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조종사들이 미군의 4세대 F-16 전투기 조종 훈련을 받도록 승인했다고 백악관이 20일 밝혔다. 우크라이나가 전쟁 초기부터 서방에 요청해 온 F-16 전투기 지원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그동안 전투기 지원이 러시아를 자극해 확전으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우려로 F-16 지원을 거부해 왔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군의 전력이 소진되고 전황이 불리해질 조짐을 보이자 지원을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방향으로 돌아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서방이 여전히 확전 시나리오를 고수하고 있다. 그들 자신에게 막대한 위험이 뒤따르는 일”(알렉산드르 그루슈코 러시아 외무 차관)이라고 즉각 비난했다.

/그래픽=김하경

바이든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이날 전화 브리핑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일본에서 만난) G7 정상들에게 ‘우크라이나 조종사들이 F-16을 포함한 4세대 전투기 훈련을 받도록 하는 공동 노력을 미국이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AP는 “지난 3월 미 국방부가 우크라이나 공군 전투기 조종사 두 명을 애리조나주(州) 투손의 모리스 공군기지로 불러 F-16 시뮬레이터(모의 훈련기) 탑승 등을 체험시켰다”고 전했다. 바이든은 21일 G7 정상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서방이 제공한 F-16을 러시아 영토에 투입하지 않겠다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확고한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F-16이 우크라이나의 자국 영토 방어용이지, 러시아 영토 공격용이 아니라고 명확히 한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우크라이나의 숙원이던 F-16 투입이 이뤄질 가능성이 커지자 F-16이 교착 상태인 전황을 바꿀 ‘게임 체인저(판을 뒤집을 변수)’가 될지 주목되고 있다. F-16의 특장점은 공대공 전투와 공대지 공격이 모두 가능한 다목적 전투기라는 것이다. 폭격으로 우크라이나 영토를 초토화하고 있는 러시아의 전투기나 미사일을 요격해 대공 방어를 강화하면서, 우크라이나군의 지상 작전을 공중에서 지원할 수도 있다. 영국 가디언은 “우크라이나는 F-16 전투기 편대 지원이 (전쟁의) 돌파구를 여는 데 쓰이거나, 최소한 러시아의 주요 공격을 무디게 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희망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어느 나라가 몇 대의 F-16 전투기를 지원할지 등은 아직 불투명하다. 아울러 조종사 훈련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최근 거론돼 온 우크라이나의 ‘봄철 대공세’에 F-16이 동원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미그·수호이 같은 구(舊)소련 전투기의 비행 훈련을 받은 조종사가 F-16 전투기를 조종하려면 4개월 정도 훈련이 필요하다고 한다.

F-16의 성능은 대부분의 구소련제 전투기를 압도한다. ‘팰컨(Falcon·매)’이란 별명을 가진 F-16 전투기는 마하 2(음속의 2배 수준)까지 속력을 낼 수 있는 초음속 전투기이면서, 레이더와 센서 성능도 우수해 기존의 우크라이나 전투기로는 탐지할 수 없는 미사일이나 드론도 요격할 수 있다. 1970년대에 처음 개발돼 최신예 5세대 전투기인 F-22나 F-35보다는 성능이 떨어지지만, 그만큼 가격이 싸고 보급이 많이 돼 있어 현실적으로 우크라이나 지원엔 가장 적합한 기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제조사인 록히드마틴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25국에 3000대 이상의 F-16이 배치돼 있다. 우크라이나에 지원될 경우 미국이 아닌 영국·네덜란드 등 다른 유럽 국가가 F-16을 지원할 가능성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