는 초대형 사진, 그가 상황실에서 이슬람 테러 집단 IS(이슬람국가) 수괴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 사살 작전을 각료들과 지켜보는 모습, 2019년 판문점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회담하는 장면 등이 걸려있다. 텍사스 출신이라는 30대 남성 존은 “트럼프는 70년 된 한반도 전쟁도 끝냈다”며 “한국 기자라면 그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가 김정은을 만났다고 해서 전쟁이 끝난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존은 이를 굳게 믿는 듯 자신감이 넘쳤다.
메뉴는 상당히 비싸다. 시그니처 메뉴인 ‘Forty-Five(45대 대통령)’는 와이오밍산(産) 위스키 한 잔에 작은 샌드위치 두 쪽, 그리고 트럼프가 좋아하는 다이어트 콜라가 나오는 세트인데 45달러(약 6만원)다. 이 밖에도 ‘웨스트윙’ ‘로즈가든’ 같은 백악관 시설에서 이름을 딴 술, ‘FLOTUS(미 대통령 부인)’이란 화이트 와인 칵테일 등에 25~29달러(약 3만3000~3만9000원)의 가격표를 붙여놨다. 가디언은 “트럼프의 나르시시즘(자기애)을 감상하며 바가지요금을 내야 하는 가게”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본인은 알코올 중독으로 형이 사망한 후 술을 마시지 않는다.
지지자들은 술집 옆 기념품 가게도 들렀다 간다. 트럼프 로고가 박힌 50달러짜리 보온병, 100달러대 골프 우산 등 각종 ‘고급 굿즈(상품)’를 판다. 트럼프 화보집은 75달러인데 친필 서명이 들어간 것은 230달러로 가격이 3배 수준이다. 트럼프 타워 지하상가에선 좀 더 저렴한 모자와 양말, 조 바이든 대통령을 향한 욕설이 담긴 티셔츠 등을 팔며, 트럼프 로고가 박힌 아이스크림도 사 먹을 수 있다. 상점 주인은 “최근 트럼프가 기소된 것에 자극받은 지지자들이 물건을 더 많이 사가고 있는데, 내년 대선을 겨냥한 ‘트럼프 2024′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모자가 부쩍 잘나간다”고 했다.
뉴욕의 트럼프 타워는 트럼프 가족이 플로리다로 이주하기 전까지 살았던 곳이다. 여전히 건물 꼭대기에 그의 펜트하우스가 있어 뉴욕에 올 때마다 머문다. 트럼프가 2015년 황금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며 대선 출마 선언을 한 ‘트럼프 제국’의 심장 같은 곳이며 트럼프 재단의 본부도 이 건물에 있다.
미 역대 대통령들은 퇴임 후 수년 뒤 후대 교육을 위한 기념 도서관이나 기록관을 건립하는 경우가 많다. 트럼프처럼 퇴임 직후 이름값을 활용해 수익을 올리는 영리 사업으로 정치적 현금화를 추구하는 경우는 드물다. 뉴욕타임스는 “전직 대통령들이 회고록이나 강연 등을 통해 돈을 버는 일이 드물지는 않지만 트럼프처럼 적나라하게 대통령 경력을 현금화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통령으로 일할 때처럼, 트럼프의 정치적 야심과 개인 사업 사이의 경계는 모호하다”고 전했다. 트럼프는 이 밖에도 온라인 쇼핑몰에서 ‘MAGA 모자’ 등 기념품을 팔고, 개인 소유의 호텔·리조트·골프장 간판부터 골프 카트, 이불, 컵 하나에까지 대통령 문장을 박아 넣으며 ‘미국 대통령’이란 브랜드를 상품화하고 있다. 대부분 비싼 회비를 내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