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보수 학부모 단체인 '자유를 위한 엄마들(Moms for Liberty)'이 지난해 플로리다에서 동성애 인권이나 비판적 인종 이론 등을 학교에서 가르치지 말라며 "아이들을 그루밍하지 말라" "학교는 교육하는 곳이지 교조화의 장소가 아니다"란 피켓을 들고 진보 교육 이슈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 연합뉴스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둔 미국에서 이념과 문화를 둘러싼 분쟁이 가열되는 가운데 보수·진보 진영의 학부모들이 중요한 정치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트랜스젠더 학생의 스포츠팀 참가, 동성애자 인권 등을 두고 교육 현장이 이념의 전쟁터로 변하며 정치화할 조짐을 보이자 엄마들의 ‘참전’이 시작된 것이다. 뉴욕매거진은 이런 현상을 “내 자식이 살아갈 세상을 내 손으로 만들겠다는, 양 진영 엄마들의 봉기”라고 최근 묘사했다.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무서운 학부모’의 단체는 ‘자유를 위한 엄마들(Moms for Liberty)’이다. 2021년 민주당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직후 ‘보수의 성지(聖地)’라 불리는 플로리다에서 출범했다. 이들의 주력 활동은 학부모 권리를 내세워 미 교육·문화계를 휩쓰는 ‘PC(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주의’ 확산에 투쟁하는 것이다.

‘PC주의’란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타파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성(性) 소수자, 유색인종 등에 대한 차별 금지를 골자로 한다. ‘민주당=PC주의, 공화당=반(反)PC주의’란 구도가 형성된 가운데 ‘자유를 위한 엄마들’은 학교에서의 PC주의 주입 교육을 반대한다는 쪽이다. 이들은 당초 코로나 팬데믹 시기 교내 마스크 착용, 백신 접종 의무화에 맞서 교육 당국과 주·연방 정부에 압박을 넣으려는 모임에서 시작됐다. 출범한 지 2년 만에 지부 275개에 회원 10만여 명을 둔 전국 조직으로 영역을 넓혔다.

이들은 학교를 PC주의의 온상으로 삼으려는 진보 진영의 움직임에 대항하고 있다. 일부 학교에서 도입한 동성애자 등 성 소수자 인권 교육, (여성으로 전환한) 트랜스젠더의 여학생 스포츠팀 참가, 미국 역사를 백인의 타 인종 탄압사로 설명하는 수업 등을 퇴출시키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백인·이성애자 아이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교육을 바로잡겠다”며 모성 본능을 위한 행동임을 내세운다. 하지만 유색인종이나 성 소수자를 비하하는 혐오 발언을 퍼뜨리는 이들의 과격한 행동이 ‘학부모계의 KKK(백인 우월주의 극우 단체)’를 연상케 한다는 비난도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자유를 위한 엄마들’이 공화당 대선 경선 판도까지 좌우하는 막강한 정치 세력이 됐다고 분석했다. 가정과 지역사회에서 목소리가 큰 엄마들의 표심을 잡으려고 정치인들이 구애 경쟁을 한다는 것이다. WSJ와 폴리티코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2024년 대선 공약집은 ‘자유를 위한 엄마들’의 행동 강령을 베낀 수준”이라며 “최근 대선 출마를 선언한 공화당 소속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가 지난해 도입한 동성애 교육 금지법(Don’t Say Gay Bill)도 이 단체가 로비한 결과”라고 전했다.

‘우리 학교 후원회(Support Our Schools)’ ‘미국자유연합’ 등도 비슷한 보수 학부모회다. 연방 하원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은 이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진보 성향이 강한 교원 노조에 맞서 교육과정을 감시하고 결정할 권한을 부모에게 주자는 ‘학부모 권리장전법’ 제정을 추진 중이다.

진보 진영의 엄마들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미 최대 진보 학부모회는 ‘레드 와인 앤드 블루(Red Wine and Blue)’로 회원이 30만명이 넘는다. 트럼프가 재임 당시 자신을 지지하는 대도시 외곽의 보수 성향 여성들을 가리켜 “교외의 착한 주부들”로 지칭하자 이에 반발해 “진짜 교외 주부들이 어떤지 보여주겠다”며 2019년 조직됐다. 오하이오·위스콘신·미시간·애리조나·조지아 등 경합 주에서 민주당의 2020년 대선 승리를 돕겠다며 교외의 고학력 주부들을 중심으로 뭉쳤다. 성 소수자 자녀를 뒀거나, 보수 대법원의 낙태권 폐기, 트럼프 전 대통령 때부터 번지는 백인 우월주의와 반(反)이민주의에 분노한 이가 많다. 뉴욕타임스는 “2020년 대선과 2022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선전한 배경엔 결집력 강한 여성들이 있었다”고 분석했다.

대선을 앞두고 워싱턴 DC, 뉴욕 등 진보 성향 지역을 중심으로는 ‘21세기 아이들을 길러낼 자유(Freedom to Parent 21st Century Kids)’ ‘민주주의 수호대(Defense of Democracy)’ 등 진보 성향 학부모 단체는 속속 조직되고 있다. 이들은 “우리가 주류이고, ‘자유를 위한 엄마들’은 극단적 소수일 뿐”이라며, 보수 성향 학교 이사나 교육청 간부가 선출되는 것을 저지하는 활동을 한다. WSJ은 “바이든 정부와 민주당은 진보 엄마들의 활동이 대선 등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3월 미 플로리다 탬파의 힐스보로 카운티 교육청에서 '이 책은 게이입니다'란 동성애 교육서를 중학교 교육과정에서 퇴출할 것인지를 두고 학부모 토론이 열리고 있다. 학교 현장에서의 성 소수자 인권, 백인의 타 인종 차별 등에 대한 교육 여부가 미국의 첨예한 정치 이념 전쟁 최전선으로 떠오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미 공화당의 유력 대선 주자인 론 드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가 지난해 저학년 동성애 교육을 금지하는 '돈 세이 게이' 법안을 통과시킨 후 '자유를 위한 엄마들' 행사에서 그들의 적극적인 활동이 정책에 도움 됐다며 감사를 표하고 있다. /헤럴드 트리뷴
미국 최대 진보 학부모회인 '레드 와인 앤 블루'가 지난해 미시간주 의회 앞에서 총기 규제를 주장하는 캠페인을 벌이는 모습. 2019년 오하이오에서 생겨 전국에 회원 30만명을 둔 민주당 후원 단체다. /레드 와인 앤 블루
지난 2022년 7월 미 플로리다 탬파에서 보수 최대 학부모회 '자유를 위한 엄마들' 회합이 열리는 회의장 밖에서 낙태권 보호를 주장하는 시민들이 "내 몸은 나의 것"이라며, 낙태 규제를 추진한 론 드샌티스 주지사 등을 향해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자유를 위한 엄마들'은 낙태권 보장이 아이들에게 진보주의란 미명하에 성적 방종을 조장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로이터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