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 디샌티스(왼쪽) 주지사가 9일 마이애미의 한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디즈니와 디샌티스의 충돌이 격화하자 미 언론들은 디즈니의 대표 캐릭터 미키 마우스를 의인화해 이 사안을 다루고 있다. /EPA 연합뉴스

미국 공화당의 유력 대선 주자 중 한 명인 론 디샌티스(44) 플로리다 주지사와 세계 최대의 엔터테인먼트 기업 월트 디즈니의 갈등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성소수자(LGBTQ+) 권리와 정치적 올바름(PC) 등 진보와 보수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이념 문제에서 맞붙은 양측 갈등이 내년 미 대선의 중대 변수로 떠오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디즈니는 밥 아이거 현 최고경영자(CEO)가 한때 민주당 소속 대선 후보로 거론됐을 만큼 민주당 분위기가 강한 회사로 알려져있다.

디즈니는 18일(현지 시각) 사내 공지를 통해 약 10억달러(1조3300억원)를 들여 월트 디즈니 월드 리조트가 있는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진행하려던 오피스 단지 건설 계획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디즈니는 2026년까지 오피스 단지를 완공해 캘리포니아 남부에서 이곳으로 테마파크 놀이기구 개발 부서 등의 일자리 약 2000개를 옮겨올 예정이었는데 이를 전면 백지화한 것이다.

디즈니의 이 같은 발표는 디샌티스의 공식 출마가 임박한 상황에서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디샌티스가 오는 25일 마이애미에서 열리는 기부자 모임에 맞춰 같은 날 연방선거관리위원회에 대선 후보 등록을 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대선 출마 공식 선언을 일주일여 앞두고 디샌티스 측에 악재일 수 있는 “지역 일자리 2000개 창출 무산” 뉴스가 디즈니발(發)로 나온 셈이다.

앞서 디즈니와 디샌티스는 디즈니 월드가 있는 리디 크리크 지역에 대한 자치권을 두고 충돌했다. 이 지역에서 일자리를 창출해 지역 경제에 기여하고 있는 디즈니에 대해 주의회에서 56여 년간 부여해온 규제 면제와 면세 등 광범위한 자치권한을 디샌티스가 박탈하려 하자 디즈니는 이를 무력화하기 위한 법·행정 조치로 맞섰다. 지난해 3월 디샌티스가 일선 학교에서의 성적 지향·성 정체성 교육을 금지한 이른바 ‘돈 세이 게이(Don’t Say Gay·게이라고 말하지 말라)법’을 통과시키자 디즈니 직원들이 이를 비난하는 항의 파업을 벌이며 공개적으로 반발한 이래 양측의 갈등은 격화하는 양상이다.

디샌티스가 출마를 공식화하면 작년 11월 이미 출마 선언을 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공화당 경선 레이스도 본격적으로 막을 올리게 된다. 트럼프와 디샌티스는 차기 공화당 대선 후보 선호도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2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 2018년 플로리다 주지사 선거 때까지만 하더라도 디샌티스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같은 트럼프의 캐치 프레이즈를 반복하며 트럼프의 지지를 버팀목으로 선거를 치른 젊은 정치인에 불과했다. 그러나 2020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하면서부터 디샌티스는 서서히 공화당의 유력 차기 주자로 떠올랐다. 2021년 출범한 바이든 행정부와 부딪치며 연방 차원에서 결정된 코로나 방역 규제를 거부하는 디샌티스를 보면서 많은 공화당원들이 그를 ‘대안 후보’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2021년 6월쯤부터 이전까지 트럼프 독주였던 보수 성향 유권자 상대 여론조사에서 디샌티스의 지지율이 더 높거나, 트럼프와 비등한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대선 주자 반열에 들게 된 디샌티스는 공화당원들의 마음을 살 만한 정책을 여럿 추진했다. 지난해 3월 플로리다에서는 ‘돈 세이 게이 법’이 통과된 데 이어, 올해 4월에는 임신 6주가 지나면 원칙적으로 낙태를 금지하는 초강력 낙태 금지법이 통과됐다. 디즈니가 자사 콘텐츠에 성소수자 캐릭터를 적극적으로 등장시키는 등 미국 내 성소수자 권익 향상의 전진 기지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 디샌티스와 디즈니의 충돌은 더욱 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디즈니가 ‘미키 마우스’로 대표되는 미국의 사실상의 국민 기업이자 거대 문화권력이라는 점에서 디샌티스의 ‘싸움’이 예측불허의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캘리포니아(55명)와 텍사스(38명)에 이어 셋째로 많은 대통령 선거인단(29명)을 확보하고 있는 플로리다의 표심은 역대 대선 결과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작용해왔다.

최근 디샌티스의 지지율은 트럼프에게 밀리며 1강 1중 구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지난 3월 말 트럼프가 2016년 대선 과정에서 성인물 여배우에게 성추문 입막음을 위한 돈을 지급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후, 공화당 지지 유권자들이 트럼프에게 재결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로이터통신과 여론조사기관 입소스가 미국 성인 441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지난 16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공화당원들의 디샌티스 지지율은 21%로 트럼프(49%)에 한참 밀렸다.

디샌티스는 이에 따라 자신이 이미 출마를 선언한 바이든 대통령이나 트럼프 전 대통령과는 확연히 다른 ‘젊은 후보’임을 부각시키고 본선 경쟁력을 강조하며 공화당원들의 표심 얻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디샌티스는 18일 오후 공화당 기부자, 지지자들과 가진 전화 콘퍼런스에서 “이 시점에서 믿을 만한 후보는 바이든, 트럼프와 나다. 경합주 데이터들을 보면 그중 당선될 만한 사람은 바이든과 나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