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갑부 중 하나인 빌 게이츠(68) 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창업자가 아동 성범죄자이자 금융인이었던 헤지펀드 매니저 제프리 엡스타인에게 불륜 사실을 들켜 ‘나와 동업하지 않으면 불륜 사실을 공개하겠다’는 협박까지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엡스타인은 감옥에 수감 중이던 2019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게이츠가 2010년쯤 20대였던 러시아 여성 밀라 안토노바를 처음 만나 수년간 관계를 지속했다고 보도했다. 안토노바는 러시아에서 대학을 마치고 뉴욕·캘리포니아 등에 건너와 활동하던 브리지 게임 선수였다. 브리지는 유럽의 카드 게임으로, 게이츠도 이를 즐겨 하다가 안토노바를 알게 됐다고 알려졌다. 당시 안토노바는 브리지 홍보 유튜브 영상에서 게이츠와 대국 시 함께 찍은 사진을 공개하며 “게이츠를 이기진 못했으나 그를 발로 차려고 했다”며 친분을 과시하기도 했다.
안토노바는 2013년 브리지를 대중화하는 벤처 사업을 구상하던 중, 게이츠의 측근을 통해 엡스타인을 소개받았다. 안토노바는 억만장자였던 엡스타인에게 50만달러 투자를 부탁했다가 거절당했고, 이후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가 되려고 한다”며 코딩 교육 수강에 필요한 돈을 엡스타인에게 받아냈다.
당시 엡스타인은 2008년 미성년자 성범죄로 13개월 복역한 뒤 출소해 명예 회복을 위해 정·재계와 학계 유명인 네트워킹에 집착하던 시기였다. 그는 주거래 은행인 JP모건을 통해 수십억 달러 규모의 자선 기금을 설립해 자신이 막대한 수수료를 챙기는 사업 모델을 구상하면서, 친분이 있던 게이츠를 주요 기부자로 끌어들이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러자 엡스타인은 자신이 한때 ‘노벨상 받게 도와주겠다’며 잘해주던 게이츠에게 돌연 “내가 안토노바에게 줬던 코딩 수강료를 당신이 대신 갚으라”는 이메일을 2017년 보냈다. 수강료 금액은 미미했기 때문에, 이 이메일은 사실상 ‘당신의 불륜에 대한 과거를 알고 있으니 여차하면 폭로하겠다’고 협박하는 메시지였다는 것이다. 게이츠의 대변인은 WSJ에 “엡스타인이 수년 전 끝난 관계를 이용해 게이츠를 자기 사업에 끌어들이려 했다”며 둘 사이엔 어떤 금전 거래도 없었다고 밝혔다. 게이츠는 엡스타인과의 관계가 드러난 2021년에 “그와 어울린 것은 큰 실수였다”고 사과했다.
엡스타인이 게이츠와 안토노바의 관계를 언제 알게 됐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엡스타인은 자신의 성노리개인 10대 소녀 수백 명을 유력 인사들에게 성 접대하면서 이를 약점 잡아 자신의 이미지 홍보와 투자금 유치에 이용해왔으며, 2019년 사망 전까지 “내가 가진 리스트를 공개하면 세상이 뒤집어질 것”이라고 해왔다. 자신이 ‘관리’하던 소녀는 아니지만, 안토노바가 게이츠에게 타격을 입힐 소재가 될 것으로 봤다는 얘기다. WSJ는 “엡스타인이 유력 인사들을 극진히 대접하다가 수틀리면 어떻게 돌변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했다.
앞서 빌 게이츠는 2021년 자선 사업을 함께 해온 아내 멀린다 게이츠와 이혼해 세상을 놀라게 했는데, 멀린다가 남편이 엡스타인과 어울렸다는 사실이 공개되자 격분해 이혼을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었다. 멀린다는 지난해 CBS 인터뷰에서 “엡스타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려 딱 한 번 만나본 적이 있다”며 “(맨해튼 저택) 문에 들어선 순간 바로 후회했다. 그는 혐오스러웠다. 피해를 입은 어린 여성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고 말했다. 멀린다는 게이츠가 사내 여직원, 통역사 등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의혹이 이혼 사유가 됐다는 질문엔 즉답하지 않은 채 “결혼 생활의 신뢰가 깨져 이혼하게 됐고 그 후에도 정신적 고통에 많이 울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