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학에서 챗GPT 등 생성형 AI(인공지능)를 악용한 시험 부정행위가 늘자, 이를 막기 위한 원초적 시험 방식이 각광받고 있다. 바로 2400여 년 전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토론 문화에서 유래한 구술 시험이다.
미 최대 공립대학인 캘리포니아대(UC) 샌디에이고 공대는 지난 3년간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7000여 건의 구술 시험을 실시한 결과, 부정행위가 크게 줄고 학업 성취도가 올라갔다는 연구 결과를 최근 국립과학재단(NSF)에 발표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기존의 필기 시험이 원격으로 대체되면서 다른 학생의 답안지를 베껴내는 등의 부정행위가 늘어난 가운데, 최근 챗GPT 등을 돌려 답안지를 써내는 일까지 급증했다. 이에 교수가 학생을 일대일로 대면해 평가하고 즉석에서 토론을 벌이는 ‘충격 요법’을 도입한 것이다.
UC 샌디에이고 공대 교수들은 학생 1명당 10~15분의 시험 시간을 주고, 답을 말하기 시작할 때까지 8초간 기다리게 하는 등 구체적인 구술 평가 기준을 마련했다. 후속 질문과 피드백 방식 등 평가 방식도 표준화했다.
디지털 문화에 익숙해져 전화 통화조차 어색해 하는 학생들은 처음엔 당황했다고 한다. 하지만 “개념을 말로 설명하려면 더 깊게 이해해야 해 공부를 더 많이 하게 됐다” “구술 시험 경험이 향후 직장에서 팀워크와 소통에 도움 될 것 같다” 등 긍정적 반응도 나왔다. 구술 시험 학점은 필기 시험보다 평균 10% 더 높았다. 특히 가족 구성원들 가운데 처음으로 대학에 진학한 ‘1세대 학생’의 학업 동기 부여에 효과가 컸다고 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대학 교육 무용론이 커지는 상황에서, 단순한 지식 습득과 평가가 아닌 ‘왜’와 ‘어떻게’에 집중하는 구술 시험은 교수와 학생이 학문적으로 교류한다는 느낌을 준다”고 분석했다. 뉴욕타임스는 UC 샌디에이고 공대의 구술 시험이 대학가에서 소문이 나 최근 각 대학 법학·생리학·화학 등 여러 학과에서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노스캐롤라이나대 역사학과 몰리 워튼 교수는 “구술 시험은 인간끼리의 소통이자, 지식의 연결고리를 찾도록 하는 좋은 방법”이라며 “학생들이 학문에 흥미를 잃지 않도록 도울 수 있다”고 했다.
구술 시험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기원전 470년 추정~399년)가 플라톤 등 제자들과 토론하면서 논리적 사고를 자극했던 데서 유래했다. 1600년대까지 영국 옥스퍼드·케임브리지대 등 유럽권 대학의 전공 시험이 주로 구술 방식이었다.
이후 산업화와 대중 교육이 확대되며 필기시험이 대세가 됐지만, 여전히 각국 왕족의 가정 교육이나 주요 대학 박사논문 최종 심사 때는 구술 시험을 치른다. 프랑스의 대입 자격 시험인 바칼로레아엔 20분의 구술 평가가 포함돼 있고, 노르웨이 고교생들도 연 3~4회 구술 시험을 본다.
한편 AI 악용 부정행위를 막기 위해 각 대학들은 여러 고육책을 짜내고 있다. 미 텍사스주의 베일러대학은 학생들이 답안지를 손으로 써내게 했다. 스탠퍼드대는 올가을부터 시험장에 감독관을 입회시키기로 했다.