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네바다, 콜로라도, 뉴멕시코, 유타, 와이오밍, 등 7개주에 수자원을 공급하는 콜로라도강이 말발굽 모양의 협곡 '호스슈 밴드(Horseshoe Band)' 를 휘감아 흐르고 있다. /AFP 연합뉴스

지난해 초여름 미 캘리포니아주는 ‘물 부족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기록적인 가뭄으로 콜로라도강과 저수지들이 바닥을 드러내 폐업하는 농장과 목장이 속출하자 일단은 절약에 나섰다. 로스앤젤레스·벤투라 등 남부 지역은 특히 잔디에 물 주기, 세차 등을 주 1회로 제한했다. 네바다주는 잔디 구장 등을 제외한 ‘비(非)기능 관상용 잔디는 불법’이라는 법까지 제정했다.

지난 몇 년간 가뭄이 이어지며 수량이 크게 줄어든 콜로라도강의 고갈을 막으려 미국 연방 정부와 캘리포니아·네바다·애리조나 등 하류의 3주(州)가 사상 초유의 물 절약 계획에 합의했다. 줄어드는 강물을 둔 인접 지역 간의 갈등이 불거질 위험이 커지자 연방 정부가 막대한 돈을 투입해 합의를 이끌어냈다.

22일(현지 시각) 백악관과 내무부 발표에 따르면, 콜로라도강 하류 3주는 2026년까지 3년에 걸쳐 300만에이커피트(acre-feet, 1에이커피트=약 123만L)를 덜 사용하기로 약속했다. 300만에이커피트는 300만에이커(약 1만2140㎢)의 땅을 1풋(약 30㎝) 높이로 채우는 데 필요한 물의 부피를 뜻한다. 서울의 20배에 달하는 면적을 30㎝ 높이로 채울 정도의 물을 쓰지 않기로 지자체 간 합의를 한 셈이다. 미국 연방 정부는 관개농업을 하는 이 지역의 농부와 미국 원주민, 각 도시 등에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예산에서 배정된 최대 12억달러(약 1조5800억원)의 보상금을 절약한 물 사용량에 비례해 주기로 했다. 돈을 줄 테니 강물 보전을 위해 물 사용을 중지해달라고 연방 정부가 나선 것이다.

이번 합의는 20여 년간 계속된 가뭄으로 콜로라도강의 유량이 20% 줄어들고, 미국 최대 규모의 저수지에 속하는 미드호와 파월호의 수위가 심각하게 낮아진 상황에서 이뤄졌다. 콜로라도주 북부의 로키산맥에서 발원해 콜로라도·와이오밍·뉴멕시코·유타·애리조나·네바다·캘리포니아 7주를 가로지르는 길이 2330㎞의 콜로라도강은 이 지역 주민 4000만명의 식수원이다.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애리조나주 피닉스 등의 서부 대도시도 이 강에서 식수를 얻는다. 1930년대 대공황기에 건설돼 ‘뉴딜 정책’의 상징으로 유명한 후버댐이 이 강에 있고, 겨울철 미국의 야채 공급을 책임지는 서부 주들의 관개농업도 이 강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콜로라도강 일대는 지난 2000년 이후 줄곧 강수량이 역사적 평균 수치를 밑도는 가뭄을 겪어 왔다. 후버댐을 건설하면서 만들어진 대규모 인공 저수지 미드호는 작년 여름 극심한 가뭄에 일부 바닥을 드러냈고, 쩍쩍 갈라진 바닥에서 과거에 수장된 변사체가 연일 발견되는 웃지 못할 일이 이어졌다.

이런 가운데 바이든 행정부는 미드호와 파월호의 수위가 너무 낮아져서 강물이 댐을 통과해 흐르지 못하는 ‘데드 풀(dead pool)’이 될 가능성을 심각하게 우려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면 미드호와 파월호에 인접한 후버댐과 글렌캐니언댐에서 수력발전을 하는 것도 불가능해져 전력 공급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작년 6월 미국 내무부는 콜로라도강 유역의 주들이 200만~400만에이커피트의 물을 덜 사용해야 하며, 그러지 않는다면 강을 보호하기 위해 연방 정부가 개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이 강을 끼고 있는 7주 간의 협상이 시작됐다. 워싱턴포스트는 “미드호에서 가장 물을 많이 끌어다 쓰는 애리조나주와 캘리포니아주 사이의 긴장”으로 협상이 교착 상태였다고 전했다. 예를 들어 1922년 이들 주가 합의한 ‘콜로라도강 협약’에 정한 우선순위에 따라 물 사용량을 감축하면 애리조나주 피닉스와 투손의 수도 공급이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된다. 하류 주들 간에 사용량을 동등하게 일괄 감축하기로 하면 캘리포니아주의 농업 지대가 물을 쓰지 못하게 된다. 이권이 엇갈리며 해당 주들이 합의점을 찾지 못하자 연방 정부가 나섰다. 자발적으로 물을 절약하고 절약한 만큼 보상금을 주기로 하자 합의안이 도출됐다. 정치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정부 보조금이라는 경제적 ‘도구’를 동원해 푼 셈이다. 합의 사실이 알려진 후 조 바이든 대통령은 백악관 성명을 통해 “오늘 합의는 기후변화와 역사적 가뭄에 맞서 콜로라도강 수계의 안정성을 보호하려는 노력에서 중요한 진전”이라고 말했다.

기후변화로 극심한 가뭄을 겪고 있는 곳은 미국만이 아니다. 미국 버지니아대 연구진이 지난 18일 학술지 ‘사이언스’에 기고한 논문에 따르면, 대형 호수와 저수지 53%의 수량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남미의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도 심각한 가뭄을 겪고 있으며, 우루과이 정부는 최근 “74년 만의 최대 가뭄”이라고 밝혔다. 아프리카 동부의 에티오피아·케냐·소말리아에서도 2020년부터 40년 만의 극심한 가뭄이 계속되고 있어, 지난달 유엔난민기구(UNHCR)가 2300만명이 기아 위기에 처해 있다는 우려를 담은 보고서를 발표했다. 가뭄 도중에 갑작스러운 폭우가 내려 홍수가 발생하는 일도 늘어나고 있다. 이달 중순 소말리아 중부에서는 돌발적 폭우가 홍수로 이어져 이재민 20만명이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