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가 20일(현지 시각) 올랜도의 로젠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플로리다주 가족정책위원회 연례 만찬에 참석하고 있다. 내년 미국 대선에서 유력 공화당 후보 중 한 명으로 거론되는 디샌티스는 동성애, 낙태, 총기 소유 등 현안에서 강경한 정책을 밀어붙이며 지지자들의 환호와 비판자들의 비난을 동시에 받고 있다. /EPA 연합뉴스

2024년 미국 차기 대선에서 유력한 공화당 후보로 거론되는 론 디샌티스(44) 플로리다 주지사의 정책에 반발해 미 최대 흑인 및 라틴계 인권 단체들이 ‘플로리다주 여행 경계령’을 잇따라 발표했다. 동성애 및 낙태, 총기 문제 등에서 강경 입장으로 진보 진영과 연일 대립하고 있는 디샌티스가 이번엔 인종 및 이민 문제로 진보 성향이 강한 흑인·라틴계 등 이른바 유색 유권자들과 정면충돌하는 양상이다.

미 최대 흑인 인권 단체인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는 20일(현지 시각) 성명을 내고 “학교에서 흑인의 역사를 지우려는 공격적인 시도 등에 대응하기 위해 플로리다주에 대한 여행 경보(travel advisory)를 발표한다”고 했다. 디샌티스가 지난 1월 플로리다 공립 고등학교에서 AP(대학과목 선이수제) 과목 중 하나인 ‘미 흑인 역사’를 가르치는 것을 금지한 것에 반발한 것이다.

공화당 대선 주자 경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격돌할 전망인 디샌티스는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극우 성향이면서도 차별화된 전략을 펼친다는 평가를 받으며 유력한 차기 주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트럼프가 거친 백인우월주의나 “국경에 장벽을 세워 이주자를 막자” 같은 과격한 언행으로 러스트벨트(미국의 쇠락한 공업 지대)의 백인 실업자 등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면, 디샌티스는 가족주의와 기독교 기반의 정통 보수층을 겨냥한다. 트럼프보다 더 세련되고 세심한 보수 정책을 설계하고 집행한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트럼프에 버금갈 정도로 강성 보수이면서도 ‘(세련되게) 업그레이드된 버전의 트럼프’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2020년 4월 28일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왼쪽)가 워싱턴 DC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과 만나는 모습. /AFP 연합뉴스

디샌티스가 지지층을 결집한 가장 큰 ‘무기’는 보수적 가치를 위해 싸운다는 ‘문화 전쟁’이다. 예컨대 지난해 3월 발효한 ‘돈 세이 게이(Don’t Say Gay·게이라고 말하지 마세요)’ 법은 초등학생들에게 동성애 등 성 정체성 교육을 금지하는 내용으로, 진보 진영과 날카롭게 맞붙은 사안이다. 이 법에 대해 플로리다의 대표적 친(親)민주당 기업 디즈니가 반발하자 디샌티스는 세제 혜택 등 디즈니의 자치 권한을 박탈하겠다고 밝히며 싸움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주(州) 교육위원회를 보수 성향 위원들로 교체해 좌편향된 교육 현장을 정상화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달엔 주 정부의 별도 허가 없이 총기를 소지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에도 서명했다. 이는 보수 가치를 지난 무당파층과 일부 민주당 지지층까지 끌어들이면서 디샌티스의 경쟁력으로 조명받고 있다. 미 의회 전문 매체 더힐 등은 최근 “트럼프가 2020년 대선 선거 부정 논란과 과거 여성 편력 문제에 계속 집착하는 동안 디샌티스는 ‘문화 전쟁’을 자신의 브랜드로 내세워 보수층이 환호할 만한 행정적 조치를 차근차근히 밟아나가고 있다”고 했다.

한때 무명의 변호사였던 디샌티스는 트럼프의 지지로 2018년 플로리다 주지사에 당선됐다. 이후 총기 규제, 낙태 반대 등에 대해서는 트럼프와 의견을 같이하는 한편 변호사 출신답게 보다 전략적인 정책 집행력으로 승부한다는 평가다. 예를 들어 지난 10일 디샌티스는 불법 이주자를 고용하는 업주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지자체가 불법 이주자에게 운전면허증 등 신분증을 발급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으로 규제가 강화된 이민법에 서명했다. 트럼프식 ‘내쫓기’와 달리, 고용하는 업주 등을 처벌하겠다고 함으로써 간접적 압박을 가한 셈이다.

지난해 11월 8일 실시된 중간선거 유세를 벌이는 도널드 트럼프(왼쪽) 전 대통령과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 /뉴시스

디샌티스는 개인 캐릭터도 트럼프와 전혀 다르다. 플로리다주 잭슨빌 태생으로 예일대와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한 뒤 해군에서 복무했다. 2007년 이라크전에 참전했고 검사 생활을 거쳐 2013년 하원 의원에 당선됐다. 아버지의 부동산 개발업을 물려받은 트럼프와 달리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 자수성가했다.

디샌티스가 트럼프의 대항마로 급부상한 계기는 지난해 12월 플로리다 주지사 재선이다. 공화당과 민주당의 격전지로 꼽히는 플로리다주에서 박빙일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대승을 거두면서 차기 대선 주자로 단숨에 떠올랐다. 디샌티스는 자신이 통계와 법률에 강하고, 실용적인 정책 집행력으로 보수의 가치를 정책으로 구현했다고 내세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디샌티스는 트럼프보다 드라마틱하진 않지만 더 영리하다. 트럼프와는 달리 절제된 언행도 디샌티스의 장점”이라고 분석했다. 여성 편력이 심한 트럼프와 대조적으로 가정적이고 자상해, 트럼프의 개인사에 거부감을 느끼는 플로리다주 등의 우아하고 부유한 보수층까지 끌어들일 잠재력이 있다는 평가다.

디샌티스는 오는 25일로 예상되는 대선 출마 선언 이후엔 자신이 트럼프와 비교해 ‘젊으면서도 안정적인 공화당 후보’라는 점을 강조할 것이란 분석이다. 디샌티스는 지난 13일 ‘대선 풍향계’로 불리는 경합주 아이오와주를 방문해 “통치(governing)란 오락이 아니다. 소셜미디어와 대화하는 것이 정치의 전부는 아니다”라며 트럼프를 공격했다. ‘우파 진영의 투사’로 나선 디샌티스가 이념 문제에 있어서 수위를 계속 높이면서 내년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와 각을 세우는 한편, 좌파 진영과도 갈등이 더욱 격화될 전망이다.

정계 진출 초기 ‘작은 트럼프’라고 불렸던 디샌티스인 만큼, 코로나 당시 플로리다주에 도입했던 비과학적 방역 등은 여전히 논란으로 남아 있다. 플로리다는 코로나 당시 봉쇄 위주의 방역 정책을 펼쳤던 뉴욕주 등과는 대조적으로 마스크 착용 해제 등 방역 규제를 파격적으로 완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